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똥오줌이 황금보다 귀하다’

이춘아 2021. 4. 30. 20:56

서정홍 외, [생각해 봤어? 우리가 잃어버린 삶], 교육공동체벗, 2014.


실제로 똥오줌이 없으면 아무도 살 수 없습니다. 권정생 선생님이 쓴 [강아지똥]이란 그림책을 알고 있나요? 이 책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처럼 여겨지던 강아지똥이 민들레 꽃을 피워 내는 소중한 거름이 되는 이야기를 통해 생명과 자연의 가치를 가르쳐 주고 있어요. 권정생  선생님은 지병으로 지쳐 있을 때, 처마 밑에 버려진 강아지똥이 비를 맞아 흐물흐물 녹아내리며 땅속으로 스며드는 모습을 보게 되었어요. 며칠이 지나, 강아지 똥이 녹아내린 바로 그 자리에 놀랍게도, 앙증맞은 민들레꽃이 피어나 있었다고 합니다. 권정생 선생님은 순간 ‘아, 저거다!’ 하면서 ‘강아지똥과 같이 보잘것 없는 것도, 남들에게 천대만 받는 저런 것도, 자신의 온몸을 녹여 한 생명을 피워 내는구나’라는 사실에 깊은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렸다고 해요. 그러고는 며칠 밤을 새워 강아지똥 이야기를 썼답니다. [강아지똥]에 그림을 그린 분은 정승각 선생님인데 강아지가 똥 누는 모습을 관찰하기 위해 강아지 뒤를 넉 달 동안 졸졸 따라다녔다고 해요. 그 뒤, 강아지똥의 모형을 찰흙으로 뜨고 밑그림을 그리는 데 두 달, 그러고도 다시 몇 달을 보내고 마침내 강아지똥이 살아 움직이는 느낌을 받고 나서야 붓을 잡고 그림을 그렸대요. 그 이야기를 듣고 저는 가슴이 찡 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강아지똥]을 다 읽어 드리고 싶지만, 이 부분만 읽어 보겠습니다. 

보슬보슬 봄비가 내렸어요. 
강아지똥 앞에 파란 민들레 싹이 돋아났어요. 
“너는 뭐니?”
강아지똥이 물었어요.
“난 예쁜 꽃을 피우는 민들레야.”
“얼마만큼 예쁘니? 하늘의 별만큼 고우니?”
“그래, 방실방실 빛나.”
“어떻게 그렇게 예쁜 꽃을 피우니?”
“그건 하느님이 비를 내려 주시고, 
따뜻한 햇볕을 쬐어 주시기 때문이야.”
“그래애....., 그렇구나....”
강아지똥은 민들레가 부러워 한숨이 나왔어요. 
“그런데 한 가지 꼭 필요한 게 있어.”
민들레가 말하면서 강아지똥을 봤어요. 
“......”
“네가 거름이 돼 줘야 한단다.”
“내가 거름이 되다니?”
“네 몸뚱이를 고스란히 녹여 내 몸속으로 들어와야 해.
그래야만 별처럼 고운 꽃이 핀단다.”
“어머나! 그러니? 정말 그러니?”
강아지똥은 얼마나 기뻤던지
민들레 싹을 힘껏 껴안아 버렸어요.

여러분은 강아지똥 이야기를 듣고 나니 어떤 생각이 드나요? 강아지똥이 없으면 어떻게 민들레가 꽃을 피울 수 있겠어요. 사람인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이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이란 없어요. 남들이 뭐라 해도 자신의 존재 가치를 발견하면 자기를 사랑하게 되고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지요. 하물며 사람 똥오줌은 개똥보다 더 훌륭한 거름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황금보다 소중한 똥오줌을 버리고 있어요. 

여러분 혹시 생태뒷간이라고 들어 봤나요? 어쩌면 이런 말을 처음 듣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저는 여러분이 농부가 되어 생태뒷간을 짓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농부가 되고 나서야 생태뒷간을 지었어요. 층계를 대여섯 개 올라가면 똥오줌 누는 곳이 있어요. 거기에 앉아 편안히 볼일을 보면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똥은 바로 밑으로 떨어지고 오줌은 깔대기를 통해서 따로 빠지게 돼 있어요. 오줌 내려가는 각도를 잘 맞춰 놨기 때문에 ‘정조준’하려고 억지로 애쓰지 않아도 돼요. 그렇게 따로 모아진 오줌은 몇 달 지나면 논밭에 거름으로 쓰인답니다. 

그런데 똥을 누고 나서 해야 할 일이 있어요. 작은 단지 안에 잘 섞어 놓은 왕겨와 재를 바가지로 퍼서 똥 위에 덮어 주고 나와야 해요. 왕겨는 벼의 겉껍질을 말하는데요. 왕겨에는 미생물이 어마어마하게 많다고 해요. 재는 불에 타고 남은 가루지요. 저는 아궁이에 땔감을 지펴 방을 따뜻하게 데워 살아가기 때문에 재가 늘 아궁이에 있답니다. 재는 벌레를 쫓아내는 효과가 있다고 해요. 옛날에는 이파리를 갉아 먹으면, 이파리에 재를 뿌렸다고 해요. 지금도 우리 마을 할머니들은 밭에 재를 뿌려요. 더구나 재는 아주 훌륭한 거름이 되기도 하고, 병든 땅을 치유하는 역할도 한대요. 그래서 똥 위에 왕겨와 재를 덮어 두면 냄새도 줄고 구더기가 생기지 않아요. 똥을 덮어 줄 때는 허리를 90도로 숙여야만 해요. 허리를 숙이지 않으면 왕겨와 재가 날리기 때문이지요. 허리를 숙이면서 ‘사람에 대한 예의만 있는 게 아니라 똥에 대한 예의도 있구나’ 하고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져요. 

똥통에 똥이 어느 정도 차면 저는 아내와 함께 똥통을 들고 집 근처에 있는 거름더미로 가요. 다른 거름들과 같이 잘 섞어 한 해 남짓 덮어 두었다가 가끔 뒤적거려 주면 좋은 거름이 된답니다. 이렇게 생태뒷간을 지으면 똥과 오줌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거름으로 만들어 쓸 수 있어요. 우리 집에 놀러오실 때는쓸데없는 선물 같은 거 사 올 생각 하지 말고 그냥 뱃속에 똥오줌만 가득 채워 오면 돼요. 단, 여기서 한 가지 더 지킬 게 있어요. 우리 집에 오기 이삼일 전부터 불량 식품을 먹으면 안 돼요. 불량 식품을 먹고 똥을 누면 어떤 똥이 나올까요? 물어보나 마나 불량 똥이 나오겠지요. 불량 똥으로 거름을 만들어 곡식을 키우면 당연히 불량 곡식이 나오고요. 그러니 똥만큼 정직한 게 없어요. 

그러니까 우리 집에 올 때는 적어도 이삼일 전부터 우리나라 농부들이 친환경 농법으로 정성껏 농사지은 현미잡곡밥에 김치와 된장과 같은 건강한 음식을 먹고 와야 해요. 조상 대대로 먹어 왔던 음식이지요. 빈속에 먹어도 아무 탈이 없는 우리 음식이 몸에 좋아요. (서정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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