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 [안나 카레리나 1](박형규 옮김), 문학동네, 2017(2009 초판).
(42~45쪽)
레빈은 오블론스키와 거의 같은 연배로, 그와는 단순히 함께 샴페인을 마신 ‘너’의 사이가 아니었다. 레빈은 아주 젊었을 때부터 그의 동지였고 친구였다. 그들은 성격이나 취미가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아주 젊었을 적에 얽힌 친구들이 그러하듯 서로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상이한 활동 분야를 선택한 사람들이 흔히 서로 그러듯이 그들 두 사람도 이성으로는 상대의 세계를 시인하면서도 내심 그것을 경멸하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자신이 하고 있는 생활만이 참된 생활이고 친구가 하고 있는 생활은 한낱 환상에 지나지 않는 듯이 생각하는 것이었다. 오블론스키는 레빈을 볼 때마다 얕보는 듯한 엷은 미소를 억누를 수가 없었다. 그는 벌써 여러 차례, 레빈이 무엇인가를 하고 있는 시골에서 모스크바로 나올 때마다 만나곤 했지만 그가 정말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도 없었고 또한 흥미도 갖지 않았다. 레빈은 언제나 흥분되고 성급하며 어딘지 불안한, 그리고 조바심으로 안절부절못하는 듯한 사람이 되어, 대개의 경우 모든 사물에 대해 전혀 새로운 의외의 견해를 가지고 모스크바로 나오는 것이었다. 스테판 아르카디이치 오블론스키는 이 점을 비웃으면서도 또 좋아하고 있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레빈 역시 속마음으로는 자기 친구의 도시적 생활양식과 무의미하다고밖에 여겨지지 않는 그의 직무를 경멸하고 또 조소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차이는, 누구나 하고 있는 대로 살아가는 오블론스키가 자신 있고 사람 좋게 웃는 데 반하여, 레빈의 웃음은 자신이 없고 때로는 노한 듯이 보인다는 점이었다. “우린 오래전부터 자넬 기다렸지.” 스테판 아르카디이치는 사무실로 들어가면서 레빈의 손을 놓고 마치 이제 위험구역을 벗어났다는 듯한 태도로 말했다. “자넬 만나서 정말, 정말 반가워.” 그는 계속했다. “그래 자네는 어떤가? 여전한가? 언제 왔어?” 레빈은 일면식도 없는 오블론스키의 두 동료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잠자코 있었다. 그리고 특히 그리네비치의 우아한 손을, 하얗고 긴 손가락과 누르스름하고 기다란 끝이 굽은 손톱과 셔츠 소매에 달린 굉장히 크고 빛이 나는 커프스단추를 그의 온 주의를 독점하여 사고의 자유마저 뺏아간 것처럼 응시하고 있었다. 오블론스키는 곧 그것을 알아채고 빙그레 웃었다. “아아, 그렇지, 여러분들을 소개하지.” 그는 말했다. “내 동료인 필리프 이바느이치 티키틴과 미하일 스타니슬라비치 그리네비치.” 그리고는 레빈을 가리키며 계속했다. “이분은 지방자치회 의원으로 지방자치회에서의 새로운 세력이고 한 손으로 80키로를 들어올리는 운동가이자 목축가이며 사냥꾼이기도 한 내 친구 콘스탄틴 드미트리 레빈. 세르게이 이바노비치 코즈느이쉐프의 아우야.” “정말 반갑습니다” 하고 노인이 말했다.
“난 영광스럽게도 형님 세르게이 이바노비치와 면식이 있습니다” 그리네비치는 손톱이 길고 화사한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 레빈은 얼굴을 찌푸리며 싱겁게 악수를 하고는 곧바로 오블론스키를 돌아보았다. 그는 비록 러시아 전역에 널리 알려진 저술가인 이부형에게 높은 경의를 품고는 있었지만, 타인이 자기를 대할 때 콘스탄틴 레빈으로서가 아니라 저명한 코즈느이쉐프의 아우로 대하는 것은 참을 수가 없었다. “아니야, 난 이제 지방자치회 의원이 아니야. 그 녀석들과 대판 싸우고 이젠 의회에 나가지 않아.“ 레빈은 오블론스키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어느새 그런 일이!“ 미소를 띠며 오블론스키가 말했다. ”하지만 어째서, 뭣 땜에?“
”이야기가 길어, 언젠가 말해주지.“ 레빈은 이렇게 말했으나, 이내 그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간단히 얘기하자면 말이지, 난 지방자치회에서 할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고 또 있을 수도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야.“ 그는 마치 누군가에게 지금 모욕이라도 당한 것처럼 흥분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한편으로 말하면 그건 일개 노리개일 뿐이야. 그자들은 지방자치회에서 장난을 하고 있지만, 난 노리개를 가지고 장난하며 즐길 만큼 젊지도 않고 또 그 정도로 늙지도 않았으니까 말야. 또 한편으로 말하면“ 하고 그는 말을 더듬었다. ”그것은 군 악당들의 돈벌이를 위한 수단이란 말야.“ 예전에는 감독기관이나 법원이 그랬지만 지금은 지방자치회가…. 뇌물의 형식이 아닌 명예수당이 그 수단처럼 됐어.” 그는 마치 동석자 중 누군가가 그의 의견에 반박이라도 한 것처럼 열을 내어 말했다.
“어허! 자네는 또 견해를 바꾼 모양이로군. 이번에는 보수파란 말이지.” 스테판 아르카디이치가 말했다. “그건 그렇고, 그 얘긴 나중에 하지.”
“그래. 나중에 하지. 하여튼 난 자네를 꼭 좀 만날 일이 있어서 말야.” 레빈은 그리네비치의 손을 아니꼽게 쏘아보면서 말했다.
스테판 아르카디이치는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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