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떡 이야기

이춘아 2022. 6. 12. 00:36

선명숙, [손으로 빚는 마음, 떡], 미호, 2020.

떡 이야기

떡은 추억의 맛이다. 
어릴 적 어머니께서 동네 잔칫집에 다녀오시면 어머니 손에 들려 있는 작은 보따리에 먼저 눈이 가곤 했다. 그 보자기 안에 담겨 있던 몇 조각의 인절미는, 간식거리가 없었던 그 시절에 귀하디귀한 먹거리였다. 지금도 인절미를 보면 어머니보다 더 반겼던 그 작은 보따리가 떠오른다. 또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면 느티나무 아래서 여린 순을 따다 멥쌀에 버무려해 주셨던 느티떡도 어린 시절의 기억을 간직한 떡이다. 이렇게 떡에는 가슴이 기억하는 추억의 맛이 있다. 새 봄이 오면 깊은 산골의 느티잎을 따다가 떡을 해서 함께 나누며 옛이야기를 해볼까. 

떡은 건강한 맛이다. 
“약식동원’  약과 음식은 근본이 같아서 좋은 음식을 먹으면 약으로 치료한 것 같은 효능을 낸다는 말이다. 우리 조상들은 약재를 넣어 만든 떡으로 맛도 살리고 건강도 지켰다. 멥쌀가루에 시상, 의이인, 백복령, 연육, 맥아, 백번두, 백합의 비름 등 한약재를 넣어서 떡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입맛이 없을 때는 약떡을 말려서 죽으로 쑤어 먹기도 하였다. 이처럼 떡은 건강과 영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일상의 보약이자 든든한 음식이다. 

떡은 어우러짐의 맛이다. 
떡은 쌀이라는 주재료에 팥이나 콩, 대추 등 어떤 재료를 넣어도 그 맛과 모양이 잘 어우러진다. 이렇게 어떤 재료이든 다 받아들이는 떡과 달리, 우리는 살다 보면 이해가 엇갈리고 이익에 따라 편이 갈려 멀어지곤 한다. 떡을 빚고 있다 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도 떡처럼 잘 어우러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떡은 그리움의 맛이다. 
요즈음은 저장 방법이 발달해서 떡도 사계절 구분 없이 늘 먹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철에만 먹을 수 있는 떡들이 있다. 쑥떡을 좋아하는 사람이 일 년 내내 먹을 수 있는 떡은 삶아서 보관한 쑥으로 만든 떡이다. 그러나 봄에 나는 애쑥을 바로 뜯어 만들어 먹는 쑥버무리야말로 제철의 맛을 지닌 떡이다. 해마다 봄이 오기를 기다려야 하니 쑥버무리에는 일 년의 기다림이 담긴다. 게다가 갓 뜯은 생 쑥이 주는 맛과 향은 또 얼마나 귀한지. 이렇게 제 철을 기다려야 먹을 수 있는 떡은 진달래화전, 쑥버무리, 느티떡 등이 있다. 봄 동산에 활짝 핀 진달래 꽃을 따서 지져 먹는 진달래화전은 꽃을 따러 다니는 설레임과 따온 꽃을 곱게 얹어 만들어내는 낭만이 들어 있는 떡이다. 사랑만 그리움이 있는 게 아니다. 음식에도 그리움이 서려 있다. 

떡은 자연의 맛이다. 
의성 히포크라테스는 음식으로 고치지 못할 병은 약으로도 고치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는 우리 몸은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자연과 가장 가까운 음식을 먹었을 때 마음도 몸도 건강하게 살 수 잇다는 의미이다. 자연의 재료들로 자연의 맛과 영양을 그대로 살리는 떡이 바로 그렇다. 쌀, 밤, 잣, 대추, 고구마, 콩, 팥 등 떡의 거의 모든 재료가 자연에서 얻어지는재료들이다. 그래서 떡을 먹으면 영양으로 배도 채우지만 정서적 충만감으로 마음도 채우는 것 같다. 아마 자연의 재료에서 오는 생명력 때문이 아닐까. 

떡은 정 나눔이다. 
우리 조상들이 나눔을 실천하는 가장 중심에 두었던 것이 바로 떡이다. 잔치가 끝나면 반기살이라 하여, 돌아가는 사람을 빈손으로 보내지 않고 떡을 보자기에 싸서 나누었다. 가난하고 배고픈 이웃들이 많던 시절, 잔치에 와서 먹지 못하고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식구들까지 챙기는 따뜻한 배려이자 정의 나눔이었다. 떡이 아니라 정을 나누었던 이러한 풍습이야말로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긴 힘든 소중한 문화유산이자, 계속 이어져야 할 정의 문화이다. 

떡은 소통이다. 
지금은 많이 사라져 가고 있지만, 예전에는 이사를 하거나 개업을 하면 떡을 넉넉하게 만들어 이웃에게 돌렸다. 첫인사와 함께 떡을 돌리면 서로 낯설고 서먹했던 마음이 절로 풀리면서 이웃과 금방 가까워지곤 하였다. 돌이나 결혼식 후에도 답례 떡을 돌리면, ‘웬 떡이냐’는 덕담과 웃음이 오가며 서로 소통하게 된다. 또한 추석 때는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와 손주 세대가, 멀리 떨어져 살던 형제들이 함께 둘러앉아 오순도순 정담을 나누며 송편을 빚는다. 이렇게 떡을 만들고 나누면서 우리는 가족과, 이웃과 소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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