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다 내맡기오

이춘아 2025. 1. 18. 11:18

이문재, ‘성찰하고 표현하자, 공감하고 연대하자’, [녹색평론], 2024년 겨울호. 


삼보일배-오체투지는 ‘눈먼’ 시대와 문명 앞에 한 줄기 ‘빛’을 선사한 하나의 사건입니다. 산업문명의 폐해를 두루 살피고 더 나은 내일로 나아가는 길을 꿈꾸게 한 전환점입니다. 우리 안에 잠들어 있는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일깨운 ‘죽비 소리’입니다. 천지자연을 인간의 물질적 풍요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켜온 법과 제도의 ‘민낯’을 드러낸 비폭력-불복종 직접행동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새로운 길을 열어나갈 수 있을지 함께 모색하게 만든 촉진제입니다. 한마디로, 모두를 위한 참회기도이자 모두의 미래를 위한 순례입니다. 

삼보일배- 우리 삶을 근본적으로 돌아보다

2003년 삼보일배는 새만금 해창갯벌에서 첫걸음을 뗐습니다. 그해 3월 28일 4대 종단, 불교 천주교 원불교 기독교 성직자인 수경스님, 문규현 신부님, 김경일 교무님, 이희운 목사님이 ’온 세상의 생명-평화를 염원하며‘ 순례를 시작했습니다. 네 성직자와 (구간별로 참가한) 시민들이 서울 광화문까지 65일 동안 322km를 세 걸음 걷고 한 번 절하며 이동했습니다. 인간의 과도한 욕망에 희생되는 새만금 갯벌을 살리고 무고한 생명이 희생당하는 이라크전쟁에 반대하는 삼보일배는 기도이자 순례였습니다. 비폭력 저항이자 ’묵언‘의 대안 제시였습니다. 

삼보일배의 의미는 실로 컸습니다. 당장에는 새만금 간척사업과 이라크전쟁을 중단하라는 요구였지만 그 바탕에는 산업문명의 폭력성에 대한 성찰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개발만능주의, 성장제일주의는 자연을 착취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내면까지 황폐화합니다. 생산력 증대를 최우선시하는 자본주의경제 논리 속에서, 그리고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체제를 좌시하는 현실 정치, 다시 말해 권력쟁탈에 혈안이 된 ’가짜 민주주의‘ 아래서 온전한 삶을 영위하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삼보일배는 ’힘의 논리‘, ’돈의 논리‘가 드리우는 거대한 그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고 경고한 것입니다. 우리가 깨어나 뜻을 모은다면 지금과 다른 삶, 어제오늘과 다른 세상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희망을 제시한 것입니다. 

근본적 전환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도처에 새만금이 생겨날 것이란 수경 스님의 지적은 그대로 들어맞았습니다. 새만금 사업은 결국 멈추지 않았습니다. 2024년 현재 매립지는 폐허처럼 버려져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세계잼버리대회를 졸속으로 준비했다가 세계적으로 망신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정부는 지금 그곳에 대규모 신공항을 짓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4대강 개발, 경인 운하, 가덕도 신공항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새만금 사업‘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개발과 성장의 망령이 여전합니다. 

오체투지 - 스스로를 낮추고 대자연을 높이다

2008년 오체투지는 2003년 새만금에서 서울까지 이어진 삼보일배의 심화이자 확대입니다. 그사이 사태가 개선되기는 커녕 악화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들 기억하시겠지만, 2008년 당시 정국은 암담했습니다. 광우병 사태로 인해 시민들이 건강권을 요구하며 촛불을 들었지만 이명박정권은 국민의 당연한 권리를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사회적 약자의 생존권이 바닥을 치는 가운데 빈익빈 부익부를 가속화하는 민영화가 일방적으로 추진되었고, 한반도 대운하 사업이 반대에 부딪히자 4대강 개발로 둔갑시켜 강행하는가 하면, 서울 용산에서는 철거민이 공권력에 의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남북 관계는 다시 냉전 상태로 돌입했고 설상가상으로 미국발 금융위기가 닥쳤습니다. 

