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6.1 화
미숙씨가 준 까만콩을 심었더니 줄을 타고 상당한 높이까지 올라갔다. 작은 콩 하나에 그렇게 많은 에너지를 담고 있나 싶은데, 그것은 콩의 에너지만이 아니라 땅의 힘, 햇빛, 바람, 심지어 황사까지 그 작은 콩 하나를 도와서 그리 올라갈 수 있었다. 그 콩 이름이 넝쿨콩이라고 했다.
올해는 체계적으로 심어볼 요량으로 나무 틀을 만들어 흙이 흘러나가지 않도록 하고 그물망도 제대로 붙였다. 좀 더 크면 그물망을 덧댈 것이다. 서향집이라 발을 내리지 않고도 넝쿨콩 그늘이 생겨 시원해 보이기도 할 것이다.
미숙씨를 2005년 경 유성문화원에 있을 때 만났다. 미숙씨는 유성문화해설사, 문화유성 기자를 했다. 자신의 배농장에서 꽃이 피고 커가는 것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면 좋겠다고 했다. 그렇게 기획된 것이 ‘가자 유성농장으로’ 라는 프로그램이었다. 당시 시도한 프로그램은 대도시에서 농사체험 프로그램으로는 거의 첫번째 였던 것 같고 획기적이었다. 농업기술센터에서도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할 때였다. 참가자 모집은 잘 되었고 만족도도 높았다.
문화원 프로그램으로서 성과 이외에 나에게 큰 변화를 가져왔다. ‘가자 유성농장으로’ 프로그램 이전과 이후로 나뉠 수 있었다. 이전에는 배 하나만을 보았다. 맛있는 배를 어떻게 하면 싸게 먹을 수 있을 것인가, 일반 소비자의 가장 큰 기대인 것처럼 나 역시 명절 때나 겨울에 가끔 먹는 배 였다. 이후에는 배의 몸체인 나무, 꽃, 수정, 열매 솎기 등등이 보였다. 길에서나 수퍼에서 파는 배가 과일로서 배가 아닌 생명체로 보이기 시작했다. 좌판에서 팔고 있는 농산물도 그렇게 보였다. 생명을 먹는다는 것과 맛있는 과일을 먹는다는 것은 큰 차이가 있었다. 생명의 말씀이 따로 없었다. 그 이후 나는 열평 텃밭을 했고, 귀농교육도 여기저기 다녔다. 유기농산물에 집착한 것만은 아니었다. 길 가 좌판에서 아주머니들이 파는 것도 소중하게 샀다.
미숙씨는 본격적인 귀농귀촌교육을 시작했다. 1기생으로 참가했고 후속 교육도 받았다. 나도 어디로 귀농귀촌할까 늘 염두에 두고 있었다. 2010년경 금산간디학교에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관련해서 갔다가 “집 남은 것 없어요?” “마침 하나 있어요.” 가 계기가 되어 나도 텃밭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사실 텃밭 보다는 소나무가 많은 집에 혹했었고, 그곳에 살고 있는 간디학교 선생님이 작은 텃밭을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이사하고 보니 생흙이었다. 미숙씨 농장에서 지렁이를 잡아다 우리 땅에 풀어놓기도 했다. 이제 햇수로 십년이 넘으면서 우리 마당은 파는 곳곳마다 지렁이가 많아 졌고, 미숙씨 농장에서 여러 번 파와서 심었던 미나리도 자리를 잡고 잘 자라고 있다. 더욱 반가운 것은 우리 마당에도 반딧불이가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텃밭에 부었던 애정의 결과라 여기고 흡족해하고 있다.
언젠가 들깨 대를 잘라 말린다고 하다가 흘려버렸는데, 홈새로 들어간 작은 씨가 다음 해 때가 되니 올라왔다. 생명의 신비. 콩 보다 작은 깨에서 싹이 터서 실한 지팡이같은 대를 만든다. 참깨가 우째서 그렇게 비쌀 수 밖에 없는지 충분히 이해하게 되었다.
‘생태 감수성’은 우리가 맛있다고 맛없다고 하면서 투정부리는 음식, 쌀 한톨, 깨 한톨이 흙과 햇볕과 바람과 물이 만나 우리를 온전하게 살릴 수 있는 먹거리를 만들어내고, 단순 먹거리가 아닌 그 속에는 우주의 생명이 들어있다고 하는 지각이다. 그 깨달음을 일상에서 늘 자각할 수 있게 깨어 있을 수 있다면 이 세상은 보다 평화로운 삶이 되지 않았을까. 먹거리에서 최대한 이윤을 남기려는 자본의 논리, 인간들의 이중적 잣대가 가장 골칫거리다.
코로나로 인해 살짝 고민하려 했던 생태환경인식은 다시 뒤집혔다. 백신만 잘 맞으면 된다는 또다시 생산성의 논리로 되돌아갔고 일회용품의 무한한 회귀 앞에서 무너져내리는 양심의 소리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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