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통신

조조할인

이춘아 2019. 8. 6. 19:36


미국통신16: 조조할인

January 5, 2000

 

 

이곳 역시 다를 바 없는 것이 휴일 대목을 겨냥한 신문의 영화상영 광고입니다. 일주일에 목요일이나 금요일에 한번 정도 광고가 실리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새해 연휴에는 거의 매일 영화광고가 판을 채우고 있습니다.

 

미국에 와서 제일 먼저 정보를 얻는 것이 그래도 신문입니다. 신문지면과 간지의 광고를 통해 물정을 파악하였습니다. 물건의 이름과 가격 등을 아는데 좋습니다. 그러다 영화광고에 눈이 가기 시작했는데 제일 먼저 보게 된 것이 조조할인이 없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게는 조조할인에 대한 꿈이 있었지요. 500원 깎아주는 것도 그렇지만 복잡하지 않게 조용하게 영화를 보는 것, 남들 일할 때 할랑하게 영화보는 재미 등 그런 것이지요. 그런데 조조할인 영화가 끝난 후 밖에 나갔을 때 아직 영화의 잔상이 채 지워지기도 전에 훤한 대낮의 바쁘게 움직이는 일상의 모습에 직면할 때의 그 민망함이란.

 

꿈만 꾸던 조조할인 영화를 마음껏 볼 수 있는 조건이 제게도 주어졌습니다. 몇 년전 옮긴 직장에서 5분도 되지 않는 곳에 영화관이 생겨 토요일이면 빨리 근무를 끝내고 1130분경 시작되는 조조할인 영화를 보고나면 130분경 태연하게 집으로 퇴근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점심은 걸러야됐지요. 늘 그런 것은 아니고 사실 몇 편 밖에 보지 못하긴 했습니다.

 

조조할인에 대한 미련은 미국에 와서도 계속되어 자세히 살펴본 결과, 조조할인이란 용어는 bargain matinees(대낮 할인)이라 하고 할인 기준은 오후 430분 또는 530분 이전까지입니다. 그리고 요즘 같은 연휴에는 12시 상영도 몇편 있긴 하지만 오후1시 이후 상영이 대부분입니다. 입장료는 어른 7.75달러, 대낮할인과 어린이가 4.75달러입니다. 3달러(3*1200=3600)라는 파격적인 할인가입니다. 25센트라고 붙여놓은 엽서 한 장에도 8%의 세금이 붙는 나라에서 영화비에는 세금이 없는지 아니면 포함됐는지 그냥 그 가격만 내면 되는 것이 신기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매력적인 조건이 또 하나 있습니다. 어떤 영화관에서는 지나간 영화를 시간에 상관없이 1.50달러에 운영하고 있습니다. 보고 싶었는데 놓친 영화가 있으면 볼 수 있는 소위 영화관람객을 위한 서비스인 셈입니다. 1.50달러로 볼 수 있는 영화관에서 상영하고 있는 프로는 스타워즈: 에피소드 1, 랜덤하트 등 10편인데 그리 오래된 영화도 아닙니다. 1.50달러 내고 하루종일 있을 수도 있습니다. 입장권 낸 후 이 방 저 방 옮겨다니면 되니까.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별로 없나봐요. 통제하는 사람들이 없는 걸 보면. 믿고 사는 것이겠지요.

 

조조할인에 관심은 많았지만 영화 보러 간지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특히나 난해한 영화영어에 질린 저는 텔레비전도 거의 보지 않았는데 몇 달 지나니까 자주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저를 발견하고는 제대로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거부감은 줄어들었다는 것을 느끼고 영화관 출입에 도전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독촉에 마지 못해 따라간 포켓몬 영화를 본 이후 지난 1210일 미국온지 넉달 기념으로 남편과 영화를 보러갔습니다.

 

Green Miles가 첫 개봉하던 바로 그 날이었는데 영화섹션 지면에는 그 영화와 관련한 기사가 가득 실렸습니다. 그리고 주연배우인 톰 행크스가 영화촬영을 위해 테네시에 있는 옛날 감옥까지 와서 촬영을 했었다는 특별 인터뷰와 함께. 설레는 마음으로 첫날 상영의 첫 회를 보러갔습니다. 당연히 조조할인이지요. 첫날 첫회라 자리가 없을까봐 걱정도 하면서. 그러나 썰렁할 정도로 큰 영화관에 띠엄띠엄 앉아 영화보고 있는 사람들은 노인들뿐 우리같은 중년층은 머쓱해지더군요(얼마나 할 일이 없었으면...).

 

조조할인이 나온 김에 영화관을 좀더 소개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cool springs에는 영화관이 두 곳 있습니다. 한 곳은 두 달 전 넓은 땅에 신축한 20개의 상영관이 있는 어마어마하게 큰 영화관으로, 건축구조는 한 층 짜리입니다만 20개 상영관이 스태디움식 의자로 만들어져 2-3층 건물에 해당합니다. 요즘 그 영화관에서 상영되고 있는 영화는 Galaxy Quest, The Talented Mr. Ripley, The Green Mile을 비롯하여 아이들 프로인 Stuart Little, Toy Story II 13개의 프로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또 한 곳은 조금 전 소개한 한물간 프로를 상영하고 있는 1.50달러짜리 영화관입니다.

 

그 신축영화관을 살펴보면 상영관이 모두 같은 사이즈는 아니고 영화의 규모 즉 신프로이면 큰 곳에서 상영되다가 다른 새 영화가 들어오면 작은 곳으로 옮겨가고 상영 시간대도 축소됩니다. 그래서 The World is not Enough 같은 프로는 요즘 저녁 7시와 945분에만 상영되고 있습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1.50달러짜리 영화관으로 넘어가는가 봅니다.

 

테네시 신문에 실리고 있는 영화광고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체인점 중심과 신프로 중심의 광고 두가지입니다. 영화관도 체인점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카마이크와 리갈이라는 큰 체인점 두 곳을 중심으로 각 지역의 영화관 프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영화가 나오면 사진광고와 함께 개별 영화관도 소개됩니다.

 

한 영화관내에서 상영되고 있는 프로에도 서열이 있어 제일 먼저 소개되는 영화가 신프로, 끝에 위치한 프로는 구프로 그렇게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것도 있네요. 음향조건으로 Dolby 시스템과 최근 나온듯한 Thx 시스템 상영을 구별하고 있습니다. 같은 영화라도 관객이 많은 프로는 시간대와 상영관을 달리하고 Thx 인지 Dolby인지 구별하고 있습니다. 관객들의 조건에 맞추어 철저하게 선택하여 즐기라는 것이겠지요.

 

이곳은 겨울방학이 짧아 14일이 개학이었는데 개학전날인 13, 아이가 Stuart Little을 보겠다하여 영화관을 찾아가니 아니나 다를까 영화관의 서너배 크기는 될듯한 주차장이 가득 찼더군요. 비오는 날의 영화관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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