다시 멈춰 서서 삶과 세상의 안팎을 살펴야 하는 위기 국면이었습니다. 2008년 9~11월, 그리고 이듬해 3~6월 문규현 신부님과 수경 스님이 또한번 손을 잡았습니다. 이번에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대표를 맡았던 전종훈 신부님이 가세했습니다. 지리산 노고단에서 출발해 계룡산을 거쳐 임진각 망배단(원래 계획은 북녘 묘향산까지)에 이르는 한반도 남녘 종단 오체투지가 진행된 것입니다.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기치로 내걸고 124일 동안 날마다 1천 배를 올리며 총 355km를 완주했습니다. 

순례의 맨 앞에 선 성직자뿐 아니라 자발적으로 오체투지에 참여한 많은 시민이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대자연을 높였습니다. 천지자연에 대해 저지른 죄를 뉘우치고 거듭나겠다고 각오를 다졌습니다. 

2008년 9월 4일 지리산 노고단에서 출발한 1차 오체투지는 53일째인 10월 26일 계룡산 신원사에서 일단락됐습니다. 1km를 가는 데 두 시간 넘게 걸리는, 세상에서 가장 느린 길. 하루에 4km 이상을 갈 수 없는 극한의 고행. 삼보일배와는 비교가 안되는 고통이었습니다. 

문규현 신부는 “오로지 ‘한 번의 절’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얼마를 갔는지, 얼마를 더 가야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거 생각하면 기막히고 아득합니다. 겁나서 못 갑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아스팔트 위에서 희열을 느끼곤 했습니다. “내가 흙이요 땅이고, 벌레요 풀이고, 또 그것들이 내가 돼버리는 순간, 지구 중심 저 어딘가로 쑥 흡수되는 것 같기도 한 순간, 자연 그 모든 것 앞에 ‘다 내맡기오’하고 항복하는 순간에 때로 희열을 느끼게도 됩니다.”

삼보일배 때와 다름없이 이번에도 학생, 교사, 종교인, 시민운동가, 지역주민, 학자, 행인 등 많은 시민이 순례 행렬에 동참하거나 응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순례단 지원팀에는 한국에서 고국 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해 활동하는 마웅저 씨가 참여해 교통통제를 맡기도 했습니다. 자발적으로 참여한 시민들은 성직자와 달리 세 걸음 걷고 반 배를 올리면서 각자 자기를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대열에 참여한 한 중학생은 “학교에서는 생각해보지 못한 질문을 하게 됐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왜 걷는가’라고 묻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오체투지는 124일째 되던 2009년 6월 6일, 임진각 망배단에서 천여 명의 순례단과 함께 마무리되었스비낟. 북한에서는 초청장을 보내왔지만 통일부는 방북을 허가하지 않았습니다. 순례단의 <일일소식>은 휴전선 앞에서 발길을 돌리며 다음과 같은 소감을 전합니다.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가는 순례길을 만든 주인공은 하루 일상을 살아가며 우리 사회의 희망을 찾고자 하는 수많은 국민이었습니다.” 이어 “공존과 상생의 이치를 포기한 세상에서도 순간순간 경이로운 모습을 보여준 시민들과 자연은 그 자체로 순례단의 스승”이었다며 온몸을 땅에 던지며 지나온 천 리 길의 의미를 되새겼습니다. 

성직자들이 이끈 삼보일배 - 오체투지는 이후 시민사회로 번져나갔습니다. 가장 느린 속도로, 가장 낮은 자세로, 침묵(묵언)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삼보일배와 오체투지는 더이상 불가 고유의 수행법이 아니었습니다. 갖가지 불합리와 모순에 항거하는 시미들의 ’새로운 표현방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사모일배 이후, 시민사회의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비폭력 불복종을 다시 보게 된 것입니다. 삼보일배에 내포되어 있는 비폭력 불복종 정신은 정의롭지 못한 법과 제도, 정책, 관행을 바로잡고 더 나은 세상을 추구하는 자유인, 즉 주권자 시민의 창의적 직접행동입니다. 

결국 자본과 권력의 강고한 장벽에 균열을 내는 것은 시민의 각성과 연대 말고는 없어 보입니다.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열어나가는 가장 빠른 지금길입니다. 그러기위해 끊임없이 성찰하고 표현해야 합니다. 공감하고 연대해야 합니다. 이것이 삼보일배와 오체투지가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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