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칼럼

내 마음의 공간

이춘아 2019. 8. 9. 22:26

<나, 이춘아의 문화적 기억 4>

내 마음의 공간

2007.4.7 (2001년 6월 27일에 쓴 글을 다시 읽다)



<내 마음의 공간>이라는 기획특집을 중앙일보가 매주 싣고 있습니다. 유명인사들의 ‘내 마음의 공간’입니다. 제목도 좋고 글들도 참 좋아 빼놓지 않고 읽고 있습니다. 어느 날 내 마음의 공간도 있을텐데 ‘내 마음의 공간’은 어떤 곳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을 더듬어보니 작년에 산 긴 의자가 그 공간으로 떠오릅니다. 세 명 정도 앉을 수 있는 긴 의자입니다. 일산에 있을 때 사서 대전으로 이사와 지금도 여전히 그 의자에 앉아 지내고 있지만 내 마음의 공간은 일산 집에 있을 때의 그 공간입니다.


같은 공간에 같은 사람이 살고 있지만 그 공간에서 나누었던 기억들이 더 소중하기에 그 때 그 공간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러고 보면 ‘내 마음의 공간’은 바로 그 때 그 장소 그 곳에서의 추억이 동시에 어울려야 분위기를 살릴 수 있습니다.


작년 9월 정도인 것으로 기억합니다. 서점에 들려 기웃거리다가 책 한권을 샀습니다. 틱 낱한의 [이른 아침 나를 기억하라]입니다. 서점에 가면 괜한 욕심으로 이 책 저책 샀다가 집에 가면 어디다 두었는지 모를 정도가 돼버리는 책들도 많아 가능하면 책을 사지 말자(?)라고 마음먹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책을 집어 든 순간 이 책은 우리 집 아이와 함께 읽는 책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과감하게 샀습니다.


70여 꼭지로 이루어진 짧은 글들입니다. 책 읽어 주는 남자라고 치켜 올리며 매일 아침 학교 가기 전 한 꼭지를 읽게 하고 저는 눈감고 들었습니다. 책읽기를 싫어하는 아이는 엄마가 책 읽히려는 무슨 작전을 쓰나 하는 의심으로 책을 읽었습니다.  거의 매일 반 강제적이지만 우리는 그 긴 의자에 앉아 함께 읽고 듣고 하였습니다. 처음부터 읽어가다 꽤가 나는지 자기가 마음에 드는 꼭지를 읽겠다고 하였는데 짧은 꼭지 중심으로 읽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괜찮다고 하면서 읽고 듣고 하였습니다. 책 읽는데 십분도 걸리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한 마음이 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느끼곤 하였습니다.


어떤 날은 저도 바빠 책 읽어 달라는 주문을 잊어 버렸는데 아이가 엄마 오늘은 안 읽어드려도 돼요, 라고 기억을 환기시켜주어 책가방을 다시 내려놓고 읽어주고 가기도 하였습니다. 아이는 책읽어주기가 엄마를 위한 서비스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어느 사이 그 시간을 좋아하고 있었습니다. 거의 석 달을 함께 그 긴 의자에 앉아 읽고 듣고 하였습니다.


미국에 잠시 있었을 때입니다. 어느 날 아이가 구석으로 나를 끌고 가더니 미국아이들은 엄마 아빠와 헤어질 때 뽀뽀를 하던데 자기도 엄마와 뽀뽀를 해야겠다는 것입니다. 그 때 이후로 학교 갈 때마다 아이와 뽀뽀를 하였습니다. 한번은 차로 데려다 주는 날이었는데 뽀뽀하자 했더니 밖에서 창피하니까 차 안에서 뽀뽀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아이라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때 이후로 우리는 반드시 학교 가기 전 뽀뽀를 했습니다. 심지어 돌돌이 뽀뽀라는 것을 개발하여 얼굴을 돌돌 돌면서 뽀뽀해 주기도 했습니다. 너의 얼굴에 수염이 나면 이런 뽀뽀도 끝이다, 라고 말하면서 이러한 시간도 얼마 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드니 그러한 시간들이 소중하였습니다.


[이른 아침 나를 기억하라]를 함께 읽고 듣고 하던 때입니다. 학교 다녀오겠다는 인사와 함께 아이는 의례적인 뽀뽀가 끝나더니 엄마와 포옹도 하겠다고 합니다. 그날 읽은 제목이 ‘안아주기 명상’이었습니다. 다급하게 포옹을 끝내려 했더니 책에 깊은 포옹을 하라고 했다면서 좀더 길게 포옹을 했습니다. 그 다음 날부터 우리는 뽀뽀와 더불어 깊은 포옹으로 서로의 마음을 전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지금 기억을 떠올려도 그 당시 함께 좋은 글을 읽고 듣는 시간, 그리고 깊은 포옹을 하였던 그 시간과 공간은 마음을 푸근하게 합니다. 그 당시 우리들의 마음의 공간이 주었던 시간은 서로를 순화시켜주어 우리 사이를 풍성하게 해 주었습니다. 내 강팍하던 시절 아이는 나를 괴롭히는 존재였습니다. 내 시간을 빼앗아가는 존재라고 여겼기에 아이가 사랑스러운지 몰랐었습니다. 가까이 하기에는 먼 당신으로 서로 조심스럽게 경계하는 관계였습니다.


며칠 전 동네 도서관에 갔다가 틱 낱한의 [삶에서 깨어나기]라는 책도 있기에 빌려왔습니다. 첫 번 글에 이런 내용이 있어 소개합니다. 나도 그랬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보다 많은 시간을 가질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을 발견했습니다. 과거에는 시간이 마치 여러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처럼 나만의 시간을 찾곤 했습니다. 일부는 조이를 위해서, 다른 일부는 수를 위해서, 또 다른 일부는 아나를 위해서, 그리고 일부는 집안 일을 위한 시간으로 나누었습니다. 그 나머지 남는 시간을 나만의 시간으로 생각했습니다. 그 시간에 나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연구를 하기도 하고 산책도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저는 더 이상 시간을 쪼개지 않습니다. 조이와 수와 함께 하는 시간도 내 시간으로 생각합니다. 조이의 숙제를 도와주면서 저는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을 나를 위한 시간으로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저는 그 애와 함께 있어주며, 그동안 우리가 하고 있는 일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애쓰면서 그 애와 함께 공부를 합니다. 그 애를 위한 시간은 이제 내 시간이기도 합니다. 수와도 마찬가집니다. 놀라운 것은 이제 나는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무궁무진하게 가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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