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허난설헌의 무덤

이춘아 2022. 6. 19. 06:56

신영복, [나무야 나무야], 돌베개, 1996 (2015 전자책)

비극은 그 아픔을 정직한 진실로 이끌어줍니다
허난설헌의 무덤

강원도 명주군 사천리에 있는 애일당 옛터를 다녀왔습니다. 이곳은 당대 최고의 논객으로서 그리고 소설 [홍길동]의 작가로서 널리 알려진 교산 허균이 태어난 곳입니다. 지금은 작은 시비 하나가 그 사람과 그 장소를 증거하고 있을 뿐이지만 시비에 새겨진 누실명의 한 구절처럼 정작 허균 자신은 그곳을 더없이 흡족한 처소로 여기고 있음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나 환로에서 기방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두량 넓은 학문의 세계로부터 모반의 동굴에 이르기까지 그가 넘나들지 않은 경계는 없었습니다. 당대 사회의 모순을 꿰뚫고 지나간 한 줄기 미련 없는 바람이었습니다. 비극적인 그의 최후에도 불구하고 양지 바른 언덕과 시원하게 트인 바다, 그 어디에도 회환의 흔적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애일당 옛터에서 마음에 고이는 것은 도리어 그의 누님인 허난설헌의 정한情恨이었습니다. 조선에서 태어난 것을 한하고 여자로 태어난 것을 한하던 그녀의 아픔이었습니다. 

그러나 허난설헌의 무덤을 찾을 결심을 한 것은 오죽헌을 돌아나오면서였습니다. 오죽헌은 당신이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율곡과 그 어머니인 사임당 신씨를 모신 곳입니다. 사임당은 마침 은은한 국화향기 속에 앉아 돌층계 위 드늪은 문성사에 그 아들인 율곡을 거두어두고 있었습니다. 

율곡 선생은 조선조 최대의 정치가이자 학자로서 겨레의 사표임에 틀림이 없고 그를 길러낸 사임당 역시 현모의 귀감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봉건적 미덕의 정점을 확인케 하는 성역이었습니다. 극화된 엘리트주의가 곧 반인간주의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곳은 분명 어떤 정점이었습니다. 나는 교산을 찾아보고 오리라던 강릉행을 서둘러 거두어 서울로 돌아온 다음 오늘 새벽 일찍이 난설헌 허초희의 무덤을 찾아나섰습니다. 경기도 광주군 초월면 지월리. 자욱한 새벽 안개 속을 물어 물어 찾아왔습니다. 오죽헌과는 달리 허난설헌의 무덤은 우리의 상투적이고 즉각적인 판단이나 신빙성이 있어 보이는 판단에서 한 발 물러나 그것들을 다시 바라보게 합니다. 

당신이 힘들게 얻어낸 결론이 ‘여성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억압의 철폐는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을 드러내는 일과 직접 맞물려 있다’는 것이라면, 그리고 한 시대의 정점에 오르는 성취가 아니라, 그 시대의 아픔에 얼마만큼 다가서고 있는가 하는 것이 그의 생애를 읽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면 당신은 이곳 지월리에도 와야 합니다. 사랑했던 오라버니의 유배와 죽음 그리고 존경했던 스승 이달의 좌절, 동시대의 불행한 여성에 대하여 키워온 그녀의 연민과 애정, 남편의 방탕과 학대 그리고 연이은 어린 남매의 죽음, 스물일곱의 짧은 삶으로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육중한 것이었습니다. 

사임당의 고아한 화조도에서는 단 한점도 발견할 수 없었던 봉건적 질곡의 흔적이 난설헌의 차가운 시비 곳곳에 점철되어 있었습니다. 개인의 진실이 그대로 역사의 진실이 될 수는 없습니다. 자연마저 인공적으로 만들어놓음으로써 대리현실을 창조하는 문화 속에서 우리가 역사를 제대로 만날 수 있기는 갈수록 더욱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가치가 해체되고, 자신은 물론 자식과 남편마저 ‘상품'이라는 교환가치형태로 갖도록 강요되는 것이 오늘의 실상이고 보면 아픔과 비극의 화신인 난설헌이 설 자리를 마련하기는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자기의 시대를 고뇌했던 사람에 대한 평가는 그 시대가 청산되었는가 아니가에 따라서 당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당신의 말이 옳습니다. 역사의 진실은 항상 역사서의 둘째권에서 다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죽헌을 들러 지월리에 이르는 동안 적어도 내게는 우리가 역사의 다음 장을 살고 있다는 사실이 문득 의심스러워집니다. 

시대의 모순을 비켜간 사람들이 화려하게 각광받고 있는 우리의 현재에 대한 당신의 실망을 기억합니다. 사임당과 율곡에 열중하는 오늘의 모정에 대한 당신의 절망을 기억합니다.단단한 모든 것이 휘발되어 사라지고 디즈니랜드에 살고 있는 디오니소스처럼 ‘즐거움을 주는 것’만이 신격의 숭배를 받는 완강한 장벽 앞에서 작은 비극 하나에도 힘겨워하는 당신의 좌절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지월리로 오시기 바랍니다. 어린 남매의 무덤 앞에 냉수 떠놓고 소지 올려 넋을 부르며 “밤마다 사이좋게 손잡고 놀아라”고 당부하던 허초희의 음성이 시비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감수성과 시대가 선포되고 과거와 함께 현재의 모순까지 묻혀져가는 오늘의 현실에 맞서서 진정한 인간적 고뇌를 형상화하는 작업보다 우리를 힘있게 지탱해주는 가치는 없다고 믿습니다. 

중부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의 소음이 쉴새없이 귓전을 할퀴고 지나가는 가파른 언덕에 지금은 그녀가 그토록 가슴 아파했던 두 아이의 무덤을 옆에서 지키고 있습니다. 정승 아들을 옆에 거두지도 못하고, 남편과 함께 묻히지도 못한 채 자욱한 아침 안개 속에 앉아 있습니다. 열락은 그 기쁨을 타버린 재로 남기고 비극은 그 아픔을 정직한 진실로 이끌어준다던 당신의 약속을 당신은 이곳 지월리에서 지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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