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오, 윌리엄!](정연희 옮김), 문학동네, 2022.
(292~ 298 쪽)
그날 밤 침대에 누워 내 집에서 보았던 윌리엄과 그의 얼굴을, 우리의 대화를 떠올렸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 그는 권위를 잃었어.
그 생각에 나는 일어나 앉았다.
그 생각에 나는 침대에서 내려와 집안을 돌아다녔다.
그는 권위를 잃었다.
콧수염 때문에?
그럴지도.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그 순간 이 일이 생각났다.
윌리엄을 떠나고 몇 년이 지났을 때 나는 맨해튼의 어느 뮤지엄 건너편에 사는 남자와 사귀었다. 그 남자는 나를 사랑했고, 나와 결혼하고 싶어했지만(나를 교항약단 연주회에 데려간 남자였다). 나는 그와 결혼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지만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내가 기억한 것은 이것이다. 그의 집에선 길 건너에 뮤지엄 타워가 보였다. 매일 밤 - 아마 일주일에 세 번은 그 집에 갔을 것이다- 그 작은 타워에는 불이 켜져 있었고, 나는 늘 거기서 늦게까지 일하는 사람을 상상했다. 늘 조금 젊거나 중년인 남자였고, 가끔은 여자였는데, 그 - 혹은 그녀 -는 그 일을 아주 재미있어해서 거기서 늦게까지 일했다. 나는 늘 그 -혹은 그녀-가 뮤지엄의 불 켜진 타워에서 혼자 일하며 느꼈을 외로움에 마음이 움직였다. 그때 내가 느낀 위로란-! 밤마다 나는 뮤지엄 타워의 불 켜진 창문을 바라보았고 밤새 거기서 일하는 외로운 사람을 생각하면서 큰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서야 나는 금요일이든 토요일이든 일요일이든, 밤에 그 불빛을 보지 못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불은 늘 켜져 있었고, 여러 해가 지난 뒤에야 내가 지켜본 그 시간 동안, 자정을 지나 새벽 세시가 될 때까지, 햇빛이 충분히 밝아져서 전등이 여전히 켜져 있는지 알아볼 수 없게 될때까지, 거기서 일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여러 해가 지나서야 내가 어떤 신화에 의해 지탱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시간에 그 타워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남편을 떠나고 몹시 겁에 질려 있었을 때, 나를 사랑하지만 늘 불안하게 만들었던 그 잠든 남자 옆에 누워 불빛을 바라 보면서 내 삶의 아주아주 많은 밤에 받았던 그 위로를, 나는 결코 -기억에서- 지우지 않았다. 타워의 불빛이 내가 그 시기를 통과하도록 도와주었다.
하지만 그 불빛은 내가 생각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이 나와 윌리엄의 이야기였다.
나는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그것이 거대한 파도처럼 나를 덮쳤다. 윌리엄은 뮤지엄의 불빛과 같았고, 다만 나는 내 삶이 뭔가 가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것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뭔가 가치가 있었다!
나는 의자에 앉아 창밖으로 도시의 불빛을 바라보았다. 내 아파트에서는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이 보여서 나는 그것을 바라 보았고, 이어 내가 사는 건물 가까이 있는 아파트들을 바라보았다. 그중 몇 곳에는 늘 불이 켜져 있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좋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만들 수 있다면 뭐든 하겠어.
나는 방금 깨달은 이 사실로부터 윌리엄을 보호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나 자신 또한 그것으로부터 보호하고 싶었다. 그랬다. 그건 사실이겠지만, 최대한 솔직히 말하건대, 나는 윌리엄이 내게서 권위를 잃었다는 것을 그가 어느 수준에서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평생 마음속에 품고 다닌 헨젤과 그레텔의 모습, 그것은 사라졌다. 나는 더이상 헨젤을 안내자로 여기며 바라보는 꼬마가 아니었다. 윌리엄은 그저 -아주 단순히- 더는 내게 안전하다는 느낌을 주는 존재가 아니었다.
수면제를 먹어도 소용이 없을 게 뻔했다. 나는 일어나서 아파트 안을 서성였고, 창가 의자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나는 우리 딸들을 생각했다. 그를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은 베카인 것 같았다. 베카는 그 단어를 한 번도 쓰지 않았지만, 그애에게는 권위 있는 아버지가 필요했다. 앉아서 딸의 사랑스럽고 아이 같은 얼굴을 떠올리니 그 사실에 마음이 울컥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윌리엄을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크리시를 생각했다. 어쨌거나 그는 그애의 아버지였다. 하지만 크리시는 -내가 보기에- 베카, 그 여린 아이보다는 훨씬 그의 변화를 감당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듯 보였다. 그 이유를 누가 알겠는가? 한 아이는 이렇게, 또 한 아이는 저렇게 자라는 이유를 도대체 누가 알겠는가?
해가 떠오르기 시작할 무렵 나는 윌리엄에게 문자를 보냈다. 알았어, 갈게. 그러자 그가 즉시 문자를 보내왔다. 고마워 버튼. 그리고 나는 잠이 들었다.
늦은 아침에, 나는 아파트 안을 돌아다니면서 케이맨제도에 가져갈 옷을 침대 위에 꺼내놓았다. 그러는 동안 중간중간 멈추고 침대에 앉아 생각했다. 나는 물론 윌리엄이 다른 곳이 아니라 그곳에 가자고 한 이유를 알았다. 나는 캐서린이 그랬던 것처럼 라운지체어에 윌리엄과 나란히 햇볕을 받으며 앉아 있는 내 모습을 그려보았다. 내가 책을 읽는 동안 그 역시 제인 웰시 칼라일에 대한 책을 읽는 장면을 그려보았다. 나는 우리가 틈틈이 책을 내려놓고 이야기를 나누다 다시 책을 집어드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러다 한번은 침대에 앉아 소리 내어 말했다. “오 캐서린.”
그리고 생각했다. 오 윌리엄!
하지만 내가 오 윌리엄! 하고 생각할 때, 그건 또한 오 루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닌가?
오 모든 이여, 오 드넓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소중한 모든 이여, 그런 의미는 아닌가? 우리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심지어 우리 자신조차도!
우리가 알고 있는 아주, 아주 작은 부분을 빼면.
하지만 우리는 모두 신화이며, 신비롭다. 우리는 모두 미스터리다. 그게 내가 하려는 말이다.
아마도 이것이 내가 이 세상에서 진실이라고 알고 있는 유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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