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시대부터 살아남은 살아 있는 화석 나무, 은행나무
은행나무는 학교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어떤 학교는 은행나무를 교목으로 삼기도 한다. 은행나무를 학교의 상징으로 삼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 옛날 중국의 공자가 제자들을 모아 가르침을 베푼 이야기와 관련된 이유가 크지 싶다. 2,500년 전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이자 교육자인 공자는 학교와 같은 건물이 없어서, 늘 은행나무 그늘에 제자들을 모아놓고 가르침을 베풀었다. 그래서 공자의 거리 학교를 이른바 행단이라고 부르기까지 한다. 은행나무 행杏과 교단을 뜻하는 단壇을 합쳐 부르는 말이다.
여기에 약간의 혼란도 있다. 행단의 ‘행’자가 살구나무를 뜻하는 한자와 같은 글자여서다. 그래서 공자의 행단이 ‘살구나무 그늘’이냐 ‘은행나무 그늘’이냐에 대해서 아직도 결정적인증거가 없는 상태이고, 따라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은행나무에 살구나무 행자를 썼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은행나무에 맺힌 열매를 살펴본 적이 있다면 금새 알아챌 것이다. 간식으로 먹는 은행이나 바닥에 떨어져 뭉개진 상태가 아니라 나무에 조롱조롱 매달렸을 때의 모습 말이다. 은행은 살구나무의 열매인 살구를 빼닮았다. 살구보다 좀 작긴 해도 영락없는 살구다. 다만 살구보다 조금 밝은 빛이 난다는 것이 차이라고 하면 차이다. 그래서 살구는 살구이되 ‘은빛 나는 살구’라는 뜻에서 ‘은행’이라는 이름이 붙게 됐다.
열매 이야기가 나왔으니 은행나무의 특징 한 가지를 짚어본다. 은행나무는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있는 나무라는 건 잘 아는 이야기다. 세상의 모든 생명체에는 암수가 따로 있다.동물이나 식물 모두 마찬가지다. 암수가 나뉜 것은 건강한 자손을 번식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식물도 번식을 목적으로 하는 생명체이니 당연히 암수가 따로 있다.
식물의 암수는 꽃으로 구별한다. 어떤 식물의 경우 어느 꽃에서는 암술만 나오고 다른 꽃에서는 수술만 나오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암술만 돋아나는 꽃은 암꽃, 수술만 돋는 꽃은 수꽃이라고 하면 된다. 이 암꽃과 수꽃이 한 그루의 나무에서 함께 피어나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암꽃만 피는 나무와 수꽃만 피는 나무가 나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식물을 암수딴그루, 자웅이주라고 한다. 암꽃과 수꽃이 따로 피어나기는 하지만 한 그루에서 피어나면 암수한그루, 자웅동주라고 한다.
한 그루에서 피든 나뉘어 피든 암꽃과 수꽃이 나뉘는 겨우를 단성화라고 부르고, 반대로 한 송이에 암술과 수술이 동시에 돋아나는 건 양성화라고 한다. 현재 알려진 식물의 꽃 가운데는 약 70퍼센트가 양성화다.
암나무과 수나무가 따로 있는 나무로는 비자나무와 주목을 비롯해 팽나무, 미루나무, 버드나무, 호랑가시나무, 이팝나무 등이 있는데, 그중에 대표적인 나무는 은행나무다. 은행나무는 지구상에 가장 오래 살아남은 나무들 가운데 하나다. 공룡이 살았던 시절에도 은행나무는 있었기에 공룡상상도와 같은 그림의 배경에 은행나무가 곧잘 등장한다. 은행나무가 처음 지구에 출현한 것은 약 2억 7천만 년 전인 중생대 초기였고, 신생대에 지구상에서 가장 번성한 식물 가운데 하나였다. 현재 발견되는 은행나무 화석을 통한 분석이 그런 놀라운 결과를 보여준다. 은행나무를 흔히 ‘살아있는 화석나무’라고도 부르는 근거다.
은행나무는 오래 살아온 나무이다 보니,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나무다. 공룡이 모두 사라질 만큼 생명이 살아남기 힘든 빙하기와 같은 생명 멸종의 시기를 거치면서까지 꿋꿋하게 자신의 종족을 유지해온 놀라운 생명력을 가진 나무다. 은행나무는 원자폭탄을 떨어뜨렸던 일본의 히로시마에서도 살아남았다. 당시 폭탄이 떨어진 곳에서 살아남은 생명체는 전무했지만, 용케도 은행나무 여섯 그루가 살아남아 오늘날까지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오래된 은행나무가 여럿 있다. 이를테면 산림청의 보호수 기록을 바탕으로 하면 2015년 기준으로 1,000년을 넘게 산 은행나무가 열두 그루나 된다. 그 밖에 산림청 보호수 목록에는 등재되지 않았지만 강원도 삼척의 늑구리에는 1,500세나 된 오래된 나무도 있다. 또 규모가 큰 나무로는 아무래도 경기도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이미 오래 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하는 양평 용문가 은행나무는 키가 무려 42미터나 된다. 도시의 아파트 건물을 기준으로 하면 14층에 이르는 높이다. 장엄한 나무다.
공룡이 바라보고, 공룡과 함께 살았던 나무가 공룡이 사라진 이 시대에 우리와 함께 살아간다는 사실만으로도 은행나무는 충분히 경이로운 나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문화 책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함께 홀로하기 (0) | 2022.07.08 |
---|---|
소설 읽기 (0) | 2022.07.07 |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는 나무를 찾아서 (0) | 2022.07.02 |
건강하고 행복한 도시를 위한 6가지 원칙 (0) | 2022.06.26 |
도시 숲이 보내는 편지 (0) | 2022.0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