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타 툰베리 외, [기후 책], 김영사, 2023.
(554~556쪽)
기후 관련 도서들이 쏟아지는 와중에, 그레타 툰베리는 왜 이렇게 두툼한 ‘기후 책’을 내려고 했을까?
기후운동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던 그레타 툰베리는 코로나19로 모든 외부활동이 중단되자 팬데믹 상황 속에서 기후행동을 어떻게 이어나갈 수 있을지 고민했다고 한다. 그녀는 우리의 현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과학적 사실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우리에게 아직 미래를 바꿀 기회가 열려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기후 책]이 나온 배경이다.
그레타 툰베리는 자신의 명성(?)을 한껏 이용해 전 세계 100여 명의 필진을 모았고, 기후 문제에 관한 주제 하나씩을 맡아 써달라고 요청했다. 기후변화에 관해 중요한 연구를 하고 있거나 환경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과학자, 저명한 저술을 출간한 학자와 작가, 열악한 조건에서 기후위기와 싸우고 있는 활동가들이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조합이었다. 이 점에서 [기후 책]은 팬데믹 시기의 그레타 툰베리와 필자들의 공동 기후행동이라고 할 만하다.
한마디로 이 책을 정의하면, 기후 비상사태 속에서 희망의 길을 발견하는 기후행동 안내서라고 할 수 잇다. 그레타 툰베리는 이처럼 분명한 기후 재난의 시대에 사람들이 기후행동에 적극적이지 않은 이유가 기후위기의 진실을 제대로 못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사람들이 기후위기의 단편적인 지식이 아니라 전체상에 대해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책이 이산화탄소의 역사에서부터 시작해 기후정의까지 기후변화와 관련된 거의 모든 주제를 망라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 책만큼 기후변화의 핵심 주제들에 대해 명쾌하게 다룬 책도 드물다.
서로 분야도 다르고 생각도 다를 수 있는 100여 명의 사람들이 참여했다고 해서 이 책을 여러 글을 단순히 묶어놓은 옴니버스 형식의 책으로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그레타 툰베리는 여러 필자들의 글을 주제별로 묶어서 소개하는 방식으로 전체적인 일관성을 유지했다(툰베리의 글만 따로 모아놓아도 만만치 않은 한 권 분량이 될 것이다). 독자들은 이 글을 통해서 기후행동의 최전선에 서 있는 툰베리의 사유와 행동의 지향을 이해하는 기회도 얻게 될 것이다. 그녀는 더 이상 기성세대에게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호소하는 열여섯 살의 앳된 중학생이 아니다.
이 책의 전반부가 주로 기후과학을 다루고 있다면 후반부는 기후위기와 관련된 사회경제적 문제들을 다룬다. 기후과학에 대한 다양한 글들은 그레타 툰베리가 기후위기를 적당히 타협하거나 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닌, 인류의 운명이 달린 흑백의 문제라고 단언하는 과학적 근거들을 담고 있다. 책의 후반부는 기후난민과 기후 분쟁, 기후정의와 기후 부정론, 그린워싱, 탈성장, 기후 배상 등을 다룬다. 지금 우리 기후운동이 고민하고 있는 중요한 주제들을 해당 분야의 대표 연구자와 활동가의 글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각 주제가 지닌 무게감에 비해 페이지 분량은 아쉽지만, 우리 사회가 무엇을 고민하고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에 대한 논점은 분명하게 전달된다.
그레타 툰베리가 밝혔듯이 이 책은 그의 생각대로 사람들을 이끌기 위해 기획된 것이 아니다. 사람들 스스로 학습하고 해결책을 찾아가도록 돕기 위해 만들어졌다. 필자들은 기후위기의 전체상을 그려보고 싶은 독자들에게 필요한 사실을 전달한다. 그 전체를 모아내는 것은 온전히 독자 몫이다. 그럼에도 이 책에는 툰베리의 자기 생각과 주장이 비교적 선명하게 드러난다. 치열한 고민과 행동 속에서 확신을 얻은 그녀의 생각은 풀뿌리 기후운동 쪽으로 기울고 있다. 5년 전 그녀는 국회의사당 앞에서 피켓을 들고 호소했지만, 이제는 기후문제를 정치인이나 학자들이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통합적인 해결책을 찾는 일을 누구에게 맡겨야 하나? 대학들 중에서도 특히 우수한 대학? 정부? 세계 지도자들? 기업인들? 유엔? 어느 것도 답이 아니다. 그 일은 우리 모두가 맡아야 한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서 ‘좋아요’를 누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람들이 기후위기의 현실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레타 툰베리는 사람들의 인식 변화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지금 기후운동에서 가장 강력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 중 일부는 몇 년 전에는 이 위기에 대해 거의 몰랐던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지금은 인류의 운명을 바꾸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것은 툰베리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녀는 자신의 기후행동 속에서 희망과 가능성을 찾을 수 있었다.
이 책이 기후위기에 깊은 관심을 갖고 전체상을 그려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텍스트북으로 이용되길 바란다. 이 책 한 권만으로 여기에 실린 모든 주제들을 완벽하게 이해하게 된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 주제들에 관해 가장 정확하며 잘 소개하고 있는 정수들을 모아놓은 것임은 틀림없다. 툰베리가 말하는 ‘사회를 바꿀 수 있는 25퍼센트의 사람들’이 기후행동을 위해 함께하는 그날을 기대하며, 오늘도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기 위해 고민 중인 우리나라의 많은 환경 모임에도 이 책이 좋은 안내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툰베리는 이렇게 말하다. ”희망은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는 희망이 절실히 필요하다.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행동에 나서기로 결정하는 순간 모든 일이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풀리기 시작하는 사회적 티핑 포인트가 존재한다고 확신한다.“
기후행동의 출발선에 선 모두에게 꼭 필요한 말이다.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소장 최동진
'문화 책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낭독의 발견 1ᆢ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0) | 2023.11.08 |
---|---|
회복탄력 공동체 (6) | 2023.11.02 |
당신과 햇살 속에 함께 있는 것 (39) | 2023.10.13 |
우리는 모두 미스터리다 (45) | 2023.10.06 |
세컨드 윈드 (32) | 2023.09.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