2025/01 5

다 내맡기오

이문재, ‘성찰하고 표현하자, 공감하고 연대하자’, [녹색평론], 2024년 겨울호. 삼보일배-오체투지는 ‘눈먼’ 시대와 문명 앞에 한 줄기 ‘빛’을 선사한 하나의 사건입니다. 산업문명의 폐해를 두루 살피고 더 나은 내일로 나아가는 길을 꿈꾸게 한 전환점입니다. 우리 안에 잠들어 있는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일깨운 ‘죽비 소리’입니다. 천지자연을 인간의 물질적 풍요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켜온 법과 제도의 ‘민낯’을 드러낸 비폭력-불복종 직접행동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새로운 길을 열어나갈 수 있을지 함께 모색하게 만든 촉진제입니다. 한마디로, 모두를 위한 참회기도이자 모두의 미래를 위한 순례입니다. 삼보일배- 우리 삶을 근본적으로 돌아보다2003년 삼보일배는 새만금 해창갯벌에서 첫걸음을 뗐습니다. 그해..

내 안의 연한 부분이 소리 없이 깨어졌다

한강, [소년이 온다], 창비, 2024(2014 초판).(193~ 194쪽) 에필로그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열살이었다.누군가 나를 불러앉혀놓고 자초지종을 들려준 건 아니었다. 서울로 올라온 그해, 수유리 언덕배기 집에서 나는 아무 데나 틀어박혀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거나, 오빠나 남동생과 오후 내내 오목을 두거나, 엄마가 나에게만 시키는 일인 동시에 내가 제일 싫어했던 마늘 까기나 멸치 머리 떼기 같은 일을 했고, 그러는 사이 어른들이 주고받는 말들을 주어들었다.오빠가 가르친 애였어요?초가을의 어느 일요일 막내고모가 식탁머리에서 아버지에게 물었다.담임을 한 건 아닌데, 작문을 해서 내라고 하면 곧잘 쓰던 애여서 기억이 나. 중흥동 집 팔고 삼각동으로 이사 가면서 복덕방에서 계약을 했는데, 내가..

가야국

2025.1.7 가야고분 ᆢ가야고분군은 1~6세기에 걸쳐 한반도 남부에 존재했던 고대 국가 가야제국의 무덤 문화를 대표하는 7개 고분군으로 이루어진 연속유산이다. 해당 고분군들은 각 가야 중심지에 위치한 구릉에 오랜 기간에 걸쳐 조성된 가야의 최상위 지배층의 무덤들로 가야 연맹을 구성했던 각 정치체의 존재와 위세를 명확히 보여주는 유적이다.또한 고분에서 발굴된 가야식 석곽묘와 토기를 비롯한 부장품은 동일한 문화를 공유한 가야 연맹의 전체적인 지리적 범위를 알려 주고, 이들 사이의 세부적 차이는 각 구성국의 범위와 독자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대등한 수준의 부장품은 가야 연맹이 자율성을 가진 수평적 관계였음을 보여준다.2023년 5월 11일 유네스코에서 가야고분군에 대해 세계유산 등재 권고가 내려져 등재가 ..

지역문화 2025.01.07

고통에 귀 기울이는 일

시그리드 누네즈, [어떻게 지내요](정소영 옮김), 엘리, 2021(2022 재판)(253쪽) 옮긴이의 말시몬 베유의 말에서 따온 ‘어떻게 지내요’라는 말은 원어인 프랑스어로는 ‘무엇으로 고통받고 있나요’이고, 이웃에 대한 관심은 그의 고통에 귀 기울이는 일이다. 고통의 원인을 밝히는 일이, 잘잘못을 따지는 일이 더 중요하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다. 소설 속 일화들이 진짜 고통받는 삶의 장면이라기보다 연로한 여성 작가의 불평으로 들리기도 한다는 의구심도 있을 수 있다. 문학 작품이라면 ‘이게 무슨 난리인가’ 식의 착잡함만이 아니라 세상을 해석하고 판단하는 기준을 어떤 식으로든 담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에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고, 내가 누군가의 삶을 지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