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카플란, [지중해 오디세이](이상욱 옮김), 민음사, 2007.
(17~27쪽)
내게는 여행 동반자가 있었다. 우리는 여행에 고유의 매력을 더해 주는 친밀함을 나누고 있었지만 또 다른 차원에서는 각자의 필기장 페이지나 메우는 고독한 두 사람이었다. 지금부터 이야기하는 것은 이 두 번째 차원의 말 없는 존재에 대한 기록이고, 이 차원에서는 ‘나’라고 하는 대명사가 ‘우리’라는 대명사보다도 더 합당하다.
나는 박물관의 복도를 걸어가듯 풍경 속을 헤매고 다니면서 대학 시절에 찾지 못한 천직을 모색하고 있었다. 지금은 내가 처음 가 보았을 때에 비해 그곳들을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나의 회고는 불가불 강화되겠지만 동시에 왜곡을 피할 수도 없다.
릴케는 루부르 박물관의 그리스 로마 전시실이 “남녘 하늘, 바다, 태고의 문명이 남긴 무거운 석조 기념비들로 가득한 옛 세계의 빛나는 비전을 로댕에게 드러내 보였다.”라고 썼다.로댕은 그리스와 로마의 양식을 단순히 베끼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는 2,000년에 걸친 기독교 문화의 상속자이기도 했다. 그의 조각상들이 강력한 효과를 자아낼 수 있는 것은 원죄라는 죄의식에서 야기되는 동요와 격정에 기인한다. 그래서 그 조각상들에서는 고전 조각 작품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이상화된 평정을 찾아볼 수 없다. 내가 그 조각상들을 기억하는 것은 그것들이 훗날 내가 튀니지와 시칠리아에서 보게 된 고대의 폐허와 중세의 교회와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책을 읽고 그런 곳에 끌리게 되었다.
일생을 바꾸게 하는 책을 우연히 만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의도적으로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마치 넝마주이가 쓰레기 더미에서 무언가 쓸모 있는 것을 찾아내듯이 또는 사냥꾼이 우연히 사냥감과 마주치게 되듯이 그런 책을 찾아내게 된다. 그럴 수 있기 위해서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 한다.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말한다. 가령 한 도시에 대해 중요한 무언가를 찾아내려면 그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야 하는데 그런 일에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강렬한 햇살이 부서진 그림자를 만들고 있던 10월 어느 날 나뭇잎들이 네온 빛처럼 반짝이는데도 우울해하던 나는 뉴햄프셔 주의 하노버에서 우연히 어떤 서점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안쪽 서가에서 나는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살랑보]와 미셀 제라파의 [튀니지]를 찾아냈고, 가게 앞쪽 근처의 탁자에는 리버우스의 [한니발과의 전쟁]이 있었다. 그 책들을 통해나는 누미디아, 로마, 카르타고, 그리고 반달과 비잔틴, 또 아글라비드, 지리드 및 하프시드 같은 여러 문명 및 제국과 마주칠 수 있었다. 그 밖에도 제왕, 장군, 성자, 가짜 예언자, 현자들과도 만났는데, 유구르타,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한니발, 가이세리크, 성 아우구스티누스, 도나투스, 유스티니아누스, 이븐 할둔 등이 바로 그들이었다.
지중해 일대를 여행할 목적을 가지고 있던 나는 비행기 편으로 프랑스로 가서 튀니지행 배를 탈 작정이었다. 그해 겨울이 마치 일생처럼 길게 내 앞에 펼쳐져 있었다. 설령 실수를 한다 해도 그것을 바로잡을 시간이 늘 있기에 우리가 시간에 대한 책임을 질 필요가 없는 그 시절, 정당화해야 할 일들이 쌓이기 전, 가능성은 한없이 많은 그 시절의 느낌을 어떻게 제대로 재현할 수 있을까?
