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소로의 후예들

이춘아 2024. 8. 23. 22:15

나희덕, “소로에게 보내는 다섯 번째 편지,” [녹색평론]181호 (2021년 11~12월).


(200~ 202쪽)
당신이 세상을 떠난 후 헨리 솔트라는 한 영국인은 당신의 전기를 쓰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거나 편지를 주고받으며 광범위한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헨리 솔트는 19세기 영국의 대표적인 사회개혁 운동가이자 저술가인데요. 그는 당신으로부터 사상적 영향을 받아 생태주의자, 채식주의자, 사회주의자로서 추월주의운동을 계승해나갔습니다. 그가 쓴 당신의 전기는 무려 18년 동안의 집필과 수정을 통해 완성되었습니다. 당신의 삶이 이렇게 기록되고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애정 어린 노력 덕분이었지요. 헨리 솔트는 1929년 마하트마 간디에게도 편지를 써서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물었습니다. 그 편지에 대한 간디의 답신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내가 소로의 저서를 처음 소개받은 것은 가장 치열하게 비폭력 저항투쟁을 하고 있었던 1907년 이후의 일입니다. 그 당시 한 친구가 나에게 소로의 에세이 [시민 불복종]을 보내주었지요. 나는 그 책을 읽고 매우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당시 내가 편집하고 있던 [남아프리카에서의 인도인의 견해]의 독자들을 위해 그 에세이의 일부를 발췌 번역해서 잡지에 실었습니다. 나는 그의 글이 대단히 설득력 있고 진실한 것 같아 소로에 대해 좀더 알아야 할 필요를 느꼈지요. 그래서 당신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그의 [월든], 그리고 다른 에세이들을 구해 읽었습니다. 

이렇게 간디가 당신의 책을 접했을 때는 남아프리카의 한 인도 회사에서 일하고 있을 무렵이었지요. 그곳에서 인종차별을 받으며 현실을 자각하게 된 간디는 불평등한 법률을 반대하는 운동에 뛰어들었고, 인도로 돌아간 뒤에는 ‘사티야그라하’를 모토로 삼아 독립운동을 이끌었습니다. ‘진리의 힘’이라는 뜻의 ‘사티야그라하’는 당신이 말한 ‘시민 불복종’ 정신을 이어받은 비폭력 투쟁을 의미합니다. 당신이 불의한 권력에 맞선 개인의 저항을 강조했던 것처럼, 간디는 감옥에 갇혀서도 두려움 없이 자신의 저항을 강조했던 것처럼, 간디는 감옥에 갇혀서도 두려움 없이 자신의 신념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당신이 존 브라운의 저항적 폭력을 인정하고 국가에 맞서 싸웠다면, 간디는 저항의 윤리적 순수성을 위해 힌두교의 비폭력 정신인 ‘아힘사’(불살생)를 철저히 지키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마하트마 간디 이외에도 당신의 영향을 받은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이 많지요. “우리 시대의 온갖 주의 가운데 소로를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은 주의는 거의 없다”는 월터 하딩의 말처럼, 당신의 사상은 후대에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이해되거나 전유되었습니다. 앤드류 커크가 쓴 [세계를 뒤흔든 시민 불복종]을 보면, 1960년대 이후 미국에서는 반전시위대, 환경운동가, 평화주의자, 무정부주의자, 나체주의자, 히피 등이 앞다투어 당신을 자신들의 얼굴로 내세웠다고 합니다. 심지어 코네티컷에서 핵잠수함 반대 시위를 벌이는 데 쓰인 보트의 이름도 ‘헨리 데이비드 소로 호‘였다고 하더군요. 마틴 루터 킹이 인종 평등의 꿈을 외치며 대중연설을 할 때에도 그의 메시지 속에는 당신의 목소리가 깃들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세계 각국의 다양한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 것은 그만큼 당신의 사상이 선구적이고 보편적이라는 사실을 말해주지요. 

그러나 당신에 대한 오해나 비판 또한 다른 한쪽에 존재합니다.  자연주의자의 면모를 지나치게 부각하면서 당신의 사상을 탈정치화한다든지, 당신의 저항을 소극적이고 순응적인 것으로 평가하면서 비폭력 정신의 원류로 숭배한다든지, 야생의 아름다움과 자유에 대한 추구를 반문화적이고 반사회적인 일탈로 보는 견해 등이 그러합니다. 당신을 제대로 읽거나 전체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자신들의 선입견이나 구미에 맞게 활용했던 것이지요.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당신을 비판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사실 저도 당신의 책을 읽다가 여성과 관련된 부분이 나오면 고개를 갸우뚱거리거나 약간의 거부감을 가지곤 했습니다. 여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때로는 여성혐오적인 성향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이런 성향 때문에 페미니스트들에게 비판을 받기도 했지요. 엘렌 데버루 수얼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한 뒤 독신으로 살면서 여성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을 가졌으리라 짐작해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자 메이 올컷, 마거릿 풀러 등 주관이 뚜렷하고 지적인 여성과 어울리는 걸 좋아했던 걸 보면 당신의 여성관이 보수적이었다고만 말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이제 편지를 끝내면서 당신의 후예로서 한국의 대표적인 생태사상가 김종철 선생님과 [녹색평론]이라는 잡지에 대해 말씀드릴까 합니다. 당신께 보내는 이 편지를 연재해온 지면이기도 한데요. [녹색평론]은 1991년 10월에 생태적 삶과 공생적 문화를 지향하며 창간된 격월간지입니다. 안타깝게도 김종철 선생님이 작년에 세상을 떠나셨지만, 지난 30년 동안 이 잡지를 통해 절박하게 외치셨던 말씀은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씨앗처럼 뿌려져 있다고 믿습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마하트마 간디, 이반 일리치, 웬델 베리,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사티쉬 쿠마르, 리 호이나키, 함석헌, 장일순, 권정생, 지율, 천규석 등 수많은 스승들을 [녹색평론]을 통해 만났습니다. 그 별들을 마음 깊이 품고 살겠습니다. 

2021년 10월, 나희덕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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