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내면의 감정이 요구하는 대로

이춘아 2021. 12. 19. 00:24

노성두, [10대를 위한 서양미술사], 도서출판 다른, 2016

내면의 감정이 요구하는 대로

인상주의가 세상을 지배하던 시기에 마티스는 전혀 다른 새로운 예술을 선보입니다. 마티스는 왜 나무가 항상 초록색이어야 하는지 의문을 품습니다. 자연색의 절대 신화에 반기를 든 것이지요. 마티스의 그림에서는 하늘이 보라색, 바다는 붉은 색입니다. 인상주의의 눈으로 본다면 마티스의 채색은 순수한 자연에 대한 모독이자 배신이었습니다. 

마티스의 그림에서는 심지어 선조차도 제멋대로입니다. [구마니아 블라우스: 꿈]을 보면 선이 형태를 규정하고 정의하는 대신에 스스로 자유를 노래하고 춤춥니다. 윤곽선으로 모양을 그려야 한다는 명령에 단호하게 불복종을 외치죠. 자연의 명령 따위는 아랑곳없이 화가는 내면의 감정이 요구하는 대로 선과 색을 지휘하고 춤추게 합니다. 

외부의 ‘인상’을 재현하지 않고, 내면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인상’주의와 ‘표현’주의의 근본적인 차이였지요. 마티스가 그린 것은 단순한 초상화나 풍경화가 아니었습니다. 서양미술 500년의 역사가 쌓아 올린 원근법과 색채론의 성과를 파괴하고 뒤엎는 총성 없는 혁명이 시작된 것이지요. 

전시회를 마친 마티스는 1906년 아프리카 알제리의 비스크라로 여행을 떠납니다. 비스크라는 수많은 전설이 얽혀 있는 사하라 사막의 관문이자, 알제리행 기차의 종점입니다. 칠흑 같은 밤이 지나면 더없이 매혹적인 사막의 아침이 깨어납니다. 마티스는 “이곳의 작열하는 햇살에 두 눈이 멀어 버릴 지경이었다.”라고 편지를 썼습니다. 

알제리의 양탄자 가게마다 문 앞에 내어둔 금붕어 어항은 마티스에게 깊은 인상을 줍니다. 금붕어는 능숙한 무용수처럼 긴 옷자락을 너풀거리며 춤사위를 벌입니다. 마치 붉은 물감을 뱉어 내는 살아 있는 튜브처럼 보이기도 해요. 먼지투성이 양탄자와 선명하게 대비를 이루는 투명한 어항 속의 금붕어는 마티스의 기억과 예술 속에 새겨졌습니다. 

1907년 이탈리아 여행에서 화가 조토의 벽화를 만난 것도 뜻밖의 행운이었습니다. 이탈리아 파도바의 스크로베니 경당에 그려진 14세기 프레스코 벽화의 짙고 선명한 파랑은 마티스의 내면에 숨어 있다가 노년의 색종이 그림과 재즈 연작에서 비로소 모습을 드러냅니다. 자연을 베끼거나 옛 거장의 기법을 흉내 내지는 않았지만, 알제리의 금붕어에서 배운 빨강과 조토의 벽화에서 배운 파랑은 모두 마티스의 훌륭한 스승이었습니다. 

선과 색에 대한 마티스의 도전은 지칠 줄 몰랐습니다. [빨간 조화]는 식탁을 정리하는 여자를 그린 실내 풍경입니다. 이 그림은 처음에 배경이 파랑이었다가 마티스가 갑작스레 마음을 바꿔서 빨강이 됐지요. 그 바람에 제목까지 바뀌었습니다. 파란 그림으로 알고 있던 주문자가 빨갛게 완성된 그림을 보고 당황하자, 마티스는 “배경색이 파랑이든 빨강이든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요.”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고 합니다. 

모스크바 트루베츠코이 궁전에서 개최된 마티스 전시회는 예상을 뒤엎고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기자들은 마티스의 얼굴을 사진에 담기 위해 연일 전시장 앞에서 장사진을 쳤습니다. 

마티스는 건강과는 거리가 먼 체질이었습니다. 평생 병마와 싸웠고, 거의 죽음과 사투를 벌이며 그림을 그려야 했습니다. 두 차례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삶에 대한 깊은 회의에 빠졌고, 그림 모델과 오해가 생기는 바람에 사랑하는 아내와 헤어지는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고난도 그의 넘쳐 나는 열정을 잠재울 수는 없었습니다. 마티스의 그림은 지중해의 푸른 바람처럼 늘 생기와 미소가 넘칩니다. 그림을 바라보는 우리에게도 생기를 나눠 주고 미소 짓게 합니다. 그것은 마티스가 오래 꿔 온 꿈이기도 했습니다. 

“나는 꿈꾼다. 균형과 순수와 휴식의 미술을.  …… 등받이가 있는 푹신한 안락의자처럼 육체의 긴장을 달래 주고 머리를 식혀 주는 미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