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시작해서 머리로 완성하라”
시작했어도, 어느 시점에서는 작품을 머리로 진단해야 한다. 만일 모티프로 멜로디를 만들었다면, 그다음에는 트렌드 분석을 기반으로 그 멜로디에 어떤 리듬, 어떤 악기, 어떤 가사를 덧붙일지 머리로 완성해가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트렌드는 대중의 트렌드와 자신의 트렌드이다.
대중의 트렌드를 분석한다는 것은 대중의 취향 변화를 읽는 것이고, 자신의 트렌드를 분석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이 요즘 어떤 리듬, 어떤 코드, 어떤 멜로디, 어떤 가사를 많이 썼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모티프는 분명히 가슴에서 느껴지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성향을 보인다. 따라서 오래 작품을 만들다 보면, 누구든지 무언가를 반복해서 즐겨 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처음에는 그런 성향이 자신의 ‘색깔’이 되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면 그것이 자신의 ‘한계’가 된다.
머리로 하는 분석은 롱런에 있어서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되는데, 이 분석이 가능하려면 이론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어떤 분야든지 이론을 공부하지 않고도 뛰어난 작품을 만드는 작가들이 있지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롱런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시대의 트렌드를, 또 자신의 트렌드를 치밀하게 분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론은 분석을 하는 데에 필요한 안경 같은 것이다.
이 안경을 끼고 보면 모든 작품이 숫자와 기호로 바뀐다. 그제야 숫자와 기호들을 통해 패턴이라는 것을 찾아낼 수 있다. 그러면 그 패턴을 따라갈 수도, 피해갈 수도 있는 것이다.
대학교 2학년 때 난 음악을 하기로 결심하면서, 음악이론부터 공부하기 시작했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음악들이 이론적으로 어떤 곡들이었는지 알고 싶었고, 또 내가 만드는 곡들이 이론적으로 어떻게 되어 있는지 알고 싶었다.
1집 <날 떠나지마>에서는 연속 도미넌트 진행, <너에게 묻고 싶어>에서는 4도 전조, 2집 <청혼가>에서는 경과코드, 3집 <그녀는 예뻤다>에서는 대리코드, 4집 <허니>에서는 블루스 음계를 사용했다. 이론을 공부하면서 계속 나 자신을 변화시키고 발전할 수 있었다.
그래서 주변의 다른 뮤지션들이 감각에만 의존해 작업을 하면 항상 이론을 함께 공부하라고 조언했지만, 그 말을 주의 깊게 듣는 친구는 많지 않았다. 놀라운 재능을 가진 천재들도있었지만 모두 히트 작곡가로서의 수명은 10년을 넘지 못했다. 이유는 모두 같았다. 자신의 ‘색깔’이 결국 자신의 ‘한계’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창작자들이 머리로 완성하는 단계에서 고민해야 할 두 가지를 말해보자면,
첫째, 새로운 주제를 다루라. 만일 진부한 주제라면 새롭게 표현하라
둘째, 창작과정에서 게을러지지 마라
한 줄, 멜로디 한 음이 결과를 좌지우지하지 않을 수도 있겠으나, 이것은 옷을 만드는 장인이 단추를 고르는 것과 같다. 한때 인기 있는 곡이 아니라 10년, 20년이 지나도 사람들이듣고 부르는 노래를 만들려면 디테일에 신경을 써야 한다.
가슴으로 시작해서, 가슴으로 완성하는 사람은 대박을 떠뜨릴진 몰라도 롱런하기 힘들고
머리로 시작해서 머리로 완성하는 사람은 롱런을 할진 몰라도 대박을 터뜨리기 힘들다.
가슴으로 시작해서 머리로 완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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