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통신

너희가 자연을 아느냐

이춘아 2019. 8. 6. 08:30


미국통신7 - 너희가 자연을 아느냐

November 3, 1999

 

 

몇 년전 여름휴가를 강원도 평창으로 간 적이 있습니다. 경치가 아름답고 해서 뒤에 앉은 아이에게 좋은 경치 많이 보라고 말하면서 뒤를 돌아보니 자고 있더군요. 이 곳 테네시에 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아름다운 풍경을, 하면서 뒤돌아보면 아이는 자고 있습니다. 아이는 자연의 풍광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이럴 때도 마치 자연공부에 관심없는 아이를 딱해하며 쳐다보는 부모의 심정이 되곤 합니다. 왜 이렇게 좋은 자연의 색깔에 관심이 없는 것일까. 남편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자연이 눈에 들어왔었냐고. 생각해 보면 그렇지요. 어렸을 때 낙동강에 수영하러 갔을 때도 아이들과 옷 숨겨놓고 헤엄치던 것 등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것만 생각나지 흘러가는 구름이 좋다든가 강이 아름다웠다든가 등은 거의 생각나지 않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에만 관심있었던 같습니다. 지금에와서는 그 이미지만 남아있을 뿐입니다. 어렸을 때 지금처럼 자연에 예민해 있었다면 진작에 시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11월 첫날 갑자기 마을 전체가 아름다운 색을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사진찍기 싫어하는 남편조차 빨리 사진 한 장 찍으라고 재촉할 정도로. 이 곳의 단풍은 파스텔톤입니다. 선명한 단풍색이 아니라 번진듯한 색조여서 이 곳 그림이 왜 그런 색이었든지 문득 이해하게 됩니다. 사진찍으러 나가야겠다고 생각하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지고 밤새도록 비바람에 그 아름답던 단풍들이 동시에 다 떨어졌습니다. 갑자기 겨울이 왔습니다.


싱겁게도 가을이 끝난 것입니다.


테네시 지역은 한 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는 적이 별로 없고 제일 추울 때가 영하 5도 정도라고 해서 겨울옷을 많이 준비해 오지 않았는데 추운 느낌은 어디가나 마찬가지입니다.


몇 년전 겨울에도 색이 있다는 것을 처음 느낀 적이 있습니다. 정초에 북한산을 갔는데 눈위에 나뒹구는 낙엽에도 색이 있고 발가벗은 나무에도 색이 있어 겨울산도 아름답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봄과 여름, 가을에만 색이 있는 줄 알았는데 겨울에도 색이 있다니... 나이 듦과 동시에 찾아오는 징조들 가운데 하나라고 진단했습니다.


젊어서는 여름만 좋은 줄 알았다가, 그리고 가을이, 봄이, 겨울이 이러한 순서로 나에게 자연은 다가 왔습니다.


그렇게 겨울 색이 있다는 것을 알게된 다음 나는 갑자기 망막이 떨어졌다는 진단을 받고 급작스럽게 수술을 하고 한 3개월을 집에 누워 쉰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의 몸이 회복되어 가면서 봄도 왔고 그 해 봄이 얼마나 새삼스럽던지. 이렇게도 아름다운 색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어 얼마나 감사한지. 그 이후 나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 찬탄하는 편입니다.


이곳에 와서 구경을 가면 젊은이들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고 노인네들과 어린이를 동반한 부모들이 대부분입니다. 할 일없는 노인네들이 아니라 그만큼 자연으로 돌아가야할 때가 가까워져 자연에 감탄하며 힘겹지만 열심히 다니고 있는 것이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새삼 느끼는 생각들로 잠시나마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나는 왜 이제 와서야 마치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고 살아온 사람처럼 이러는 것일까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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