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튜 홀, [식물 사람 Plants as Persons](유기쁨 옮김),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24.
(297~ 303쪽)
다시 말하지만, 개별 식물, 식물 종, 그리고 식물 생태계에 행해지는 해악을 줄이는 것과 궁극적으로 인간에게 행해지는 해악을 줄이는 것 사이의 연결은 명백하다. 우리는 식물 이용을 근본적으로 검토해서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필요하지 않은지 결정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기본적 필요를 충족한 후, 식물의 필요 역시 인정되어야 한다. 생물권에 다른 주체와 목적이 존재한다는 인식은 인간 활동에 제한을 요구한다.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나 생물 다양성 유지를 위해 불가피한 경우에만 이러한 필요와 목적을 침해하도록 허용되어야 한다. 또한 궁극적으로 식물 개체, 종, 그리고 군집에 대한 낭비적이고 무분별한 이용을 중단하도록 요구해야 할 것이다.
피해를 줄이는 것이 첫 단계다. 생물 다양성 위기의 규모와 식물 서식지 감소의 초기 진행을 고려할 때, 우리는 식물이 번성하고 동종을 재생산할 공간을 만드는 방법도 찾아야 한다. 사실 이것이 21세기 인류의 우선 순위 중 하나로 인식되어야 한다. 실제로 식물을 위한 공간을 확보하려면, 지역, 지방 및 국가수준에서 보존 지역 네트워크를 확장해야 한다. 식물서식지의 더 넓은 영역을 인간이 사용할 목적으로 전환하지 못하게 보호하는 것은 야생 식물종과 군집의 존속을 보장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식물을 다른 이들의 필요를 위해서뿐 아니라 식물 자체를 위해 보존하는 것은, 주변적이고 비경제적인 식물 종에 대한 보존 노력을 북돋우는데 기여할 것이다. 인간의 필요에 맞게 변경할 수 없는 식물 서식지 영역을 늘리는 것은 생물 다양성 유지와 기후 변화 완화를 향한 실제적인 단계가 될 것이다. 그러한 보존은 또한 “관계를 맺을 자연이 존재하도록 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여기서 더 많은 자연 식물 서식지의 보존과 식물, 주로 농작물에 대한 폭력의 경감 사이에는 뚜렷한 연결이 존재한다. 농작물의 죽음을 줄이면, 인간이 경작하기 위해 필요한 농경지를 줄일 수 있다. 이것은 세계 도처의 식물 서식지에 가해지는 실제적인 압력을 감소시킬 것이다.
식물 서식지의 복원은 인간 사업을 식물 복지를 위한 일로 전환하는 방법 중 하나다. 전 세계적으로 -지역 삼림이나 이교도의 작은 숲 복원에서부터 플로리다 에버글레이즈의 복원을 위한 10억 달러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른 규모의 수천 개의 복원 계획이 존재한다. 대부분의 복원 계획은 재개발산업 부지나 이전에 경작되거나 방목된 지역과 같은 훼손된 토지에서 식물 서식지를 재창조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러한 장소에서는 복원이 생태학적 손상에 대한 인간의 유일하고 적절한 대응인 경우가 많다. 스코틀랜드 칼레도니아 숲의 ‘생명을 위한 나무’ 등과 같은 복원 프로젝트의 성공은 복원이 자연과 관계 맺는 점점 더 인기 있는 방식이 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여러 면에서 복원은 식물의 사람다움 및 인간과 식물의 친족 관계에 관한 우리의 지식을 구현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그것은 우리가 이론적인 윤리 영역에서 벗어나 의례의 방향, 곧 몸으로 경험하고 수행하는 활동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다. 그라임즈는 인류가 세 번째 밀레니엄까지 살아남을 기회를 줄 겸손과 감사의 마음을 키우기 위해 몸으로 경험하고 수행하는 활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복원의 목적은 전통적 원예, 조림, 혹은 농경과 다르다. 그 목적은 식물을 인간의 통제 아래 두고 식물의 주관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종들이 살 수 있는 서식지를 복구하는 것이다. 가장 양호한 농경활동이라 할지라도 “인간의 어떤 목표를 위해 좀 더 효과적으로 이용하려고 생태계를 단순화하는 일”이 포함된다. 그러나 “복원은 반대로 생태계를 다시 복잡하게 만들어서 생태계를 해방시키고, 다시 스스로에게 돌아가게” 한다. 조던은 이러한 복원 과정이 주로 “인간의 이익에 대한 의도적인 무관심”으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 그의 복원 정신은 자연 세계에서 인간을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와 통제라는 근시안적이고 단기적인 인간의 “이익”을 식물 서식지에 강요하는 것을 피하는 것이다.
