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박함이 문화를 만든다
2018.9.12
이춘아 지역문화네트워크 공동대표
[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
델핀 미누이 지음/ 임영신 옮김. 더숲
[서재를 떠나 보내며]
알베르토 망겔 지음/ 이종인 옮김, 더난
‘도서관’에 관한 책 두 권을 읽었다. 한 권은 공공의 도서관이고 또 한 권은 개인 도서관이다. 한 권은 폭격 속 전시 상황에서 책이란 무엇이며 도서관이란 무엇인가를 되묻고 있는 것이라면 또 한 권은 평생을 책과 함께 살아온 한 장서가가 개인도서관을 정리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삶과 동일시해왔던 책에 대한 이야기이다.
책=마음의 양식이라는 공식을 여전히 떠올리며 살아온 나는 [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을 책이란 도서관이란 우리에게 무엇인가, 라는 관점으로 읽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부분에 밑줄 그었다.
‘아흐마드의 몸이 떨려왔다. 그의 가슴속 모든 것이 요동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지식의 문이 열리는 전율이었다. 익숙한 대치 상황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 나라의 자료를 조금이라도 지켜내는 것. 그는 책의 세계로 도망치듯, 책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이들은 책을 통해 영감을 얻고 때로 그것을 자기 것으로 삼았다. 이들은 이 모든 이야기 속에서 그동안 너무나 오래 빼앗겼던 마음의 양식을 길어 올렸다.’
이 책의 저자는 델핀 미누이, 프랑스 출신의 저널리스트이자 분쟁 지역 전문기자로 현재는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 현지특파원이라고 한다.
요즘 무심코 글자들을 정보 중심으로 검색하듯 읽게 된다.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여서 이 두 책을 읽을 때도 ‘책’‘도서관’이라는 단어를 염두에 두고 읽었다. [다라야의 지하비밀도서관]을 읽고 난 뒤 생각해보니 이 책의 배경이 된 시리아라는 나라, 시리아 내전에 대해 뉴스로 간혹 접했던 기억만 있었지 시리아도 시리아 내전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그냥 ‘책이란 도서관이란 우리에게 뭐지’라는 화두에만 매달려 이 책을 읽었음을 느꼈다. 시리아 내전의 긴박한 상황이 책 안에 기술되어 있었지만 내게는 뉴스에서 전하는 사실로서 받아들여질 뿐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었다.
관련 영상물을 찾으니 '화이트 헬멧: 시리아 민방위대(감독: 올란도 폰 아인지델)’라는 다큐가 있었다. 자원봉사로 이루어진 긴급구조대원의 인터뷰를 통해 시리아 내전을 알리고 있다. 그 다큐를 보고 난 뒤 [다라야]를 다시 읽으니 책의 내용이 달리 읽혔다. 또 다른 밑줄이 그어졌다.
‘폐허에서 책 수집은 계속되었다. 버려진 집과 무너져내린 사무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무너진 사원들, 아흐마드는 어느새 그 일을 좋아하게 되었다. 새로운 책을 수집하러 나갈 때마다, 버려진 책들을 찾아내고 잔해 속에 파묻혀 있던 낱말들을 되살려내는 더없는 즐거움을 맛보았다. 발굴 작업은 주로 맨손으로 하고, 가끔 부삽을 쓰기도 했다. 자원봉사자, 학생, 저항가 등 모두 약 마흔 명이 잔해를 수색하러 가고자 비행기 소리가 잦아드는 틈을 시시각각 살폈다. 단 일주일 동안 이들이 구해낸 책은 6,000점이었다.’
저자인 델핀 미누이는 긴박한 상황속에서 이러한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은 어떤 책을 읽으며, 어떤 주제에 관심을 가지는지 인터뷰했다. 한 권 한 권의 책이 마치 처음 맞닥뜨린 귀중한 성자의 유물과도 같았다, 라는 말을 들으며 내린 결론은 “그들은 그 책을 나침반처럼 의지했다. 어쩌면 그것이 그들의 눈에는 특별히 귀중한 보물, 즉 무한한 자유의 개념을 함축한 것이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였다.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 낭만적인 '책=마음의 양식’ 공식이 무색해졌지만, 생명이 오가는 절박한 상황에서 책에 의지하고, 함께 나누고자 했던 지하비밀도서관은 살아 움직이는 보물창고였고 간직하고픈 문화결사체였다. 그 긴장감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요즘 자주 듣는 단어들이 공부를 놀이처럼 예술을 놀이처럼, 이란 것이다. 나 역시 그래야 한다고 여겨왔었다. 강압적인 공부방식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놀이처럼, 예술도 엄중한 방식이 아닌 놀이 속에서 익혀야 하는 것이라고. 이 책을 읽고 난 뒤 그동안 너무 안이하게 책을 읽어왔다고 반성했다. 절박한 심정으로 책을 읽어야 할 것이라고. 누구에게나 있었던 청년의 시기 나름의 절박함은 책 속에서 깨달음을 찾고자 했고 그 진지함이 문화를 만들어왔다. 문화는 절박함 속에서 각인되면서 만들어진다.
또 다른 형태의 절박한 상황에서 쓰인 책의 이야기가 있다. 1948년생 한 장서가인 알베르토 망겔은 앞으로 십년 후면 아마도 이승에 있을 거라 예상하고 책을 처분했다. 그래서 책 제목이 [서재를 떠나보내며]이고 영어 제목은 Packing My Library이다. [교수신문] 칼럼에서 이 책을 소개받았다. 평생을 책에 목숨 걸었던 교수들이 한번 읽어 봤으면 하는 칼럼이었다. 저자인 망겔은 유한한 삶을 정리하듯 애지중지 했던 자신의 책을 정리해서 상자에 넣어 은퇴시켜버렸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은 있었지만 은퇴하는 교수들이 오랫동안 작업실이자 안식처였던 서재를 정리해야할 때와 유사하다.
