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통신

빨래 삶는 여자

이춘아 2019. 8. 6. 08:47


미국통신 10 - 빨래 삶는 여자

November 19, 1999

 

 

지난 주 교회에서 가을 부흥회가 있었습니다. 가을 부흥회라는 글자판의 가을이란 글자에서 연상된 떠오른 이미지는 파란 하늘, 붉은 고추, 잠자리, 노란 해바라기가 있는 풍경입니다. 그러나 ‘autumn’ 하면 낙엽을 연상하게 됩니다. 과연 이 곳의 가을은 낙엽이었습니다. 나무가 많아서인지 낙엽 역시 풍성합니다. 파란 잔디위의 고엽’. 한국의 가을과는 색조가 다릅니다.


수퍼에서 배추와 열무 중간쯤 생긴 것이 있길래 그것으로 김치를 담구어 먹었습니다. 맛이 그럴 듯 하더군요. 교회에서 김치를 담구는 날 제가 자랑을 했었지요. 그걸로 김치를 담구었다고. 그랬더니 한 말 하더군요. 실험정신이 강한 아줌마들이 왜 이것 저것 만들어보지 않았겠냐고 그러다 결국은 한국의 배추로 돌아오더라고. 그 한마디에 모든 것이 갑자기 이해되는 듯 했습니다. 그래 결국은 그렇게 되고 마는구나. 왜 그렇게 한국음식에 목숨걸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중학교 가정시간에 배웠던 것이 생각납니다. 개량 부엌, 냉장고가 갖춰진 입식의 서양부엌. 내가 어른이 되어 그 부엌에서 일할 수 있을까? 꿈같은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빨리 입식부엌에서 일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어른이 되면 아마도 우주비행사가 먹는다는 알약으로 살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이제 입식 부엌에 냉장고에 세탁기에 오븐에 서 있어도 먹고 살 알약은 없습니다. 하긴 알약이 있었더라면 냉장고도 오븐도 쓸모없는 것이긴 하지만. 미국에 왔지만 여전히 중학교 때 먹던 음식을 먹습니다.


한국식품점을 갑니다. 그곳은 요술상자입니다. 플라스틱 소쿠리에서부터 새우깡에 이르기까지 없는 것이 없습니다. 심지어 자개 농도 주문받아 제작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유행지난 자개 농을 이 곳 한국인 집에 가면 흔히 볼 수 있습니다. 한국적인 이미지 때문입니다. 미국에 살면 살수록 한국적인 것을 찾고 있습니다.


이 곳 아파트 단지에 있는 세탁소에 가면 세탁기와 드라이기가 있고 빨래 개는 곳까지 있어 빨래의 전 과정이 종결됩니다. 처음에는 신기해서 빨래하러 가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몇 시간이면 다시 그 옷을 입을 수 있기도 하고 따뜻한 빨래를 개는 기분도 괜찮고 해서.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무언지 개운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빨래가 삶고 싶었습니다. 하얗게 삶은 빨래가 햇빛에 말라갈 때의 냄새가 그리웠습니다.


다행히 양재기를 하나 얻었습니다. 그 양재기로 빨래도 삶고 세수도 하고 심지어 배추도 저릴 수 있고...

조금전 하얀 빨래를 개면서 그 냄새에 도취되어 누워있었습니다.


평화의 냄새. 어릴 때 마당에 하나 가득 널린 빨래 사이로 다녔을 때 맡았던 그 냄새. 마당에 널려있는 하얀 빨래는 평화의 깃발이었습니다. 때묻힌다고 피해 다니라고 했건만 어릴 때 빨래 사이로 다니는 것이 좋았습니다. 지금 여전히 그 냄새가 그리운 것이지요.


그래서 나는 오늘도 빨래를 삶았습니다. 한 양재기로 모자라 두 양재기째 삶아 널어놓은 빨래와 개어 놓은 빨래 사이에서 잠시 잠들었습니다.


그리고는 톡투미에 글을 올렸습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이 주제로 무엇인가 쓰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너무나 거창한 제목이라 빨래삶는 여자로 바꾸었습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이 문제를 찾기 위해 인류학자들은 오지를 찾아들어갑니다. 어디까지가 인간의 원형에 다가갈 수 있는가. 인류학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나 자신을 돌아보면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시간이 많다는 것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부모에 의해, 사회에 의해 강제로 배움을 강요받았다고 생각했고 그 억지 배움을 벗어던지고 나면 나는 과연 무엇을 스스로 할 수 있을 것인가고.


내일 텍사스주를 행해 여행을 떠납니다. 78일의 자동차 여행입니다. ‘노상위의 나그네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리고 싶은데 접속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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