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옥,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 파람북, 2024.
(259~262 쪽)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는 체코의 프라하에서 태어나고 성장했다. 그의 아버지는 걸핏하면 식탁에서 소리를 지르고 폭언을 일삼았는데 이는 그에게 평생 상처로 남았다.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를 읽으면 내용은 서글픈데 문장에 유머가 있어 웃지 않을 수가 없다. 자신은 음식 부스러기를 바닥에 질질 흘리면서 자식들에게 식탁예절을 지키라고 소리를 지르는 모습은 희극처럼 느껴진다. 카프카는 식탁에서 절망하고 식탁에서 사랑을 얻었다.
1912년 8월 20일의 일기다. 그날 카프카는 친구 막스 브로트의 집에서 펠리체 바우어와의 만남을 이렇게 기록했다.
블라우스를 걸쳐 입은 모습이 아주 가정적으로 보였으나, 잠시 후 그녀는 이 인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울퉁하고 빈 얼굴은 공허 그대로였으며, 삐뚤어진 코, 약간 무디고 매력 없는 금발, 거센 턱. 식탁에 마주 앉아 그녀를 처음으로 자세히 눈여겨보면서 나는 그녀에 관해 확고한 판단을 내렸다.
나는 글을 읽다가 ‘아주 가정적’이란 표현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카프카는 가끔 나를 웃게 하는데 특유의 진지한 유머 때문이다. 무표정한 얼굴로 진지한 농담을 하는 사람을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친구의 집 식탁에서 우연히 마주 앉은 못생기고 매력 없는 아가씨, 펠리체 바우어. 그녀가 그의 삶에 들어온 것은 대화를 나누면서였다. 첫 만남 후 카프카는 창작열을 불태우는데 하룻밤 사이에 단편소설 [판결]을 써서 그녀에게 바쳤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는 그 자체로 문학인데 카프카가 그녀에게 보낸 편지와 엽서는 모두 545통이다.
그는 그녀와 두 번의 약혼과 두 번의 파혼으로 관계에 종지부를 찍었다. 마지막 파혼은 1917년 12월이었는데 그는 당시 폐결핵을 앓고 있었다. 일기에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지만, 그녀를 떠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썼는데 두 사람은 진심으로 사랑했던 것 같다.
폐결핵 말기에 이르러 카프카는 친구인 막스 브로트에게 자기 작품을 모두 태워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브로트는 카프카의 사후, 그의 작품을 모두 출간했고 카프카의 전기 [나의 카프카]를 썼다. 그런데 책에서 유일하게 제외된 노트가 있었다. 사랑하는 여자와 헤어진 1917년 말부터 1919년 6월까지 쓴 8권의 파란 노트였다. 여기에 쓴 글은 1953년에야 [Blue Octavo Notebooks]로 발간되었다. ‘Octavo’는 팔절지 크기를 말한다. 그는 평소 쓰던 노트가 아닌 파란 표지의 팔절지 노트에 글을 썼다. 정확하게 말하면 펠리체와 마지막 파혼 이후부터 쓴 글이다. 카프카는 여기에 일기가 아닌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글을 썼다.
이 파란 노트가 21세기 한 음악가의 앨범으로 다시 태어났다. 독일 출생의 영국 작곡가 막스 리히터(Max Richter)의 음반 <블루 노트>였다. 음반에는 모두 11곡이 수록되어있는데 그중 3곡이 카프카의[Blue Octavo Notebooks]의 문장이다. 타이핑 소리와 함께 영화배우 틸다 스윈튼이 책을 낭송하는데 작곡가 막스 리히터는 작가들의 문장이나 목소리를 음악으로 취급한다.
막스 리히터는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을 무용곡으로 작곡했을 때도 울프의 육성을 곡으로 다루었다. 그는 상당한 문학 애호가로 작가의 작품을 수없이 읽고 또 읽어 완벽하게 이해한 다음 작곡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음반의 곡들을 작곡하기 위해 막스 리히트는 카프카의[Blue Octavo Notebooks]를 수없이 읽었을 것이다.
첫 번째 크랙에서 낭독되는 문장에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방이 있어 빠르게 걷거나 사위가 조용할 때 귀를 기울이면 벽에 헐겁게 걸린 거울이 덜컹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카프카가 얼마나 쓸쓸하고 고독했는지 말해주는 것 같다. 이 음반의 곡들은 영화음악의 성지가 되었다. 수많은 영화감독이 영화의 OST로 사용해서 더 유명해졌다. <아뉴스 데이>, <콘텍트>, <셔터 아일랜드>, <디스커넥트>, <토고>나 <The Face of an Angel> 등등 족히 수십 편의 영화는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서도 OST로 쓰였을 정도다. 나는 영화를 볼 때 <블루 노트>의 곡이 흐르면 눈을 감는다. 카프카 인생의 모멸과 사랑의 저녁 식탁, 사랑을 잃고 쓴 노트, 그의 책을 발간한 막스 브로트, 그들이 세상을 떠나고 오랜 세월이 지나 책을 읽고 음악을 작곡한 막스 리히터. 나는 카프카와 두 명의 막스를 생각한다.
올해는 프란츠 카프카가 세상을 떠난 지 100이 되는 해다. 카프카는 문학에서 문화가 되었다. [Blue Octavo Notebooks], 프란츠 카프카 지음. 국내에서는 ‘카프카 전집‘ 2권 [꿈 같은 삶의 기록 - 잠언과 미완성 작품집](이주동 옮김, 솔, 2017) 중 263쪽 이하에서 카프카의 원고 순서대로 정리해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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