1975년 11월 어느 싸늘한 밤 자정에 나는 파리의 리옹 역에서 마르세유행 기차를 탔다. 새벽녘에 아를 근처에서 잠을 깨니 소금기 섞인 공기가 코를 찔렀고 압착한 포도 색깔의 부드러운 하늘을 배경으로 올리브나무들이 보였다. 농작물을 베어 버린 진한 식물성 녹색의 들판은 포플러로 흠 잡을 데 없이 구획이 지어진 일렁이는 물결 같았고, 모래 언덕과 썩은 진흙으로 된 처진 지붕들과 어지러이 융합되어 있었다. 어느새 북유럽은 사라지고 없었다. 내 수중에는 여행자 수표로 1,000달러가 있었지만 귀국행 표는 없었다.
마르세유는 나에게 지중해의 역사가 우선은 권력의 역사이고 그다음으로 아름다움과 관계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내가 루브르에서 보았던 예술적 기념물들은 위대한 예술의 창작에 앞서 통상과 군사 전략에 통달했던 부유한 제국들의 산물이었다.
마르세유에서 튀니스까지 스물다섯 시간의 항해를 위해 이등 선실표를 샀다. 최면 효과를 자아내는 중동 음악이 지지직거리는 트랜지스터에서 울려 나오면서 배는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 느릿하고 위압적인 움직임은 우리를 수평선으로 통하는 길목으로 인도했다. 사내들이 여행 가방을 깔고 앉아 있었는데 담요와 밧줄로 허술하게 묶인 그 가방들에서 곧 내용물이 터져 나올 것처럼 보였다. 한 사내는 악어 무늬의 바지와 노란색 스포츠 재킷을 입고 있었는데 양말은 붉은색이었다. 튀니지 땅에 들어가서 본바닥 사람들의 우아한 카프탄과 ‘체치아’라는 붉은 펠트 모자를 보고 나서야 하는, 이 노동자들이 돈이 없는 데다가 유럽인들의 취향을 모르기 때문에 서방 세계와 유사한 마르세유의 분위기 속에서 주머니 사정이 허용하는 대로 아무렇게나 마음에 드는 옷을 사 입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마르세유가 뭍에서 보았을 때와는 다른 모습으로 보일 만큼 배가 멀리 항구를 벗어나자 바람이 바닷물을 갑판 위로 흩날렸다. 불그레한 진흙, 기와지붕을 한 무수한 집들, 사람들로 득실거리는 분주한 항구, 경례를 올리고 있는 병사처럼 꿋꿋한 풍모를 보이며 서 있는 라마조르 교회의 중심 돔과 네 개의 작은 돔이 생각난다. 두 개의 요새가 비외포르를 지키고 있었다. 그중 하나인 생장 요새는 14세기에 ‘예루살렘의 기사단’이 건립한 것이고, 생니콜라 요새는 17세기에 루이 14세의 명령으로 세워진 것이다. 이 요새들은 종교적 신념과 무력을 바탕으로 이윤 추구를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던 인간들이 벌인 사업의 반영이다.
우리는 이내 헐벗은 석회암 섬들을 지나고 있었다. 연극 무대의 소도구들처럼 정확하게 여기저기 바다에 점철되어 있던 이 섬들 중에서 가장 작은 것은 ‘일디프’라는 섬인데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주인공 에드몽 당테스가 허위 고발로 체포된 후 갇혀 있던 곳이다. 우리가 더 항해해 나가자 바닷물이 옥색에서 어두운 잉크 색으로 변했다.
마르세유가 시야에서 미끄러져 나가자 갑판에서는 바람과 요란한 말소리가 잦아들었다. 트랜지스터도 꺼졌다. 사람들은 선실에서 올라와 작은 그룹들을 이루어 이것저것 손으로 가리키다가, 근해의 마지막 섬이 수평선 위의 작은 점으로 축소되자 담소가 중단되었다. 장례식이 시작되기 전까지 지껄이던 사람들도 예배가 시작되면 갑자기 조용해지는 모습이 생각났다. 태양이 흐르는 용암의 삼각주처럼 되었을 때 갑판에서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