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모험이 시작되었다

이춘아 2021. 2. 7. 07:31


김미루, [問道禪行錄문도선행록], 통나무, 2020.


사막, 낙타, 유목민족의 삶에 관한여 내가 강렬한 매혹을 느끼게 된 것은 2011년 늦은 여름, 사진작가로서의 나의 삶의 단면을 다큐화 하는 방송용 작품을 찍기 위해 요르단에 한 달 동안 머물게 된 것이 그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사막의 황폐함이 지니고 있는 이국적이고도 로맨틱한 관념의 포스가 나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그 포스는 손상된 인간관계의 현실태로부터 도피하고 싶은 나의 욕망을 부추겨댔다. 나는 그 여행에서 뉴욕 나의 아파트로 돌아오자마자, 세계의 다양한 사막들과 낙타에 의존하는 유목민족문화에 관하여, 서적과 정보를 광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구글 페이지에서 “사하라 사막의 푸른 인종들”이라고 표기되고 있는 뚜아렉민족에게 시선이 끌리게 되었다. 그들이 휘두른 옷이나 얼굴의 문신이 모두 옥청색의 인디고 염료로 물들여져 있기 때문에 서있는 모습 그 자체가 푸른 생명체처럼 보인다. 나는 이 사막의 종족에 관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했다. 실상 나는 다른 사막종족에 관해서도 아무 정보가 없었다. 이 신비스럽게 옅은 쪽빛 천으로 휘감긴 사람들의 이미지가 너무도 강렬해서 나를 도취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나는 직접 사막에 가서 이들과 만나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나의 단순한 판타지로만 끝나 버릴 공상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몇 달 후에 나는 여행가방 짐을 꾸리고 있었다. 뚜아렉문화를 과시하는 “사막의 제전”이라 불리는 뮤직 페스티발이 매년 정월이면 팀북투에서 가까운 모래언덕 위에서 열린다는 정보를 입수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해, 그러니까 내가 참석한 2012년에 열린 이 뮤직 페스티발이야말로 이후의 정치상황으로 인하여, 그 평화로운 페스티발 역사의 마지막 장이 되어버리고 말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새카맣게 모르고 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영어 관용구에 “여기서 팀북투까지”라고 하면, 그것은 보통 우리의 발길이 미치지 못하는 아주 먼 곳, 전설적 미지의 땅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런 말을 쓰는 사람들도 대부분 팀북투라는 곳이 굳이 실제로 방문할 수 있는 현실적 도시라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한다. 

팀북투는 서아프리카의 육지로 둘러싸인 말리Mali라는 나라(남한의 12배 크기, 인구는 1500만 정도)의 한복판에 존재하는 고대도시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하라 사막의 남쪽 변경에 있는 니제르강 북쪽으로 약 20키로 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이 도시는 1988년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될 정도로 특별한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지금 가보면 흙벽돌로 지은 집들이 얼기설기 배치되어 있는 뿌연 먼지길만 황량하게 보이는 빈곤한 도시이다. 

그러나 14세기 말리제국 시대에 거슬러 올라가보면, 팀북투는 북아프리카 문화중심지였다. 이슬람 스칼라십과 아프리카 무역의 환상적 센터였다. 이곳은 북부아프리카의 캐러밴 루트의 교차지로서 부가 축적되었으며, 산코레 마드라사라는 권위 있는 이슬람대학이 있었다. 

2012년 1월 10일 오후 늦게 바마코 세누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부친 짐을 찾고 졸라대는 호객상들을 뿌리치면서 아주 점잖은 훌라니족의 남성과 해후할 수 있었다. 그의 이름은 고렐이었는데, 바마코에서 활약하는 신둑의 투어가이드 파트너였다. 나는 그의 4륜구동차에 올라타 우선 시내 한복판에 있는 환전소로 갔다. 모든 길 주변으로 덮여있는 붉은 먼지 속에서 나는 찌는 듯이 후끈한, 습도와 먼지로 뒤범벅이 된 공기를 헤쳐나가며 가냘프게 숨을 쉬었다. 

마당에서 저녁이 제공되었다. 식탁에는 상당히 많은 양의 소고기꼬치, 열대 바나나 튀김, 감자 튀김, 올리브 양파, 콩 그리고 쌀밥이 놓여 있었다. 잠시 나는 인도에서 어느 가정집에서 주는 음식을 먹고 장질부사에 걸려 고생을 한 나의 친구 생각을 했다. 그러나 곧 그런 불길한 생각을 접어두고 그들이 제공한 음식을 맛있게 다 먹어치웠다. 저녁을 먹은 후에는 나는 동네로 마실 나갔는데 이웃사람들이 구멍가게 앞에 설치된 뒤가 나온 옛날 텔레비전 앞에 옹기 종기 모여 있었다. 

나에게 주어진 방은 생활용품으로 가득 차 있었다. 보아하니 고렐이 자신의 방을 나에게 내준 것 같았다. 나는 시트가 깨끗한지 어떤지 확인할 여력도 없었다. 죽도록 피곤했지만, 매트 구석구석에 빈대가 숨어있는지만은 확인해 보아야 했다. 침대에 빈대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나는 비로소 모기장 안으로 기어들어 갔다. 사실 내 인생에서 모기장에 들어가 본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다. 

팀북투로 가는 페스티발 주최측에 의하여 조직된 전세기가, 1월12일 아침 일찍 출발하기로 되어 있었다. 비행기가 팀북투에 착륙하자마자 곧 나는 우렁찬 목소리가 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신둑이었다. 건장한 사나이! 불쑥 올라온 널찍한 코에는 마마자국이 가득했고, 몸은 아주 산뜻한 쪽빛 뚜아렉의상으로 휘감겨 있었다. 

끝없이 펼쳐지는 지푸라기 색깔의 모랫길, 같은 색깔의 작은 4각의 하꼬방집들을 스치며 지나갔다. 나는 가끔 시야에 들어오는 당나귀를 볼 때마다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나는 살아있는 실물로서의 당나귀를 처음 보았던 것이다. 이렇게 나의 팀북투 모험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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