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이탈리아 기행]에 대해서

이춘아 2021. 4. 24. 06:12

괴테, [이탈리아 기행문 2](홍성광 옮김), 팽귄클래식코리아, 2008.


18세기는 유럽에서 여행이 붐을 이루던 시기였다. 괴테는 이미 소년시절부터 이탈리아를 동경하고 있었다. 일찍이 이탈리아 여행기를 썼던 아버지의 체험담에다, 로마의 전경을 담은 그림, 베네치아의 아름다운 곤돌라 모형이 그 나라를 꿈꾸게 해주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현지에서 수집해 온 박물표본이나 대리석상, 그림과 스케치, 동판화와 목판화, 석고상과 코르크 세공품 등은 어린 괴테의 마음에 남국에 대한 그리움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그는 이탈리아어도 미리 배워두었다. 

스물여섯 살의 괴테는 1775년 바이마르 공국의 카를 아우구스트 대공의 초청으로 바이마르에 가서 십여 년 동안 공직 생활을 하면서 부와 명예를 얻었지만 경직된 생활로 창작력이 고갈되어가자 점차 이에 회의를 느끼면서 새롭게 충전하고 싶다는 욕구에 시달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구원받는 길은 탈출하는 것뿐이었다. 그리하여 괴테는 서른일곱의 나이에 유럽 문명과 예술의 원천을 찾아 1786년 9월3일부터 1788년 6월18일까지 일 년 십 개월 동안 독일을 떠나 이탈리아를 두루 여행하면서 눈과 마음을 열고 새로운 세계를 마음껏 호흡하였다.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은 소년 시절부터 간직했던 남국에 대한 동경, 고루한 바이마르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충동, 침체된 예술 정신을 되찾고 싶은 욕구로 볼 수 있다. 

여행 중에 창작력이 고취됨으로써 새로운 작품이 구상되고, 오랫동안 묵혀 두었던 미완의 원고들이 로마에서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그는 고전주의에 대해 새롭게 눈뜨게 되어, 젊은 시절 추구했던 ‘질풍노도’ 경향의 조야함을 극복하고 빙켈만이 말하는 조용한 위대성과 고귀한 단순성’을 깨달았던 것이다. 규범과 조화를 중시하는 이탈리아의 고전주의는 괴테작품 세계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타우리스의 이피게니아]가 아름다운 운문 형식으로 개작되었고, [에그몬트] 및 [에르빈과 엘미레]가 완성되었으며, 대작 [타소]와 [파우스트]를 완성하기 위한 구상도 이때 이루어졌다. 

[이탈리아 기행 ] 제1부는 시간의 순서에 따라 씌어져 있어 기행문으로서의 성격이 가장 강하다. 일기 형식으로 티롤 산맥에서 베로나를 지나 로마에까지 이르는 이탈리아 여러 도시에 대한 인상과 생각이 잘 묘사되어 있다. 베로나의 원형 극장에서 처음으로 고대의 건축에 접하게 되었다. 비첸차에 며칠 머물면서 팔라디오의 궁정 건물에 매혹되었다. 처음에 괴테는 로마와 나폴리만을 둘러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나폴리를 찾아가서 그 아름다움에 매료된 그는 한 달 가량이나 머물다가 시칠리아 섬까지 나아갔으며, 결국은 이탈리아에 더 체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폴리와 시칠리아 지방을 답사한 기록인 제2부는 주로 바이마르의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들에 의존했기 때문에 1부보다 기행문의 성격이 약한 편이다. 여기에는 편지와 함께, ‘추억에서 이끌어낸’ 단편적 기록들이 첨가되었다. 석 달 넘게 이탈리아 남부를 여행하면서 괴테는 홀가분하고 자유로운 나그네의 정취를 마음껏 만끽했다. 1787년 6월 7일 다시 로마로 돌아온 그는 이 위대한 세계의 학교에 일 년 이상 더 수학하게 되었다. 

십 년이나 늦게 쓰인 제3부, 즉 [두 번째 로마 체류]는 앞서 출간된 여행기와는 구성이 많이 다르다. 그날그날 일어난 일과 생각을 기록한 편지들이 편집되고, 달마다 특히 기억되는사건이나 느낌이 ‘보고’라는 형식으로 기술되었다. ‘보고’는 물론 당시의 기록을 참조하고 기억에 의존해 노년의 괴테가 새로 작성한 글이다. 그사이에 또 괴테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중요한 논문과 편지,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사건에 대한 인상기를 추가해 넣었다. 괴테의 여행기에는 편지의 많은 부분이 축약되거나 교체되었고 심지어는 아주 새로 쓰이기도 했다.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은 자서전의 하나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매우 주관적인 여행기이다. 제일 나중에 출간된 [두 번째 로마 체류]에서는 수신서 같은 면모마저 엿보인다. 이는 새로운 세계와 만남으로써 자아가 성숙해지고 더욱 내면화되는 인간, 요컨대 부단히 탐구하고 노력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괴테가 이탈리아에 있을 때 써놓았던 ‘여행 일기’가 이 책의 중요한 자료가 된다. 괴테는 여행기를 일찍 출간하려 하였으나 귀국 후 얼마 동안 의욕을 상실했다가 삼십 년도 훨씬 더 지나서야 자신의 삶의 기록을 모으기 시작했다. 당시 이 기록이 자서전을 쓰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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