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마음을 터뜨려 주었습니다
2003.06.10
이춘아
꽃이 나를 따라오고 있음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꽃이 마음을 터뜨려주어 환한 웃음을 짓게 했습니다. 나의 마음이 환해지는가 했더니 건너편 꽃나무 아래에 있는 분의 얼굴도 환한 웃음이어서 사람은 같은 마음을 갖게 되는구나 했습니다.
중년의 얼굴에 찌들어 있을 수 있는 마음을 펴기란 쉽지 않습니다. 갑작스런 웃음이 아닌 마음이 열려 저절로 화안해지는 웃음을 갖기에 시간이 허락해주지 않습니다. 그날 출발 당일 전날부터 비 왔고 떠나는 날 오전 내내 비 왔지만 전남 순천 낙안읍성에 도착했을 무렵 산 아래부터 안개구름이 올라가고 우산 쓰지 않고 다닐 수 있었습니다.
막걸리를 반주로 곁들여 맛나게 점심을 먹고 낙안읍성을 보면서 우리는 환성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주로 감탄사격인 신음에 해당합니다. 중년의 기억에 배어있었을 그러한 초가집들의 옹기종기함, 텃밭에서 마음이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꼬옥 다시 와야지 마음먹으며 사진을 찍어댑니다.
사실 해설사의 이야기에 담긴 낙안읍성의 역사적 중요성 그런 것보다는 그냥 그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풀리기 시작했는데 다시 버스로 간 선암사에서 그만 드디어 마음이 터졌다는 것 아닙니까.
선암사 올라가는 길도 좋았지만 선암사에 만개한 자산홍, 겹벚꽃(왕벚꽃)과 이름모를 꽃들을 보며 저절로 환한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정원에 조형된 꽃들이었다면 좋네 어쩌네 소감부터 말하게 되는데 이곳에서는 그냥 말없이 마음이 환해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함께 온 어떤 분은 일주일전에도 왔었는데 그 때는 꽃망우리만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꽃이 나를 따라온 것은 아니겠지요. 내가 꽃을 따라갔을 것이라 생각해봅니다.
한번씩 자연을 벗한다는 것이 좋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고 나 역시 그러면 좋을 것이라 여기고 있었지만 이날처럼 확신하게 된 적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스트레스를 풀어준다, 엔돌핀이 나온다는 표현보다는 마음을 터뜨려준다는 표현을 이제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운동을 하여 굳어있는 몸을 풀어주듯이 우리의 마음도 이런 식으로 풀어주어야만 한다는 것을 체득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녀온 며칠 후 책방에서 기웃거리다 대원사의 빛깔있는 책들 시리즈 가운데서 '선암사'를 발견하고는 얼른 샀습니다. 그리고 와서 읽어보니 다시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 느낌을 다시 떠올리며 책을 읽어보니 유적지 답사를 다녀온 내가 좀더 찬찬히 보고 오지 않았음을 알수 있었습니다. 책에 있는 내용을 다시 정리해보고 싶었지만 그것보다는 한번 터뜨려준 마음을 어떻게하면 그때처럼 환하게 지속시킬 수 있을까 그 생각부터 먼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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