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6.8 화
울력: 여러 사람이 힘을 합해 어떤 일을 함께 하는 것. 또는 그 힘.
한 달에 한 번씩 사람들이 모여 마을청소를 한다. 매번 하는 일들에 강조점이 있다. 지난 달에는 금산행복나눔센터에서 설치해 준 분리수거함 청소와 수거함 바닥에 데크를 까는 공사를 했다. 그 전달에는 분리수거함 설치를 앞두고 기존의 분리수거함 해체 작업을 했다. 오랫동안 마을 입구의 서낭당 같았던 분리수거함은 마을사람들이 만들어 사용해왔던 것인데 나무들이 삭아서 다시 지어야한다는 의견이 있던 차에 행복센터에서 시범마을이라 하여 설치해주었다. 마을 입구 서낭당 같았던 분리수거함이 신식 마을버스정류장 처럼 산뜻해졌다.
이제 마을이 풀들로 무성해진 시기.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제초작업이 시작되었다. 마을사람들이 개인용 예초기를 들고 나왔다. 15대나 되었고 마을송풍기 한 대도 나왔다. 눈 치울때나 낙엽 날릴 때 사용하는 송풍기는 올해 마을에서 구입했다. 온 동네가 예초기 돌아가는 소리로 소란하다. 헬리콥터 뜨는 소리같다. 나는 낫을 들고 예초기가 닿지 않을 부분의 풀들을 베었다. 호미보다는 낫의 효용이 더 높다. 놀이터 마당에 올라오는 풀은 낫의 등으로 긁어낸다. 높게 자란 풀을 베어낼 때 나는 소리 ‘사사삭’ 소리를 떠올린다. [누비처네]에서 설명되었던 조선낫의 벼베는 소리 ‘사사삭’을 연상하면서 풀을 베면 재미있다. 나도 조선낫을 들고 있는 만큼 사사삭 소리를 계속 듣고 싶어 힘든 줄도 모른다. 집 뒷마당에 높게 자란 쑥을 벨 때도 그랬다. 춘향가의 ‘쑥대머리’를 떠올리기도 하고, 조선낫의 ‘사사삭’ 소리를 연상하면 재미있게 일을 계속할 수 있다.
이번 달 마을청소는 예초기 돌아가는 소리,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들에서 뭔가 함께 일하는 느낌이 들었다. ‘울력’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오랫만에 떠 올린 단어이다.
내가 경험한 울력은 언제 부터일까. 초등시절인 국민학교 때부터 학교 청소를 했다. 시골학교 다닐 때는 피마자 씨를 한주먹 주고는 한댓박씩 가져오는 숙제가 있었다. 학교는 그걸로 무얼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우리들은 피마자씨를 주머니에 넣고 마룻바닥을 밀기도 했던 것 같다. 피마자 기름을 먹인 마룻바닥의 윤기를 볼 때 뿌듯했었다.
가을이면 학교 운동장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 수북히 쌓인 잎을 긴 대바늘에 꿰었다. 먼저 길게 꿴 친구들은 “내가 일등”이라며 자랑했다. 한 주먹 피마자 씨를 받아 나도 우리 집 마당에 심었다. 다른 친구들이 싹이 올라왔다고 하는데 내가 심은 피마자는 싹이 보이지 않았다. 여름방학 기간에 엄마는 나를 부산 최고 도심의 학교로 전학시켰다. 겨울방학이 되어 집으로 갔을 때 마른 피마자 대가 내 키보다 높게 담 벼락에 줄 지어 있었다. 땅에 너무 깊이 심어 뒤늦게 싹이 올라왔고 내가 부산가서 고생하는 동안 피마자는 홀로 자랐다. 뒤늦게나마 자라주었구나 하는 안도감과 바싹 마른 대만 남아있던 장면, 내 기억속의 겨울풍경 중 하나이다. 그리고 피마자씨 한됫박 숙제를 못했던 미안함이다.
대학교 때 농활을 갔던 것 같은데 어디였는지 생각나지 않지만 새참 먹었던 기억만 난다. 꿀맛같은 보리밥에 김치, 막걸리. 직장 들어와서도 ‘농촌 일 돕기’에 동원되어 모내기도 하고 벼베기도 했었다. 스타킹을 여러겹 신고 모내기에 들어갔다. 못 줄에 맞추어 심느라 줄 지어 옆 눈질 했다. 농사 일 좀 해 본 사람들은 척척 잘했다.
