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통신15 - 켄터키에는 KFC가 없다
December 23, 1999
며칠전 테네시 주 바로 위에 있는 켄터키 주를 방문하였습니다. 켄터키에서 공부하고 있는 유학생 가족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켄터키는 다른 주에 비해 관광명소가 비교적 적은 편입니다. 특히 한국인들에게 켄터키는 링컨의 통나무집 생가 이외에는 거의 알려진 정보가 없습니다.
최근 우리에게 켄터키는 아주 친근하고도 익숙해진 용어가 되었는데 그 어원이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KFC)입니다. 켄터키에 유학온 분의 말에 의하면 한국의 가족들이 켄터키에 살고 있으니 켄터키 치킨은 실컷 먹겠다고 하는데 정작 그 분은 1년 반을 사는 동안 KFC를 한번도 본 적이 없는데 며칠전 KFC를 발견하고 한번 가볼려고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유학생 가족을 링컨의 생가에서 만나기로 하고 그 지역에 대한 정보를 파악해 보니 링컨 생가는 하젠빌(Hadgenville)이라는 지역에 있고 링컨 박물관과 링컨이 소년시절 살던 동네까지가 관광명소로 되어있었습니다. 그곳을 구경하고 또 인근에 위치한 곳에 미국이 자랑하는 작곡가 포스터(Foster)가 ‘나의 옛 켄터키 집’을 작곡하였다는 집을 찾아갔습니다. 국립역사보존구역인 링컨 생가를 제외하고는 모두 입장료가 있었습니다.
유학생 집에서 하룻밤을 지낸 후 함께 다음날도 관광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 유학생 가족은 켄터키에서 온지 일년반이 되도록 그 유명하다고 알려진 링컨 생가조차 구경갈 여유가 없었던지 이 기회에 손님들과 함께 켄터키를 구경할 작정을 했다고 합니다.
다음날 우리는 그 유학생이 공부하고 있는 Asbury 대학과 신학교를 구경하였습니다. 마침 한국인 교포 학생이 학교 안내원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 그 분으로부터 자세한 안내까지 받고 총장까지 만나 인사할 수 있는 배려까지 해주었습니다. 에즈베리 대학과 신학교는 렉싱톤 시에서 조금 떨어진 윌모어라는 지역에 있습니다. 윌모어에는 4천 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데 3천 여명이 그 대학의 학생들로 소위 대학촌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대학촌인 만큼 요즘 학생들이 좋아하는 맥도날드 같은 페스트푸드 점이 진출하려고 하였으나 주민들의 반대로 거부되었다고 할 정도로 건전하고도 차분한 지역분위기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김치뽁음밥으로 점심을 먹은 후 우리는 함께 그 곳에서 30여분 떨어진 쉐이커타운(Shakertown)을 방문하였습니다. 쉐이커교도들이 집단생활을 했다고 하는 곳입니다. 쉐이커교는 퀘이커교와 유사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는데 쉐이커교는 몸을 옆으로 흔들면서 예배본다고 하여 이름 붙여졌다고 하는데 퀘이커교와의 차이는 결혼 여부에 있다고 합니다. 퀘이커교는 결혼하여 생활할 수 있으나 쉐이커타운에서는 결혼하지 않은 남녀가 함께 공동 생활을 하였던 곳이었고 노동이 곧 예배라고 하는 노동을 신성시하며 목회자를 두지 않는 평신도 중심의 공동체를 이루어 생활했던 곳입니다. 이제 그 교도들은 없고 그들이 생활했던 마을만 관광지가 되었고 그들이 만들어 사용했던 식품과 생활용품이 관광상품이 되어 박물화 된 곳이었습니다만 그들이 정갈하게 살았던 곳의 삶의 흔적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목장길을 따라 다음 우리가 찾아갔던 곳은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의 원조입니다. 그 어느 안내책자에도 언뜻 찾아보기 어려웠던 그 곳을 링컨 박물관 안내원으로부터 듣고는 2시간을 운전하여 찾아갔습니다. 오로지 한국인들의 물음에 답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집 그것도 원조라고 하는 곳을 가보았다는 것으로. 가는 길에 어두워져 눈발이 날리고 있었습니다.
런던이라고 하는 지역에 있다는 소리를 듣고 런던의 안내소를 들렸더니 그곳에서 30여분 떨어진 코빈(Corbin)이라는 동네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오후10시까지 운영한다고 하여 눈발날리는 밤길을 찾아갔습니다.
켄터키 치킨집의 원조는 KFC라 하지 않고 Sanders Cafe라고 하는 곳이었습니다. KFC 상징인 할아버지의 이름을 붙인 카페로 1940년대에 그곳에서 오늘의 치킨이 만들어졌던 모양입니다. 그곳도 Museum이라고 붙였는데 그 가게 한 곁에 예전에 사용되었던 부엌과 카운터 등이 전시되어있어 치킨을 시켜 먹으면서 구경하도록 되어있습니다. 안내팜플렛에 의하면 단체관광객을 안내해온 운전사는 무료로 먹을 수 있다는군요.
어디서나 먹어도 그 맛일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을 함께 저녁으로 먹은 후 유학생 가족과 KFC 원조집 앞에서 사진 한 방씩 찍고 아쉬운 작별을 나눈 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틀동안 켄터키 주를 다녔건만 원조 이외에의 KFC 가게는 한곳 밖에 보지 못했습니다. 그것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말입니다.
12월 22일자 <크리스찬 사이언스 모니터>에 재미있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일본의 크리스마스를 소개하고 있는 내용이었는데 이 가운데 ‘A Kentucky Fried Christmas'라는 소제목이 있습니다. 1974년 일본에 KFC가 들어온 이후 12월 23일에서 25일사이에 2백만여명이 KFC를 크리스마스 음식으로 즐기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 추수감사절의 상징적 음식이 칠면조이듯이 일본 크리스마스 음식이 KFC가 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서울에만도 곳곳에 있어 이제 KFC는 명실공히 다국적 음식이 되었건만 정작 켄터키에는 KFC가 없다는 사실을 1900년대의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해 봅니다.
12월30일부터 1월 4일까지는 컴퓨터 사용을 자제해달라는 톡투미의 정보에 따라 한 동안 휴가를 갖고 내년에 뵙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