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생각 - 듣고 싶은 이야기
문화창조자 여성
이춘아 유성문화원 사무국장
2001년 이맘때이다. 문화유산 공부를 하는 과정에 대전광역시 민속자료 2호로 지정되어 있는 송용억 가옥을 방문했을 때이다. 그곳에서 호연재 김씨(김호연재: 1681~1722)를 만났다. 안내해주었던 교수님은 호연재의 시 <봄의 회한>을 읽어보라 하셨다. 한명이 낭랑한 목소리로 읽어 내려갔다.
<봄의 회한>
복사꽃 어지러이 떨어지고
배꽃은 향기로운데
나비는 분분히 날아
작은 당을 둘러싸고 도네
적막한 공산에 봄은
저절로 가는데
저녁햇살에
이별의 시름이 길구나
시가 창작되었던 바로 그 공간에서 시를 다시 읽는 맛은 느낌이 다른 법, 300년 전 송촌의 모습이 그려지는 듯 하였고, 당시 충남 홍주 오두리(현재 홍성)에서 회덕 송촌으로 시집온 안동김씨 호연재의 서정을 느낄 수 있었다. 역사적 문화적 상상력으로 그 느낌을 내 것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은 문화감수성 훈련에 상당한 도움을 준다. 나는 그곳에서 문화감수성 뿐 아니라 여성사와 관련된 문화유적지로 특화하여도 될 것 같다는 창의적인 생각도 하게 되었다.
유학자 중심의 문화가 지배적인 대전지역은 남성선비 이야기가 주였는데 이곳 송용억 가옥에는 18세기의 김호연재가 살았고, 그의 시가 이 집안 여성들에 의해 필사본으로 전해져 내려오다가 10대 후손인 송봉기 선생이 1995년도에 책으로 간행했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100여년전 송봉기 선생의 증조할머니 권씨(1855~ ?)가 기록으로 남긴 [주식시의(酒食是]가 기록자료로 남아있었다. 119쪽으로 구성된 언문필사본인 이 책은 송촌 사대부 집안의 요리법 염색 세탁법 여성질병 민간치료법등을 수록한 여성용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현재 호연재의 10대 손부인 윤자덕 여사가 이 집안 술인 송순주(대전시 무형문화재 9호로 지정) 기능보유자이다.
여성들의 생활문화가 오롯이 간직되어 있는 이 공간이 예사롭지 않았고, 여성문화해설이 충분히 가능한 곳이라 여기고 있었는데, 서울의 한 여성단체가 대전에서 세미나를 했을 때 대전을 소개할 문화해설을 요청하여 참가자들을 송용억 가옥으로 모시고와서 설명하기도 했다.
올해 초 문화관광부가 양성평등 지역문화활성화 사업 공모를 하였을 때, 김호연재를 주요 문화콘텐츠로 구성하여 제안해보기로 하였다. 두 가지 방향이다. 하나는 김호연재의 삶을 극화하여 보여줌으로써 대전지역 여성문화인물로 부각시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사람들에게 김호연재의 삶을 이야기로 전해주는 것이다. 그 효과도 두 가지이다. 하나는 300년 전 한 여성의 삶, 조선시대 여성들의 삶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호연재를 통해 바꿔놓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남성중심의 유교문화권에서도 여성들의 문화 창조는 있었기에 문화유산해설에서 여성들의 이야기가 무궁무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이다. 이로 인해 김호연재 뿐 아니라 대전지역의 여러 여성인물들이 발굴될 것이다.
호연재가 남긴 194 편의 시를 가늠해볼 때 오늘의 관점으로 보아 충분히 양성평등적 시각을 갖춘 인물이었다. 대전에서 활동하고 있는 <극단 좋다>가 제작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었다. 또한 해설시나리오를 만들어 송용억 가옥에서 김호연재 뿐 아니라 그 집안 여성들의 생활문화역사를 대전시민과 관광객들에게 이야기해주는 작업은 최근 몇 년간 문화촉매자로 활동하고 있는 문화유산해설을 할 수 있는 인적 토대가 축적되어 있었기에 시도해볼 수 있었다.
이러한 내용을 담아 <문화창조자 여성, 대전지역 여성문화자원 프로그램 개발>이라는 제목으로 기획서를 제출하였고, 선정되어 현재 진행 중이다. 이 사업을 통해 300년 전 대전지역에서 살았던 역사속의 김호연재라는 문화창조자 여성에서 출발하여 오늘날 문화촉매자로 활동하고 있는 여성문화인적 자원이 곧 문화창조자 여성으로 이어지고 이들의 활동이 앞으로의 문화창조자 여성을 만들어갈 것이라는 공감대를 확산해 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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