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1980년 오월 광주

이춘아 2025. 5. 11. 08:03

2025.5.10.


다시 만나는 오월

5.10 세종교육연구원이 주관하는 '민주화 성지,광주탄방'을 다녀왔다. 5.18 민주광장, 5.18 민주묘지, 5.18자유공원 세 축을 기준으로 방문.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다시 읽으며 5.18을 되돌아보며 갖게 된 생각들이 광주탄방을 다녀오면서 좀더 크게 보게 되었다. 

첫번째, 45년의 세월이 지나가도록 아직도 진상규명이 되지않은 부분들이 많다는것. 전일빌딩10층에서 해설사가 왜 그리 헬기 총사 부분을 길게 이야기하는지 의아했었다. 아직도 군사정권은 부정하고 있고 인정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두번째, 민주광장, 민주묘지, 자유공원을 인류문화유산으로 지정하고 성역화하는 과정에 지난한 시간을 광주시민들이 노력해왔었다는것. 

세번째, 단체관람이 많았다는것에 놀라왔다. 지난 40여년간 전국 곳곳에서 개인이나 단체로 광주를 찾아왔을 거라는 생각에 미쳤다. 계엄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일지라도 광주에 와서 5.18관련 사적지에서 간접경험을 하였기에 지난 12.3 계엄사태의 위험성을 공포스럽게 느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으면서 내가 경험한 5.18의 느낌을 확장시킬수 있었다.  소설은 몇 인물을 통해 유추할 수있는 느낌이었다면,  이번 광주탄방은 내가 직접 본 그 지역 공간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고통을 공유하고 있었으며 40여년 넘는 시간 광주와 전남 일대의 사람들이 깊은 상처와 한탄, 분노 속에 있었을지 가늠되었고, 나는 그 상황에서 떨어져 있었다는 이유로 무심했었음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다. 

미안하고 죄스러운 이 느낌을 개인적으로나마 단단히 옭아매고 다시는 그런 상황이 되지않도록 노력하는 것. 반복되는 인간의 야만성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는데 내 힘을 보태어야겠다.

245라는 숫자는 헬기가 빌딩에 쏘아댄 총탄의 흔적 숫자라고 한다. 1980년 당시 전남도청인근에서 10층 건물로 가장 높았다는 전일빌딩. 지금은 전체건물을 광주시가 매입하여 5.18 관련 전시공간으로 사용히고 있다. 입구 카페에 한강 소설을 전시하고 있다.

1980년 당시 전남도청 부근 조감도. 분수대를 중심으로 도로 곳곳에서 시위가 일어났고 총격이 있었다.
전일빌딩 옥상에서 본 분수대.
전일빌딩 옥상에서 본 파란색 지붕의 상무대. 시신을 수습하였던 곳.
5.18 민주묘지 입구. 참배객들이 이미 와있다.
들불야학에서 만난 박기순 윤상원의 묘. 둘은 영혼결혼을 하였다.
세종시 소담고등학생들이 준비해온 글을 읽고있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의 주인공 동호 라는 이름의 인물이었던 문재학. 80년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1980년 당시 상무대에 끌려온 체포자들.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나온 뒤에.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봄에 피는 꽃들 속에, 눈송이들 속에.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 속에. 다 쓴 음료수 병에 네가 꽂은 양초 불꽃들이. 한강, [소년이 온다]에서.
기억하는 건 다음 날 아침 헌혈하려는 사람들이 끝없이 줄을 서 있던 병원들의 입구, 피 묻은 흰 가운에 들것을 들고 폐허 같은 거리를 빠르게 걷던 의사와 간호사들, 내가 탄 트럭 위로 김에 싼 주먹밥과 물과 딸기를 올려주던 여자들, 함께 목청껏 부르던 애국가와 아리랑뿐입니다. 모든 사람이 기적처럼 자신의 껍데기 밖으로 걸어나와 연한 맨살을 맞댄 것 같던 그 순간들 사이로,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이, 부서져 피 흘렸던 그 심장이 다시 온전해져 맥박 치는 걸 느꼈습니다. 나를 사로잡은 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선생은 압니까, 자신이 완전하게 깨끗하고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내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희를. 한강, [소년이 온다]에서
80년 사망자들을 분산 매장.
1980년 당시 상무대가 있던 곳을 공원화하고 상무대를 복원하여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유적지가 됐다.


법정 진술 구형 기록 ᆢ 신군부세력이 짜놓은 각본대로 일사천리로 진행된 5•18재판 최후진술에서 정동년은 "이번 광주사태에 길가는 시민들을 붙잡아 정말 수괴가 있었느냐고 물어보십시오. 아마도 광주사태에 두목, 즉 수괴가 있었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라고 진술했다. 정상용은 "지금 비록 어둡고 참담한 감옥에 우리의 몸이 갇혀 있으나 자유의 종이 한없이 울리는 민주 세상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우리는 승리할 것입니다. 진리와 정의는 반드시 승리합니다"라고 피고인석에서 뒤로 돌아 방청객을 향하여 한 시간 가량 최후 진술을 했다. 1980년 10월 24일 계엄보통군법회의 1심 선고공판에서 404명 중 149명이 선고유예로 풀려나고, 255명에 대해 유죄가 선고되었다. 그해 12월 29일 계엄고등군법회의 2심 재판에서는 유죄가 선고된 163명 중 83명을 제외한 80명이 형 집행면제와 집행유예를 받아 석방되었다. 이듬해 1981년 3월 31일 대법원은 피고인들의 상고를 기각하고 고등군법회의 선고대로 피고인 83명에 대해 계엄법 위반, 내란주요임무종사,살인 등의 죄목으로 원심 형량을 확정했다. 이로써 5.18 재판은 대법 선고까지 5개월 동안 미리 짜놓은 각본대로 진행되었다.
칠흑 어둠 속에서 별은 빛나고 혹한을 지나 들꽃은 피어 났습니다. 다만 지극히 낮고 뜨거운 열정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벗이 되었습니다. 스스로 타올라 영원한 들불 한 점, 밝은 별은 노동자와 민중의 가슴에 깃들어 모든 것에 맞서 싸우는 이들에게 벗이 되었습니다. 삼가 세상의 순결한 것들의 이름을 빌어 아름답고 고귀한 님들의 자취를 여기에 메움니다. 임오년 오월 들불열사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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