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몸, 거룩함에 이르는 사다리

이춘아 2022. 7. 23. 20:58

이거룡, [아름다운 파괴], 한길사, 2010

몸, 거룩함에 이르는 사다리

요즘 들어 몸이 뜨고 있는 데는 이유가 있어요.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가 소비와 레저 중심의 사회로 바뀌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사람들은 아끼고 절제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내가 어릴 적만 해도 마을회관 담벼락에 붙는 표어와 포스터의 주제는 건설 아니면 절약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요즘에는 달라요. 아무리 시골이라도 식량증산이니 저축이니 하는 구호는 보기 어려워요. 

즐길 수 있을 때 즐기자는 것이 신세대들의 생각인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도시와 시골 구분이 없어요. 몸이 뜨는 것도 이런 사고방식의 연장이라 할 수 있지요. 몸을 억제하고 옥죄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사회 전반에 팽배해 있지요. 과거와 연결되고 미래와 이어져 있는 마음보다는, 지금 여기에 충실하기를 원하는 몸의 욕구에 따르는 게 요즘 사람들입니다. 

페미니즘 운동의 확산도 몸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데 일조했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성은 물질 혹은 질료로 이해되어 왔기 때문에, 여성 자신에 대한 관심은 몸에 대한 관심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어요. 페미니즘 운동은 지금까지 남성 중심의 사회가 어떻게 여성의 몸을 학대하고 억제해 왔는지, 그리고 상업광고나 포르노그래피에서 어떻게 여성의 몸이 오도되고 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일들은 몸 자체가 아니라 여성의 지위가 관심사였지만, 결과적으로는 몸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어요. 사실 지금도 상업광고를 보면 여성, 정확히 말하자면 여자의 몸이 도구로 이용되는 장면들이 많아요. 

우빠니샤드의 인간 이해는 서양의 심신 이원론과 완전히 달라요. 가장 바깥에 있는 물질적인 몸은 의식 또는 더 나아가서 자아 그 자체와 연속적이라는 것입니다. 몸에는 마음이 반영되어 있어요. 몸에는 마음이 스며있다는 겁니다. 기분이 나쁘면 얼굴에 나타나잖아요? 몸에는 그 사람의 내적인 의식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몸은 그 사람의 내적인 성향과 수준에 대한 외적인 표현으로 간주될 수 있지요. 인도 사람들의 사고로 보면 음식으로 된 나로부터 적어도 식으로 된 나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심신은 본질적으로 동일해요. 모두가 물질적입니다. 이 문제는 좀 복잡하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물질적인 몸이든 마음이든 모두 쁘라끄리띠라는 근본물질에서 나온다고 봅니다. 물질적인 몸과 마음의 차이는 본질적인 것이아니라, 단지 얼마나 더 미세한 물질로 이루어져있는가 하는 상대적인 차이에 불과합니다. 

몸이 마음과 별개가 아니라 연속적인 것으로 파악될 때, 몸은 비로소 그 본래의 의미를 지닐 수 있습니다. 몸은 부정되고 배척되어야 할 ‘똥통’이 아니라, 그것은 거룩함에 이르는 사다리가 되요. 요가가 의미를 지니는 것도 몸과 마음이 연속적이기 때문입니다. 몸 따로 마음 따로라면, 다리를 꼬고 앉는다는 것이 마음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 리 만무하잖아요? 그 둘이 서로 관련을 지니기 때문에 몸을 제어하면 이에 상응하는 마음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심호흡을 하면 자연히 마음이 가라앉아요. 그렇지요. 마음이 급해지면 자신도 모르게 숨이 가빠와요. 몸과 마음이 별개가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몸이 긍정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해서, 그것이 어느 경우든 항상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단지 부정적인 것으로만 파악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지요. 몸은 긍정적일 수도 있고 부정적일 수도 있는 양면성을 지닌다고 봐요. 그 자체로는 부정적인 것도 아니고 긍정적인 것도 아닙니다. 그것을 어떻게 굴리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전혀 달라질 수 있어요. 요가로 몸을 제어하여 삼매를 맛볼 수도 있지만, 우리 주변에는 몸뚱어리 잘못 굴려서 패가망신하는 예도 많잖아요? 그야말로 굴리기 나름이지요. 문제는 지금까지 지나치게 몸을 부정적인 것으로만 보아왔다는 것입니다. 특히 종교가 그랬어요. 

힌두교의 입장에서 볼 때, 몸은 윤회의 결과인 동시에 윤회의 원인이 됩니다. 윤회의 원인은 업 때문인데, 업은 체화된 인간의 행위에 그 원인이 있어요. 다시 말하여 몸을 지닌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이미 이전의 업이 결과를 나타낸 것이지만, 또한 몸을 지닌 사람은 업을 짓는 원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업이 없다면 몸을 지닌 내가 있을 수 없고, 몸을 지닌 내가 없다면 업도 없다 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몸은 분명히 부정적인 의미를 지녀요. 그렇지만 몸은 또한 업을 끊고 윤회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도구가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몸을 토대로 이루어지는 세속의 삶은 불완전한 자아가 스스로를 단련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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