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위해

이춘아 2024. 10. 12. 06:23

이현정, [우리는 왜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가], 21세기북스, 2023(2022 1쇄)


(174~ 181쪽)

한국 사회는 다른 국가와 달리 유독 타인의 욕망이 개인의 삶을 지배한다. 타인의 욕망이 개개인의 삶을 지배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개인의 삶은 억압적일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싶다” 혹은 “남보다 뒤처지지 않은 삶을 살아야 돼”라는 말을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들어 보았을 것이다. 이 말을 곱씹어보면, 기본적으로 내 삶의 주체는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삶의 중심에 두는 게 아니다. ‘나는 어떻게 저렇게 되지? 나는 어떻게 해야 저 사람들처럼 살 수 있을까?’와 같이 타인의 기준과 욕망에 삶의 조건을 두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남부럽지 않은 삶’은 무엇일까. ‘남’은 가깝게는 이웃을 가리킬 수 있다. “00네는 저렇게 집도 사고, 아이들도 좋은 학교에 보내고, 저 집은 무슨 집안이고….”하는 식처럼 말이다. 또 우리에게 ‘남’은 멀게는 일본이나 미국 같은 선진국이기도 하다. 남부럽지 않은 삶의 기저에는 항상 내 삶이 너무나 초라하고 아직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다.

한국 사회는 남부럽지 않을 수 있는 수준으로 나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고,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만연하다. 남부럽지 않은 삶은 도대체 언제 이룰 수 있는 것일까. 한국 사회는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섰다. 그렇다고 해서 “아, 이제는 살 만한 사회가 됐다. 이제 남부럽지 않아. 우리는 행복해. 우리는 만족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국은 OECD 국가 가운데 행복지수가 최하위인 33위이다. 경제적 성장을 이뤘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는 계속해서 행복에 도달하지 못한다. 어쩌면 남부럽지 않은 삶이라는 그 자체가 도달할 수 없는 목표일 수 있다. 어째서 한국인의 삶은 이룰 수 없는 목적을 위해 쳇바퀴를 돌아야 하는 걸까 한국 사회의 경제 성장과 정치적 민주주의의 달성 정도와는 유리된 개개인의 삶의 질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경제 성장과 정치적 민주주의에 있어서 우리 사회는 그동안 크게 발전했다. 1950년대에는 전쟁 직후 사회 전반적으로 어려웠고,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는 군부 독재라는 기간을 거치면서 정치적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을 키워왔다. 그리고 1988년 올림픽을 통해 전 세계에 급속도로 성장한 한국을 널리 알렸으며, 1990년대에 이르면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중신층의 삶이 보편화되었다.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약 40년 동안 급속도로 성장한 것이다.

그럼에도, 2020년대에 들어선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만족스러운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 불만족스러운 삶은 무엇보다 한국 사회의 발전이 무조건적 성장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개개인의 삶의 질과 행복감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오히려 등한시했기 때문이다.

지난 세기를 거치며 한국인들은 식민통치, 미군정, 한국전쟁, 동서냉전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격랑 속에서 생존을 우선으로 지향하는 삶을 살아았다. 특히 1960년대 이후 “남부럽지 않은 삶”을 추구하기 위해 경제 성장에 집중하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단 기간 동안 목표를 달성하느라 다른 것은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그 때문에 국가와 국민적 지향은 그 목표를 달성하고 전 세계에 ’한강의 기적‘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지만, 물질적 팽창에 수반되는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을 모른 척하거나 경시함으로써 이후 큰 재난에 직면하게 되었다.

1990년대부터 크고 작게 이어지는 대형 재난 사고는 수많은 인명과 재산을 앗아갔을 뿐 아니라, 한국의 경제 기적이라는 성과 뒷면에는 비극적 이면이 존재한다는 점을 인식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1997년 대한항공 여객기 괌 추락 사고, 199년 화성 씨랜드 화재,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2007년 태안 기름유출 사고, 그리고 2014년 세월호 참사에 이르기까지, 지난 20여 년간 한국 사회가 겪은 대형 참사는 셀 수 가 없다.

