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철학 연구자다. 철학 중에서도 대다수 독자들에게는 생소할 영화철학을 연구하는 사람이다. 영화철학과 방탄 사이에 어떤 접점이 있는가?
아이돌 그룹으로서 방탄은 영화철학과 무관하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방탄은 아이돌 그룹을 넘어 오늘날 사회 구조, 미디어, 예술형식 등에서 일어나고 있는 근본적인 구조 변화를 보여준다. 이 변화에는 기존의 위계질서와 권력 관계를 침식하며 사회 전체를 뒤바꾸는 혁명의 함의까지 발견된다.
방탄의 성공 요인을 분석한 기사가 지난 몇 달간 국내외에서 쏟아졌다. 언론들은 좋은 음악, 파워풀한 칼군무, 수준 높은 뮤직비디오, 트렌디한 패션 감각과 외모,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담아 젊은 층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가사, SNS를 통한 활발한 커뮤니케이션 등을 그 비결로 꼽고 있다.
실제로 이런 것들이 없었다면 방탄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핵심적인 요인은 음악적 탁월성이다. 심장에 팍팍 꽂히면서도 트렌디하고 중독성강한 리듬과 멜로디, 공감을 자아내며 진정성을 보여주는 가사, 가사와 혼연일체를 이룬 퍼포먼스, 게다가 뮤직비디오는 영화에 버금가는 수준 높은 이미지를 보여주며 다양한 의미까지 담고 있다. 멤버 모두가 작사, 작곡에 프로듀싱까지 가능하고 대부분의 무대를 격렬한 안무와 함께 라이브로 소화해내는 것은 여기에 후광을 더한다. 새로운 유형의 ‘아이돌아티스트’가 출현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음악도 진정성이 없었다면 전 세계 팬들의 마음에 울림을 주고 그들이 연대하여 행동하게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방탄의 진정성은 다른 누군가에 기대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들의 진정성은 자신들이 삶에서 느끼는 시련과 아픔, 절망, 두려움, 희망에서 발원한다. 이러한 것들이 가사, 멜로디, 리듬에 담겨 있을 뿐 아니라 삶과 음악에 대한 태도로도 드러나는 것이다. 방탄 멤버들의 실제 모습을 담은 수많은 영상은 음악 외적인 면에서 그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방탄은 일상생활이나 무대 뒤 모습, 오락 프로그램 등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 SNS를 통해 팬들과 소통한다. 그들이 생산한 방대한 양의 콘텐츠를 보며 시청자들은 방탄 멤버들의 인간적인 매력에 빠져든다. 연출된 모습이나 캐릭터로서가 아니라 각자의 개성이 살아 있으면서 솔직하고 성실하고 서로를 아끼는 멤버들의 모습은 그들이 음악으로 전하는 메시지에 대한 믿음을 충족시킨다.
여기에는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방시혁 대표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언론 인터뷰에 따르면 방 대표는 이 소년들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자유를 주었던 것 같다. 치열한 음악 시장에서 아이돌에게 이런 자유를 주는 것은 무모하다고 할 만큼 용기 있는 선택이다. 그러나 결국 방 대표가 옳았다. 이 선택이야말로 방탄이 자율성과 개성을 지닌 채 자신들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표현하는 아티스트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밑거름이 되었기 때문이다.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지만, 방탄의 진가를 알아보고 헌신적인 사랑과 지지를 보내는 팬들이 없었다면 방탄의 오늘은 없었을 것이다. 사실 방탄에서 아미라는 팬덤을 분리하는 것은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방탄에 매료된 팬들은 자신들이 사랑하는 아티스트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게 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를 갖게 되었고 다양한 온라인, 오프라인 활동으로 이를 실천했다. SNS를 통한 팬들의 활동은 팬클럽의 이름인 A.R.M.Y. (Adorable Representative M.C.for Youth: ‘청춘의 사랑스러운 대변자’ 정도로 옮길 수 있다)에 걸맞게 방탄을 세계로 전진시키는 강력한 군대가 되었다. 번역을 담당하는 팬들은 방탄의 콘텐츠라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몇 시간 안에 영어로 번역한다. 그 번역은 다시 다른 수십 개의 언어로 각각 번역되어 전 세계 팬들과 공유된다. 그 결과 방탄은 아시아와 남미 대륙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도 인정받게 되었다. 방탄의 빌보드 수상과 AMA 무대 공연은 바로 그러한 활동의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방탄과 아미가 추구하거나 원하는 방향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과 결코 무관할 수 없다. 신자유주의적 질서가 지배하고 있는 오늘날의 세계에서 이윤 증대를 위한 자본의 세계화와 자동화 기술은 고용 없는 성장으로 이어지고, 이는 극심한 경재, 승자 독식, 소외, 빈부 양극화를 초래하면서 힘없는 다수에게 패배 의식과 불안 외로움 절망 등을 안겨주고 있다. 동북아시아에 살고 있는 한국 청년의 고민과 고통, 희망이 곧 동남아시아, 유럽, 남미, 북미 등 전 세계 젊은이의 고민과 고통, 희망일 수 있는 시대가 된것이다. 여기에 인터넷과 SNS로 대변되는 통신혁명으로 청년들은 어떤 계기가 주어지기만 하면 그러한 문제의식과 감정과 희망을 현실로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방탄의 음악은 전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이 같은 계기를 제공한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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