식물 서식지 복원의 가장 긍정적인 측면 중 하나는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지배를 억제할 수 있다는 점이다. 복원은 식물, 포유류, 새, 곤충, 그리고 균류의 이익을 인간의 이익과 동등하게 (그리고 많은 프로젝트에서 흔히 더 앞에) 두는 능동적이고 실제적인 방법이다. 복원의 능동적인 성격은 그것이 자연과의 대화를 가능하게 하고, 인간과 식물의 윤리가 이론의 영역을 넘어서게 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그것은 인간이 생태학적으로 유익한 일을 추구함으로써 도구적 관계를 돌봄과 연대의 사회적 관계로 직접 대체할 수 있게 한다. 이는 이론적인 생태학적 관계를 생태학적 현실에 기반하게 하며, 인간과 자연의 전반적인 관계를 실질적으로 회복하는 방법이다.
인간이 복원 기간 동안 식물 서식지의 구성, 상황, 범위에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은 약점이 아니라 오히려 사실상 엄청난 강점이다. 우리가 식물 서식지를 복원하는 데 미치는 영향은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이 거주하는 세계에서 스스로 생태학적으로 유능한 거주자임”을 자각하도록 만드는데, 그것은 흔히 복원주의자들이 깊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그리고 인간이 스스로를 관계적 존재로 더욱 적절하게 이해하도록 회복시키는 과정이다.
인간이 - 아닌 사람의 이익을 위해 일함으로써, 자연 세계에 대한 인간의 긍적적인 생태학적 영향력을 회복할 수 있다. 복원된 서식지는 흔히 지속적인 인간의 관심을 필요로 하기에, 복원은 인간과 식물 사이의 실제적인 돌봄 관계를 창조한다. 이러한 대화에 기초한 관계는 자연 세계의 다양한 목소리를 인식하고, 우리의 생태학적 곤경의 중심에 놓인 인간-자연 이원론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작업이다.
비록 복원 과정에서 인간이 고착성 식물의 처지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겠지만, 복원 활동은 식물이 끊임없이 자율적으로, 그리고 지능적으로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식물이 어떻게 땅속에 고정되든간에, 일단 뿌리내리고 나면 식물은 성장하기 시작하고, 지각하고, 소통하며, 그들의 형태를 유연하게 바꾼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서 합리적인 결정을 내린다. 천연림 서식지와 복원된 숲 모두에서, 식물들은 소통과 정신적 활동으로 활기에 넘칠 것이다.
식물이 능동적이고, 자기주도적이며 심지어 지능적인 존재라는 이해의 씨앗은 과학으로 뿌릴 수 있지만, 그것은 상호 이익을 위한 협력 프로젝트에서 식물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실현되어야 한다. 또한 개별 식물 사람과 긴밀히 협력하는 것은 자연을 유기적이고 균질적인 전체로 보는 시각, 곧 개별적 개성에 눈 감으로써 자연의 배경화에 기여하는 시각을 뒤바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식물을 사람으로 실천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자연을 과정이나 사물의 조합으로 여기는 이원론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킨다. 그 대신 자연이 스스로의 삶을 조직하고 경험하는 주관적이고 협력적인 존재들의 공동체라는 시각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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