저자는 책을 은퇴시켜버린 배경, 과정 등은 아주 사소하게 처리해버리고 책과의 교감을 통해 자신을 만들어 온 살아있는 생물체로서 책을 이야기하고 있다. 물질이라는 책은 상자에 넣어 싸버렸고 언제 다시 풀어 보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책을 통해 자신에게 남겨진 정신적 유산은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쓰고 있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라는 노래 가사가 떠오르기까지 한다. 책을 싸버렸는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프랑스에서 쫓겨나다시피하여 캐나다로 이주하게 되면서 책을 정리했는데 자신의 고국인 아르헨티나에서 연락이 온다. 국립도서관 관장으로 와달라는 것이다. 외교관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해외를 다니다 아르헨티나로 돌아와 학교를 다니던 청년시절 눈 먼 보르헤스에게 4년간 책 읽어주는 자원봉사를 하면서 보르헤스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았었는데 보르헤스 역시 국립도서관장을 지냈었다. 책이라는 강력한 인연이 보르헤스와 망겔을 연결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책의 내용은 어렵다. 어려운 이유는 언급되고 있는 책과 관련한 내용에 대해 내가 너무 많이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문장 속에 모르는 단어가 많으면 하나하나 단어를 찾아 외우고 음미하기 전에는 그 문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도 같다. [다라야]도 마찬가지였다. 시리아 내전의 상황을 알지 못하고 내가 보고자 한 정보검색형으로만 읽게 되면 이게 뭐지, 라는 혼돈에 빠지듯. 망겔이 언급하고 있는 책 제목은 알겠는데 제대로 읽지도 않았던 탓도 있지만 내가 알고 있는 책의 정보와는 접근 자체가 다른 삶 속에 녹아든 책을 이야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마음의 위안으로 책이 아닌 삶 속에 깊숙이 자리한 사랑 고백 같은 느낌이어서 당황하기까지 했다.
[다라야]와 [서재를] 세상에 대한 궁금증으로 음미하듯 읽을 때처럼 찬찬히 다시 읽으면서 결심한 것이 있다. 앞으로 책을 읽거나 사람을 볼 때 선별하듯 또는 정보 채우기 식으로 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보검색 중심의 가벼운 사고가 습관화되어 깊이 없는 스토리에 젖어있게 되는 이중성을 갖게 된다. 절박한 심정으로 책을 선정하여 읽되 두 번 이상 읽을 것이다.
[서재를]에서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는 부분은 망겔의 아버지가 나오는 대목이다. 망겔이 학교에 가기 위해 아르헨티나로 돌아가는데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방에 서고를 만들고 서고를 채울 수 있도록 비서를 시켜 책을 사 오게 한다. 사 온 책이 책꽂이에 맞지 않자 비서는 책을 잘라내고 책 표지를 가죽으로 제본을 했는데 그것이 오히려 편안한 동화의 나라같은 인상을 주었고 잘려나간 내용을 퍼즐 맞추듯 상상을 하게 했고 결국은 그 책들의 원본을 찾아 읽게 되었다고 한다. 또 이런 부분도 인상적이다. 퀘벡국립도서관이 10주년 기념으로 망겔이 쓴 [밤의 도서관](2014)을 책과 육필원고로 전시하고 싶다는 제안을 했는데 망겔은 밋밋한 전시가 될 것 같아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극연출가인 로베르 르 파주에게 부탁하여 쇼 형태의 새로운 기획을 하게 한다. 르 파주는 2015년 10월 창작물을 만들었다. 도서관이라는 상징성과 망겔의 서재를 상상으로 재현하기 위해 관객들은 3-D 안경을 쓰고 도서관을 방문하는 체험을 하게 했다. 2015년 시점은 망겔이 프랑스의 서재와 작별한 직후라 재현된 그 서재를 3-D 영상으로 보면서 망겔은 꿈속과 혼동하기 시작했다. 책등만 보아서는 제목을 알 수 없는 책들이 빽빽이 꽂혀있는 통로를 끝없이 걸어가면서 언젠가 읽고 싶었다거나 이미 읽었으나 잊어버린 텍스트들을 재구성하면서 꿈꾸듯 영상을 보았다고 한다. [밤의 도서관]은 목차가 재미있다. 도서관이 우리 문명사에 미친 핵심 키워드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화, 정리, 공간, 힘, 그림자, 형상, 우연, 일터, 정신, 섬, 생존, 망각, 상상, 정체성, 집, 이러한 단어를 망겔은 어떻게 풀어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러한 키워드들이 르 파주에게 영감을 주어 ‘도서관’이라는 자칫 지루할 수 있는 공간을 색다르게 체험하게 하는 연출을 시도하게 했다.
이사를 자주 다녀야 하는 우리의 삶은 한때 애지중지하며 밑줄 그었던 책들을 쉽게 버리게 한다. 어쩌면 책처럼 인간관계도 간단하게 폐기처분해 버리는 삶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망겔은 [서재를]에서 모든 서재는 일종의 자서전이라고 시작하고 있다. 그 자서전을 어렵지 않게 지워버리는 삶을 반성한다. 최근 나는 책을 보관할 창고형 서재를 만들면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이름을 도용해보려고 한다. 책이라는 미명으로 우리를 옥죄어왔던 점에서 책 자체는 정신적 감옥이며 그로부터 해방하기 위해 책 속에 갇혀 책을 읽기보다는 지나온 시간들을 반추하는 사색의 공간이었으면 하는 마음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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