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통신17 - 이제 그만 하산하거라
January 12, 2000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유홍준 교수가 독자들의 마음에 깊이 새겨준 단어는 ‘아는 것만큼 보인다’ 였습니다. 그 단어는 이제 마치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 라는 표현만큼이나 우리 속에서 몇 안되는 인용문이 되어 어느날 갑자기 “아 그렇지”라고 깨우치게 되는 화두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아는 것만큼’.
우리는 얼마나 살아야, 얼마나 배워야 <아는 것>이 보일까요. 정보화 사회로의 전환은 평생학습이라는 개념과 연결되면서 평생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지만 진정 내 눈에 보이는 순간은 몇 안되고, 보다 더 많이 보다 더 빨리 정보습득을 강요당하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저께 새천년 벽두에 타임 워너와 아메리카 온 라인이 합병을 발표하면서 보다 빠른 정보, 보다 질 높은 정보의 제공이라는 세련된 무장 앞에서 정보의 소비자이기도한 나는 기뻐하기 보다 오히려 왜소해짐을 느끼게 됩니다. 생산의 측면에서 보면 정보의 질이 곧 돈으로 연결되는 거대 정보산업체의 선두를 보는 것 같아 위축감마저 듭니다. Y2K 공포는 새로운 정보산업 시대의 개막을 터뜨릴 연막탄이었던 모양입니다.
‘이제 그만 하산하거라’ 라는 말을 떠올려 봅니다. 한국인에게는 전설처럼 살아있는 표현입니다. 참 기막힌 표현입니다. 어느날 도사님이 제자에게 이제 그만 하산하거라 하면 그 수제자는 아닙니다 도사님 옆에서 더 배울랍니다. 아니다. 이제 내가 가르쳐줄 것은 다 가르쳐주었다. 제자는 울면서 도사님을 떠나 산을 내려옵니다.
여기서 유의하여 보아야 할 것이 가르침의 방식입니다. 처음에는 부엌에서 설거지하고 마당 청소하고 나무 주워오고 장작패고 그러길 몇 년 하다가 어느 날 스승은 방으로 불러들여 가르치기 시작하고는 때가 이르렀다고 판단될 때 스승은 하산하라고 말한 후 사라집니다.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때와 그만 가르쳐도 되겠다는 때를 정확히 판별하는 스승이야말로 도사님입니다.
이쯤와서 더 궁금해 지는 것은 스승이 가르쳤을 내용입니다. 그 스승 역시 여러가지 것들을 가르치고 훈련시켰을 것입니다만 가르침의 핵심은 제자가 앞으로 살아갈 때 처신하고 판단할 수 있는 시각을 틔어 주는데 주안점을 두었으리라는 것입니다. 더 많은 것을 가르칠 수 있으나 이제 그 정도이면 혼자서도 터득해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될 때 가르침은 더 이상 그만인 것이지요. 덧붙여 예수님의 공생애 가운데서 목회 활동을 했던 기간은 50일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는군요. 그럼에도 그의 가르침은 이천년을 살아 움직였습니다.
배워야한다는 부담감에서 우리를 위로해 주는 말이 하나 더 있습니다. ‘우리가 배워야할 것은 유치원에서 다 배웠다’. 그런데 더 이상 무엇을 배우겠다고 이러고 있는 것일까요. 아마도 이제 그만 하산하거라라고 말할 도사님을 못만난 탓이라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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