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글쓰기가 곤혹스러워 묻는다

이춘아 2021. 10. 23. 00:46

이윤기,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웅진지식하우스, 2013.

글쓰기가 곤혹스러워 묻는다

제대 직후부터 신춘문예에 응모했다. 문단은 좀체로 문을 열어주지 않을 줄 알았는데, 오래지 않아 문이 반쯤 열렸다. 그때의 심경을,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한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단가를 인용해서 드러내보면, ‘낡은 문을 이멜무지로 밀어보았더니 너무 쉽게 열려서 실망했다’와 비슷하다. 어 뜨거워 싶어서 문단에서 도망쳤다. 최근 들어, 그때 왜 도망쳤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어떻게 도망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운이 좋아서 단 한 차례 케이오 펀치를 날릴 수 있었던 권투 선수가, 챔피언 결정 토너먼트에 참가하라는 제의를 받은 판이데? 튀자…. 나는 연습을 핑계 삼아, 문단에 들어가기도 전에 입산했다. 

산에서는 번역을 생업으로 삼았다. 행복한 나날이 시작되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도 다 있지…,. 제대한 지 5년 뒤였다. 내가 전쟁소설을 집중적으로 읽고 있던 시절이었다. 난데없이 헤밍웨이가 편집한 [전장의 인간]을 번역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이 들어왔다. 행복한 글 읽기, 행복한 자료 조사로 세월을 보내면서 번역해낸 책이 바로 [전장의 인간]이다. 고대 신화에 빠져드는 것과 거의 때를 같이해서 나는 칼 융의 편저서 [인간과 상징]을 번역했고, 뒤를 이어 비교신화학 입문서인 조셉 캠벨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벌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 엘리아데의 [샤머니즘],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캠벨의 [신화의 힘], 프로이트의 [종교의 기원]을 차례로 번역했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 [전날의 섬]을 번역할 때의 곤혹감은 다시 떠올리고 싶지도 않다. 원서를 집어 던진 것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시 행복하다. 나는, 행복은 그런 것을 통해서만 온다는 것을 알 만큼 행복한 사람이다. 

1991년에 도미했다. 한국 사람들은 나를 미국인에게 소개할 때마다 ‘노블리스트(소설가)’라는 말을 썼다. 한 미국인 노교수가 나에게 물었다. 

“장편소설을 몇 편이나 썼지요?”

1992년의 일이었다. 나에게는 장편소설이 없었다. 몇 편의 단편소설을 썼을뿐이고 단편소설집을 한 권 냈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그때 그 노교수가 했던 말을 나는 잊을 수 없다. 

“장편소설을 쓰지 않았다면 노블리스트가 아니예요. 당신은 그냥 라이터(작가)일 뿐, 당신에게는 자신을 노블리스트로 소개할 자격이 없어요.”

꼭 그래서만은 아니다. 나는 그해 가을 한국 문학으로 돌아올 결심을 했다. 벗들이 꼭대기에서 노는 산의 기슭에 나그네 신분으로나마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글 읽기’에 관한 한 나는 황희 정승만큼 행복한 사람이다. 하지만 ‘글쓰기'에 관한 한 나는 행복하지 못하다. 길고 짧은 소설을 차례로 써내고 있지만 조금도 행복하지 못하다. 나는 큰 빚을 진 사람이다. 나에게 ‘글 읽기’의 행복을 안겨준 많은 작가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사람이다. 부모의 사랑을 아래로 갚듯이 이 빚은 독자에게 갚아야 한다. 갚아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강박한다. 글쓰기가 하도 곤혹스러워서 물어본다. 나에게 글 읽기의 행복을 안겨준 저 많은 저자들은 모두 행복했을까 

내 문학의 마을에서는 아직 ‘대추’도 익지 않고, ‘알밤’도 떨어지지 않는다. ‘벼 벤 논의 게’는 언감생심이다. 술은 익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 체 장수도 당분간은 마을로 들어올 것 같지 않다. 상황은 전혀 희망적이지 못하지만 나는 그날이 오리라고 믿는다. 글쓰기에 관한 한, ‘술 익자 체 장수 돌아가는’ 날은 내가 체 장수가 되어 남의 마을로 들어가는 날이기도 하다. 나는 그날이 오리라고, 그날을 내가 지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내 글쓰기는 이렇듯이 암담하지만 글 읽기에 관한 한 지금 이 시각에도 술이 익어가고 체 장수는 돌아다닌다. 술 익어가고 있는 줄 알지 못하는 이들, 체 장수 외치는 소리에 가는귀먹은 이들에게 화 있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