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통신 9 - 미국땅에서 정신대 문제를 생각하다
November 15, 1999
11월 12일 금요일 오후, 이 곳 테네시주의 내슈빌(Nashville)에 한국의 정신대 할머니가 오셨습니다. 밴더밸트(Vanderbilt) 대학 아시아-아메리카 학생회 초청으로 이루어진 이 강연회에는 250여명의 학생들과 주민들이 참석하여 김윤심 할머니의 증언을 들었습니다.
약 1시간 동안 통역을 하면서 이루어진 할머니의 증언. 나의 예상을 넘어선 많은 방청객들도 놀라웠지만 한국에서 멀리 떨어진 미국땅에서 뜻밖에 만난 정신대 할머니의 증언을 통해 여러 가지의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기억을 더듬어 봅니다. 여성개발원에서 일하는 동안 저는 정신대문제를 기사화하기 위해 정신대와 관련한 여러 가지 자료를 읽기도 하고 회의에도 참석하면서 정신대문제가 한국에서, 국제적으로 이슈화하는 되는 과정을 10여년 지켜 보아왔습니다. 마치 정신대와 직접 관련되지 않은 제3자의 객관적인 입장에서 말입니다.
90년을 전후하여 정신대 문제가 부상되면서 정신대문제대책위원회가 발족되고 이를 국제적인 여성인권문제로 이슈화하는 작업을 통해 정신대문제는 여성문제를 넘어선 사회문제로 끌어온린 여성운동의 개가의 하나로만 파악하고 있었던 저를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윤심 할머니의 증언을 통해 비로소 이런 이국땅에 와서야 정신대문제를 마음으로 접하게 됐습니다. 증언을 하는 가운데 할머니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통역자도 울먹울먹하면서 통역하였습니다. 가슴이 북받치고 저도 함께 울었습니다. 오랜만에 눈물을 흘렸던 같습니다. 아마 방청객들이 한국인이었다면 그 장소가 눈물바다가 되었을 것입니다.
69세의 김윤심 할머니. 워싱톤의 정대협 관계자와 함께 오신 할머니는 현재 정신대 할머니 가운데 비교적 연세가 적으신 편이어서 해외로 증언을 많이 다니신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이제 잊혀가고 있는 정신대문제가 해외에서 이렇게 할머니의 증언을 통해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이 곳에 와서 생소하게 접한 단어 가운데 하나가 ‘조국’이란 단어입니다. 한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나라를 ‘조국’이라 거의 부르지 않았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냥 우리 나라이기 때문인데 반해 미국에 사는 한국인에게 우리 나라는 미국도 한국도 아닌 조국인 것입니다. 이 곳에서 듣는 ‘조국’이란 단어에는 강한 애국적 열망이 담겨있습니다. 독립운동가가 지니고 있었을 ‘조국’의 이미지입니다. 그 조국에 대한 열망으로 미국땅에서 민주화운동을 하였고 지금도 한국의 분단상황을 걱정하며 조국의 통일을 위해 기도합니다. 조국의 통일을 위해 기도할 때 나는 이방인이 되는 느낌을 받습니다. 나는 이처럼 열망을 갖고 기도한 적이 있는가고.
부끄러운 우리의 역사 가운데 하나인 정신대 문제가 미국땅에서 유혼처럼 떠돌고 있습니다. 성의 착취와 인권유린이 한 인간을 저토록 비극적인 삶을 살게 하는 역사가 이제는 또다시 반복되지 않아야 함을 김윤심 할머니의 삶의 증언을 통해 우리에게 미국인에게 강하게 전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