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훼영모화(花卉翎毛畵)란 동물과 식물을 그린 그림을 말한다. 꽃나무 위에서 지저귀는 한 쌍의 새나 정원 한편에서 졸고 있는 고양이처럼, 주로 동식물의 시정어린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동아시아 사람들은 이런 회훼영모화를 유난히 좋아해 오래전부터 그려왔으며, 내용과 형식에서 발전을 거듭하면서 하나의 전통을 이루었다.
어느 미술사학자는 화훼영모화가 동아시아 지역에서 유난히 발달한 배경을 사계절이 분명한 자연환경과 오랜 농업 문명의 역사에서 찾는다. 오로지 하늘만 의지하여 농작물을 심고 가꾸며 거두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자연의 변화를 알려주는 동식물은 생존과 번영을 위한 중요한 존재였으므로 일찍이 초기 농경사회부터 제례의식이나 주술적인 필요에 따라 동식물을 그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점차 예술 문화가 발전하면서 그 효용성에서 벗어나 작가의 뜻과 시정을 담아내는 전통 회화의 한 화목으로 성장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화훼영모화의 발전 양상을 보아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동식물의 모습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입체나 평면 위에 표현되었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감상을 위한 작품으로 발전하면서 다양한 소재로 확장되었다. 서민들의 벽장에 붙어 있던 서툰 솜씨의 ‘모란도’, 사대부가 여가 시간에 잠시 붓을 들어 그린 간결한 필치의 ‘숙조도’, 궁궐의 내실을 화려하게 장식한 ‘사계화조병풍’ 등에는 모두 우리 민족의 삶과 미적 정서가 녹아 있다.
‘화훼’花卉는꽃이 피는 초본식물과 목본식물을 말하고, ‘영모’는 한자로 깃털 ‘영翎’자와 털 ‘모毛’자를 합친 것으로 새와 짐승을 의미한다. 화훼영모화는 동물과 식물을 소재로 그린 그림을 통칭하는 것으로 전통 회화의 화목 가운데 하나이다. 이 책에서는 꽃이 피는 식물과 새를 중심 소재로 그린 그림에만 화조라는 용어를 사용하려고 한다.
이렇게 용어를 정리하면 화훼영모화라는 대영역 안에 하나의 소영역으로 화조를 포함할 수 있으며, 이밖에 초충, 영모, 어해, 화훼, 축수, 소과, 사군자 또한 마찬가지로 화훼영모화에 포함할 수 있다.
미술 작품에서 내용이란 일반적으로 주제나 의도와 관련된다. 작품마다 다양한 내용이 있지만, 전통적으로 화훼영모화의 작품 내용은 시정의 표출, 소망에 대한 우의, 수신의 도구 등으로 묶어 살펴볼 수 있다.
시정의 표출
화훼영모화는 자연에서 느끼는 시정을 그림으로 표현한다. 특히 아름다운 동식물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고독, 행복, 향수, 사랑, 기쁨, 추억 등 다양한 감정을 시적으로 담아낸다.
시와 그림의 관계는 시를 읽고 그림으로 그리거나 반대로 그림을 보고 시를 짓는 시화 교류의 문화를 만들었다. 중국에서는 북송대에 이르러 제화시가 성행하기 시작해 시화 일치론이 확립되었고, 원대에 한족 문사들에 의해 시서화합일의 문인화가 극성을 이루었다. 우리나라는 이 영향을 받아 고려 후기부터 제화시가 성행해 조선에 계승되었다. 조선 전기 문신 강희맹(1424~1483)이 “시와 그림은 법이 같다.”고 한 것이나, 신숙주(1417~1475)가 “ 시와 그림은 공을 같이 한다.”고 한 것은 모두 시와 그림이 비록 표현 방식은 다를 지라도 그 성격은 같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소망에 대한 우의
화훼영모화에 주로 소재로 사용하는 동식물은 인간의 보편적 소망이라 할 수 있는 장수, 자손 번창, 출세, 부귀, 부부 금실 등을 우의하는 경우가 많다. 동식물의 특성을 통해 상징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맨드라미와 닭은 관을 쓴 듯한 모양 때문에 높은 벼슬을, 모란은 풍성하고 화려한 자태 덕에 부귀를, 씨가 많은 과일이나 넝쿨 식물은 다산과 자손 번창을 의미한다.
두 번째는 동음이의 의 소재로 위의하는 방법이다. 이는 일종의 언어유희를 그림과 연결한 것이다. 흔히 ‘노안도’는 ‘갈대밭의 기러기’를 그린 그림인데, 이를 해석할 때 ‘늙어서 평안하다’는 뜻의 ‘농안’이라고 읽고 해석하기도 한다. 또 쏘가리는 한자 표현으로 ‘궐어’인데 대궐 ‘궐’자와 발음이 같아 대궐에 들어가는 영광을 얻으라는 출세의 의미로 많이 그렸다.
수신의 도구
화훼영모화는 동식물로 자연의 이치를 드러냄으로써 수신의 도구가 되기도 했다. 유교적 인식체계에서는 예술을 수단으로 보는 경향이 강했다. 곧 ‘재도지구’라고 하여 도를 실어 나르는 도구의 하나로 본 것이다. 대표적인 재도지구는 [주역]이나 [논어] 같은 경전을 말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시문을 짓거나 그림을 그리는 문화예술 활동을 모두 포함하여 인식했다. 이러한 생각은 강희맹이 “무릇 모든 초목과 화훼를 보면서 눈으로 본 것을 마음으로 이해하고, 마음으로 얻은 진수를 손으로 그려 그림이 신기하게 되면, 하나의 신기한 천기가 나타난다”라고 말한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림을 재도지구로 삼은 대표적 화재는 단연 사군자이다. 사대부는 사군자를 잘 치려면 먼저 인품이 올발라야 하며, 사군자를 치면서 인성을 수양할 수 있다고 믿었다. 또한 사의화풍 화훼영모화도 사대부들이 수신의 도구로 여겨 많이 그렸다. 홀로 마른 가지에 앉아 추위를 견디며 먼 곳을 바라보거나 고개를 파묻고 졸고 있는 새를 그린 그림은 자연을 사모하면서도 속세를 떠날 수 없는 사대부의 처지를 위로하고, 마음을 수련하는 도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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