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녀의 꿈이 실현될 그 날을 위해
2003.06.04
이춘아
여성문학모임 ‘쑥과 마늘’을 아시나요
단군신화에서부터 언급되었던 쑥과 마늘은 식용에서부터 약용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곰이 사람으로 되고자 동굴에서 이것만으로 견뎌냈다고 하는 상징적인 음식이다. '삼국유사'를 찾아보니 이렇게 서술되어 있다.
'.... 때마침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같은 굴에 살면서 환웅에게 사람으로 화하도록 해달라고 빌었다. 이때에 환웅신은 영험있는 쑥 한 타래와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말하기를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 날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쉽사리 사람의 형체로 될 수 있으리라” 하였다. 그 결과, 곰은 견디어 웅녀가 되었고 환웅과 혼인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단군왕검이라는 것이다..'
동굴속의 어두움과 배고픔을 견디어내게 했던 쑥과 마늘은 곰을 사람으로 바꾸어놓은 유일한 매개체이다. 상징적인 그 이름을 따와 여성문학모임의 이름으로 만들었다. 모임의 회원은 충남대 선후배 사이로 ‘여성문학’ 강의를 들었던 이들은 여성문학에 대한 갈증을 풀어줄 수 있는 공부를 계속하고자 하였고, 1995년경부터 모임을 가져왔다. 그러다 98년 2월에 정식으로 이름을 지었고 일년에 한번씩 동인지를 발간하기로 했고 약속대로 99년에 1집, 2000년에 2집, 2001년에 3집, 2002년 4집을 발간하였고 이제 며칠후면 2003년 5집을 출간하게 된다.
시와 수필, 단편소설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쑥과마늘’ 동인지의 제목은 [나의 나무를 찾고 싶다], [삶의 모서리를 치유하는 고향], [함께 걷는 길], [그대 생각]. 이 책들을 빌려와 읽어보면서 많은 생각들이 오갔다. 이러한 책들은 서점에서 보았을 때 나는 사게 되었을까? 우리는 책광고, 이미 이름난 유명인들 몇몇에 의존하여 책을 사게 되는 것은 아닐까? 동인지라고 하는 것에조차 유명한 작가의 이름이 들어있어야 힐끗 쳐다보게 되고, 그렇다고 문학서적을 덥썩 사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곰을 매개체로 한 상징적인 문학 동인 '쑥과 마늘'
이 모임에 대해 알기 위해 동인지들을 읽기 시작했지만 참 재미있게 읽었다. 모처럼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었던 것 같다. 같은 여성으로서 공감대를 이루고 있었기에 더 그러했고, 내가 알고 있는 분의 글이 있었기에 더 가깝게 느껴졌다. 지역의 동인지의 매력이 이러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위 스타작가의 책들을 읽다보면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분을 잘 알고 있다는 착각을 읽으키게 되는 것이 순서였는데, 이번에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을 글을 다시 접하게 되면서 그분의 진면목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 우리 지역에서 알만한 사람들을 글을 통해 다시 한번 더 가까워지게 한다는 점에서 내가 살고 지역의 작가들의 글을 읽어야한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같은 여성이기에 느끼는 공감대, 같은 지역에서 살면서 내가 아는 지명이 거론될 때 밀착되는 공감대가 좋았다. ‘쑥과 마늘’이라는 이름에서 풍기는 소박하면서도 질박하게 우리의 삶과 밀착되어 있는 끈끈한 여운을 주는 동인의 이름만큼 글에서 그 여운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사랑이라는 주제를 통해 여성내면에서 일고 있는 또 다른 솔직한 갈등, 아이를 키우며 요리를 하며 일어나는 일상사의 소소한 주제들이 솔직담백한 문체로 표현되어 이렇게도 문학이 될 수 있구나 하는 감동을 받았다.
10여명의 동인들은 매달 한번씩 모임을 갖고 글들을 발표하고 평을 해주기도 한다. 나름의 고통을 견디며 써온 글에 대해 평을 듣는다는 것이 어려울 것 같은데 함께 길을 걷는 동인이기에 가능한 것 같다. 이들은 일년에 두 번은 1박2일의 문화유적답사를 가기도 하고 함께 연극을 보기도 하고 영화를 보기도 한다. 최근에는 대전지역의 옛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곳들을 답사하고 있다. 비슷한 문학적 감수성을 지닌 사람들이 함께하는 문화행사이니만큼 할 이야기도 무궁무진할 것이니 재미있을 것이다.
순전히 감으로 윤동주 유적을 찾기도
1998년 여름에는 백두산에 올랐다. 연변 용정지역에 가서는 윤동주 묘를 찾아나서기도 했다. 윤동주의 묘는 공동묘지에 있어 선뜻 찾아내기가 어렵다고 하는데 순전히 감으로 찾아냈다고 한다. 30-40대 주부이자 대학강사, 교수들인 이들 여성동인들은 여성, 생태, 영성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하며 문학적으로 형상화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앞으로 시, 수필, 단편소설 뿐 아니라 좀더 체계를 갖추어 여성과 문화 전반에 걸친 동인지를 출판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자면 대전지역에서 여성과 문화에 관심있는 여성들이 의기투합하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은 좀더 많은 창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지면을 늘리고자 일년에 한번씩 발간했던 동인지를 일년에 두 번씩 발간하고 대전지역 여성삶의 과거와 현재를 집중하여 다룰 수 있는 특집호도 마련할 계획이라고 한다.
쑥과 마늘로 견디어온 웅녀의 꿈이 실현되는 그 날을 위해 아직도 동굴속에서 어두움을 지켜내고 있는 여성들이라고 할 수 있다. 2002년도에 나온 동인지의 발간사에 이런 구절이 있다.
'... 자신을 담금질하고 서로에게 힘을 모아주었던 지난 1년간의 시간을 책을 엮게 되었다. 죽음과도 같은 시련을 기꺼이 받아들인 곰만이 새로운 존재로 거듭났다는 사실을 기억하고자 한다. 아직은 미로 속에서 방황하는 어설픈 동작이지만 우리 나름대로는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싶은 삶의 편린들이다. 이 모두는 이 시대의 울림이다. 우리는 2002년의 오늘을 살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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