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한 번에 한 가지 일을 하는 기쁨

이춘아 2022. 6. 3. 23:54

파커 J. 파머,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김찬호 정하린 옮김), 글항아리, 2018.

한 번에 한 가지 일을 하는 기쁨

나는 매일 모든 것의 끝자락에 가까이 다가간다. 물론 우리 모두는 그쪽을 향해 움직인다. 비록 우리가 젊을 때도, 중요한 문제들에 매달리고 있어서 자신의 죽음에 대해 사유하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심각한 질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할 때, 또는 우리에게 소중한 누군가가 죽음을 맞이할 때 - 우리는 동창회에 가서 이 노인네들이 누구지 하며 놀란다. - 우리 삶의 가장자리 바로 너머에 드리운 절벽은 무시하기가 어려워진다.

이 책이 출간될 때면 내 나이는 여든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니 내가 때로 이곳에서 그 끝자락을 볼 수 있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놀랍다. 더 놀라운 것은 내가 나이듦을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나이가 들면 모든 것이 쇠퇴한다. 그러나 적지 않은 혜택도 주어진다. 나는 멀티태스킹 능력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한 번에 한 가지 일을 하는 기쁨을 다시 발견하게 되었다. 생각의 속도는 좀 더뎌졌다. 그러나 경험이 생각을 더 깊고 풍요롭게 만들어주었다. 나는 크고 복잡한 프로젝트에 더 이상 관여하지 못한다. 그러나 단순한 것들의 사랑스러움에 더 눈길을준다. 친구와의 대화, 숲 속 산책, 일출과 일몰, 달콤한 밤잠 같은 것 들이다.

물론 두려움도 있다. 늘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지나간 시간이 그림자처럼 길어지고 앞에 남겨진 시간은 줄어들면서, 내게 가장 중요한 감정은 삶의 선물에 대한 감사다.

나이듦이 좋은 것은 무엇보다 끝자락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놀랍기 때문이다. 내 생애가 완전한 파노라마로 들어오는 것이다. 상쾌한 산들바람이 내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일깨워준다. 커트 보니것의 작품 [자동 피아노]에서 한 등장인물은 이렇게 말한다. “가장자리에서는 한가운데서 보지 못한 온갖 것을 볼 수 있다.”

돌아보건대, 나는 내게 지루함과 영감, 분노와 사랑, 고뇌와 기쁨이 왜 필요했는지 이제 알 것 같다. 어둠에 압도되는 절망의 시간 속에서조차 그 모든 것이 어떻게 어우러지는지를 알겠다. 내가 한때 탄식했던 불운도 이제는 더 커다란 직조물에 엮인 튼튼한 실처럼 보인다. 그것이 없었다면 내 생의 직조물은 지금만큼 탄탄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음 단계에 다다르기 위해 조급해하느라 누리지 못한 충만함의 순간들은 이제 다시 상기되고 음미되어야 할 시간으로 떠오른다. 그리고 내게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두 배로 감사하게 되었다. 그들은 사랑, 확신, 어려운 질문, 과감한 도전, 연민 그리고 용서로 나를 지지해주었다.

우리가 함께 사는 세상, 그 고통과 가능성을 둘러보면, 인간의 가능성을 위해서 살아간 수많은 사람의 용기를 목도한다. 노년이란 신체장애가 있는게 아니라면 쭈그리고 앉아 보낼 시간이 아니다.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단지 더 이상 잃을 게 남아 있지 않음을 의미할 뿐이다. 인생에서 공공선을 위해 더 큰 위험부담을 감수할 시간이다.

가장자리를 넘어 레너드 코언이 ‘불굴의 패배’라고 한 것을 향해 나아가는 날들을 내다보건대,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은 그 길이 기나긴 내리막길이라는 사실이다. 날개를 펴고 날아갈것인가? 바위처럼 말없이 떨어질 것인가? 아니면 밴시(울음소리로 가족에게 죽을 사람이 있음을 알린다는 여자유령)의 비명으로 불타오를 것인가?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한 가지만은 확실하게 안다. 이렇게 멀리까지 온 게 커다란 행운이라는 것을,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에서 세상과 인생을 바라볼 기회를 갖지 못한 사람이 많다. 나도 그 중 한 사람일 수 있었다. 우울증의 목소리가 살려고 발버둥 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계속해서 속삭이던 날들도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의사들을 지루하게 했다. 그러나 지난 15년 동안 몇몇 전문가에게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이듦과 죽음을 감상에 젖어 낭만화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이듦은 특권이요, 죽음에는 타협의 여지가 없음을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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