그 이후 문화재관리 한다고 사람들과 함께 풀 뽑고고택 청소와 들기름 메기는 일들이 있긴 했다. 이제 노년이 되어 마을청소를 하면서 ‘울력’이라는 단어를 떠 올린 것이다.
청소가 끝나갈 무렵 총무가 준비한 음식을 꺼내놓았다. 수박과 떡, 음료수. 땀 흘리고 먹는 신선한 수박의 맛. 코로나 이전 같으면 국수를 해먹기도 했고 말술을 받아다 막걸리와 부침개를 해 먹기도 했다.
다과를 하고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 그러다 문득 전 연령이 이렇게 모여있는 장면이 참으로 정겹게 보였다. 코로나로 인해 모임들이 단절된지도 2년째. 전 연령이 한번에 모여있는 장면이 서글프면서도 반가왔다. 그동안 비대면의 시대를 은근히 즐기기도 했는데, 여러 사람들이 모처럼 모여 떡과 음료를 마시는 모습들이 정겨웠다. 마을청소나 모임이 있을 때면 동네 아이들이 부모님을 따라 나오기에 순식간에 전 연령층을 보게 된다.
몇 달 전 마을에 강의 오신 분이 이 마을은 천국같다고 하여, “선생님네 마을도 산골이잖아요?” 라고 했더니 선생님 왈, “이 마을에는 전 연령을 볼 수 있네요. 저희 마을에는 노인들이 대부분이라” 고 하셨다. 갑자기 천국의 개념이 다르게 느껴졌었다. 어느 사이 전 연령이 모여있는 장면을 보기 어려워진 것이다.
마을에서 십 여년 간 지내면서도 바쁘다는 핑게로 마을 청소에 잘 나가지 않았었다. 내 집 앞 치우기도 어려운데, 라고 생각하며 마을청소하는 시간에 우리 집 앞 청소를 할 때도 있었다. 마을청소에 갔다가도 얼른 집으로 오곤 했다. 마을사람들과 섞이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나보다 더 오래 마을에 살았던 사람들은 이미 친해져서 또래 그룹이 생긴 것 같아 어색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올해는 마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의 마을청소는 마을사람들의 축제였다. 이전에는 청소 후 모여서 음식을 해 먹고 막걸리 마시는 재미를 알았던 사람들은 늦게까지 주거니 받거니 했었다. 나는 그렇게 오래 앉아 있질 못했다. 내가 적극 참여해보니 사람들이 모여서 노는 재미를 알 것 같았다. 서울서 회사를 다니다 주말에 마을로 오는 어떤 분은 술자리를 가장 즐겨하는 분이다. 그 분이 맥주에 막걸리를 타서 마시면 수제 맥주 같다고 하여 나도 맛을 보았다. 그럴듯 했다. 수제 맥주를 만들줄아는 분이 시간 내어 마을 사람들에게 시범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코로나가 풀리면 놀러가자는 말도 나온다. 즐거운 분위기이다.
마을의 청년이 청소에도 참여하면서 자기들이 하는 일을 소개하기도 했다. 귀농귀촌교육센터가 코로나로 인해 오랫동안 비어 있어서 그곳에 청년들이 모여 일을 벌이게 되었다고 한다. 읍내로 나간 청년들이 그들이 자란 학교가 있는 마을로 돌아왔다. 마을이 더 활기찰 것 같다. 어른들이 청소해준 놀이터에 아이들이 놀고 어른들은 옆에서 주거니 받거니 하고 청년들은 자기 일들을 하느라 뽁닥거리고.
팔십이 넘으신 할아버지는 마을청소에 늘 참여하신다. 천천히 풀을 뽑고 모아 버린다. 할아버지가 집에 핀 꽃달맞이를 뿌리 채 뽑아오셔서 사랑채 입구에 심으셨다. 몇 달 전에 씨도 뿌려 모종 형태의 꽃달맞이가 제법 자라고 있다. 할아버지는 집 마당에 가득 핀 꽃을 사랑채 입구에도 심어주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할아버지는 말동무도 없지만 혼자서 묵묵히 음식도 드신다. 소리없는 풍경의 점 처럼 마을모임에 늘 계신다. 나도 그런 모습으로 계속 있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청소 끝나고 집으로 오다보니 길 가의 높다랗게 자란 쑥대가 예초기에 잘려 누워있다. 내가 좀 더 애썼더라면 쑥떡 하는데 보태었을텐데. 쯔으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