물론 지속적인 경제 성장과 산업화의 결과로 나타나는 재난 문제는 비단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고도로 산업화된 선진국에서 발생하는 잦은 재난에 대해,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이제서구 사회가’위험 사회‘에 돌입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원자력 사고라든지 수질, 대기와 해양의 오염, 식품안전 사고, 대형 교통사고 등 각종 사고와 재난은 산업사회에서 인간이 물질적 풍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서, 경제 발전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찰스 페로는 오늘날 대형 사고와 재난은 과학기술 발전 및 고도의 기계화 속에서 일정 확률을 가지고 상시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정상적인 일이라며, ’정상 사고‘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예컨대 교통수단은 과거와 달리 대형 항공기, 고속철도, 지하철 등의 형태로 운송 효율 부분에서는 뛰어나지만 관리자나 이용자의 순간적 부조의로 인해 수많은 인명을 앗아가는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원자력 기술은 처리 과정의 상당 부분을 컴퓨터로 자동화하고 있지만 만일 그 과정에서 작은 실수 하나만 발생하더라도 기계나 컴퓨터 자체의 결함으로 인해서 엄청난 인명 피해를 낳을 수 잇다. 이러한 위험 요소들은 형대 산업사외의 고도의 기술 문명이 내재하는 문제점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선진국형 문제 외에도 다른 문제가 있다. 한국은 경제 성장 위주의 급속한 발전을 추구해오면서, 당시에 함께 고려했어야 하는 안전 문화 및 안전시설물, 각종 관리 방책, 감독의 정교화 등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지만, 한 달에도 수십 건씩 발생하는 중대 산업재해 문제가 바로 이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여전히 안전시설은 턱없이 부족하고 위험한 작업에 참여하는 노동자의 안전이나 기본 권리는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다. 또한 재난이 발생할 때 긴급 대피, 구난, 처치, 복구 체계에 있어서 준비가 불철저할 뿐 아니라 제대로 신속히 진행되지 않아서 피해가 가중되는 게 일반적이다. 재난에 대한 대비책이 없기에 이는 곧바로 수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여기서 특별히 지적할 부분은 한국 사회의 재난 피해 문제가 단지 서구적 산업화 과정과 후진국형 문제로 인해서만 발생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그동안 국가 경제 및 개별 기업들의 급속한 성장이 시민들의 안전을 희생시킨 바탕 위에서 편법과 탈법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이에 사회학자 장경섭은 한국이 ’복합 위험사회‘의 특징을 갖는다고 지적한다.

생산과 건설, 운송하는 물류의 증가 등 급증하는 경제활동에 따라 위험이나 문제가 발생할 확률이 높아졌기 때문에, 국가나 기업에서는 이와 관련된 안전과 환경을 만들기 위한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관리 역량을 확충했어야 했다. 그렇지만 국가와 기업은 이윤과 발전 속도를 높이기 위해 시민들의 생명과 안전 보장에 필요한 부분들을 등한시했다. 위험과 재난이 점차 증가하는 상황에서 한국 사회는 ’안전 불감증‘을 조장해온 것이다.

또한 관행화된 부패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와 기업은 성과를 위해 규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편법이나 탈법적으로 실행하는 것을 눈감아주는 방식을 지속해왔다. 대형 건축물과 같은 기간시설을 앞당겨 완공하기 위해 기업들을 재촉하는 것이 정부의 관행이었으며, 기업들은 단기간에 시행하기 위해 규정을 어기고 날림으로 처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관리들의 부패는 건설업체들이 오히려 뇌물 수수의 기회로 악용하였다. 기업 성장과 이윤창출을 위해 안전 규정을 무시하는 것은 일반적인 경영 관행으로 자리잡았다. 심각한 안전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이에 대한 책임자 처벌이 형식적이었기에 편법과 탈법은 계속되고 일반화될 수 있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는 국민에게 규율과 원칙이 힘 있는 자들에 의해서 좌지우지되는 경험을 안겨주었다. 외형적으로 볼 때 한국 사회는 빠른 경제 성장과 민주주의의 발전이 이루어진 듯 보이지만, 그것을 이룬 방식 자체가 원리원칙보다는 국가나 기업, 그리고 이들의 지원을 받는 정치인과 같은 힘 있는 자들에 의해 행해져온 것이다. 그렇기에 경제 성장과는 별도로, 국민은 높아진 삶의 질을 누리기보다 결국 ’힘 있는 자가 되어 성공해야 한다‘라는 생각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고 이는 언제나 불만족스럽고 불안한 삶에 자신을 위치시키도록 만들었다.

'문화 책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묘비  (1) 2024.10.28
그게 정말 마지막 인사일순 없다  (4) 2024.10.22
춤꾼 최승희  (2) 2024.10.04
소나기  (3) 2024.09.28
가난을 훔치다  (3) 2024.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