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탑의 구조를 석재로 구현한 미륵사지 석탑은 1층 탑신으로 출입이 가능하다. 내부의 십자가 형태 통로 한 가운데에는 심주석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를 조금씩 들어올려 수리하던중 사리공이 발견되었다. 상자 형태의 사리공 바닥에는 초록빛 유리 타일이 깔려 있었고, 그 위로 오색의 유리 구슬과 직물, 장신구 등 다양한 공양품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 가운데 위치한 금동병을 열자, 다시 금으로 만든 작은 병들이 들어있었고, 그 안에 사리가 안치되어 있었다. 사리는 원래 더 작은 유리병 안에 들어있으나 지금은 파손되었고, 새로운 용기에 담겨 다시 탑 안에 보관되었다.
사리공의 가장 위에는 9자 11행의 명문이 앞뒤로 적힌 금판이 놓여있어 사리를 봉안한 인물과 날짜를 알 수 있었다.
.... 우리 백제 왕후는 좌평 사택적덕의 딸로서 오랜 세월 동안 선인을 심으시어 금생에 뛰어난 과보를 받으셨다. 만민을 어루만져 기르시고 삼보의 동량이 되셨다. 때문에 삼가 깨끗한 재물을 희사하여 가람을 세우고, 기해년(639년) 정월 29일에 사리를 받들어 맞이하셨다.
[삼국유사]에 전하는 바, 익산의 미륵사지는 백제 무왕의 왕후가 용화산(지금의 미륵산) 큰 못에 나타난 미륵삼존을 친견하고 무왕에게 간청하여 세운 사찰의 터이다.
....어느 날 왕이 부인과 함께 사자사에 가려고 용화산 밑의 큰 못 가에 이르니 미륵삼존이 못 가운데서 나타나므로 수레를 멈추고 절을 올렸다. 부인이 왕에게 말하기를, “모름지기 이 곳에 큰 절을 지어 주십시오. 그것이 제 소원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은 그것을 허락하여 승려 지명에게 못을 메울 일을 물으니 신비스러운 힘으로 하룻밤 사이에 산을 무너뜨려 못을 메우고 평지를 만들었다. 이에 미륵 삼회를 법상으로 하여 전각과 탑, 회랑을 각각 세 곳에 세우고 절 이름을 미륵사라 하였다. - [삼국유사] 권2기이
그런데 [삼국유사]에 실려있는 향가 ‘서동요’를 보면, 어려서 ‘서동’으로 불리던 무왕의 부인은 신라의 선화공주이다.
....선화공주님은 남 몰래 사귀어 맛둥(마동) 도련님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
즉 미륵사는 백제 무왕의 왕비가 된 신라의 공주가 세운 사찰인 것이다. 물론 ‘서동요’ 속 신라의 공주인 선화공주는 신라 진평왕(579~632)의 셋째 딸로,당시 백제와 신라의 팽팽한 알력 관계를 생각해 본다면 쉽게 수긍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다. 그런데 여기에 미륵사지 석탑 사리장엄이 발견되면서 무왕의 또 다른 왕비인 “좌평 사택적덕의 딸”의 존재가 알려져 미륵사 창건에 대한 이야기 해석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639년 백제의 고위 관등 중 하나인 좌평 사택적덕의 딸이었던 무왕의 왕비는 익산에 새로이 터를 잡고 백제 중흥을 꿈꾸는 남편을 위하여 미륵사지 석탑 안에 사리를 모시고, 그 경위를 기록한 사리봉영기를 함께 안치하였다. 왕비의 간절한 염원을 담은 사리인만큼, 당대 최고의 장인들이 모여 만든 사리호에 담겨, 각종 유리와 보석의 공양품과 함께 귀하게 안치되었다.
미륵사지 석탑 속에서 나온 사리장엄은 지금껏 우리가 몰랐던 백제인을 역사의 무대 위에 등장시켜, 연구자들에게 미륵사의 창건과 선화공주 이야기의 해석에 대한 새로운 과제를 안겨주었다. 또한 정교한 세공이 돋보이는 사리장엄은 백제의 첨단기술을 세상에 드러내어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다. 1370년간 탑 속에 잠들어 있던 한 뼘 남짓한 사리장엄은 우리를 또 하나의 백제와 마주하게 하였다.
2009년 1월, 익산 미륵사지 석탑 사리장엄 안에 모셔져 있었던 사리 1과는 2015년 12월 3일, 다시 미륵사지 석탑 안에 안치되었다. 경주 감은사지의 두 석탑에서 발견된 사리도 다시 탑 안에 봉안되었다. 미륵사지 석탑의 사리장엄과 감은사지의 사리장엄은 탑 밖으로 나와 있지만, 사리는 다시 탑 안으로 돌아간 것이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 전래되고 사리가 들어왔을 때, 사리는 각종 신이한 기적을 일으켜 많은 이를 놀라게 하였고, 또 그만큼 많은 신도들을 끌어들여 불교 전파의 구심점이 되었다. 특히 왕실에서 나라의 번영과 왕실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하여 귀한 사리를 모셔 탑을 세우고 그 안에 안치하였다. 때로는 조심스레 새 나라를 향한 정치적 야망을 기탁하기도 하였다. 역사상 사리가 항상 환영받았던 것은 아니지만, 예전이나 지금도 사리는 여전히 불교 신도들에게 가장 성스러운 예배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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