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춘아의 문화적 기억 3>
책
2007.4.4
책 종류 가운데 ‘전집’은 좋은 이미지와 나쁜 이미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나에게는 오히려 나쁜 이미지가 앞서있는데 그 이유는 우리나라가 한창 개발도상국의 와중에 있을 때 갑자기 부자가 된 사람들이 전집류를 사들여 거실의 장식용 도서로 이용되었었기 때문이다. 흘러간 영화를 보면 부잣집 거실벽면은 유리케이스 서가 속에 번쩍이는 전집류가 몇 세트씩 있다. 요즘은 부자들이라고 하여 전집류를 사들이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장식용 도구이나마 책을 사들였다는 것이 귀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좋은 이미지는 그 무엇의 총체성, 다 갖고 있다는 느낌. 그래서 내가 정말 부자처럼 느껴지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 집에서 자랑하고픈 전집중 하나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다. 색인까지 하여 총27권으로 이루어져있다. 문화유산에 관심을 갖고부터 이 책은 나를 더욱 부자로 느껴지게 해준다. 어느 날 날 잡고 하루 종일 대백과사전을 읽어보리라 했지만 아직 시도해보지 못했다.
나의 책읽기의 근간에는 전집류의 도움을 받았다. 벼락부자는 분명 아니었던 아버지는 집에 찾아와 조르는 전집판매상의 유혹에 쉽게 넘어갔던 것 같다. 그래서 동화서적, 을유문화사, 정음사 등에서 펴낸 사상전집, 문학전집 등의 책이 있었는데, 고등학교 들어가면서부터 그 책들이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였고 하나하나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저녁 늦게까지 책 읽다 학교가기 싫어진 어느 날 아침 나는 아버지에게 학교 가는 것보다 이 책 읽는 것이 더 낫겠다고 했다. 아버지는 그럼 그래라, 하셨다. 나는 지금도 이 대목에서 궁금하다. 우리 아버지가 무슨 마음으로 아이를 그까짓 학교 가는 것보다 집에서 책 읽는 것이 낫다는데 동의하셨을까. 내 아이가 그러하겠다고 했으면 나도 그럴 수 있었을까.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학교에 보냈을 것이다.
아이가 여럿 있었지만 당신이 사놓은 책을 읽어준 아이는 아마도 나밖에 없었던 것 같은데 고마워서 그래서일까, 별 생각도 다 해본다. 그 이후 내가 용돈을 모아 샀던 책들은 주로 문고판형이었다. 문고판형에 대한 기억은 친구네 집에 놀러갔는데, 친구 엄마가 누워서 손바닥만한 문고판 소설을 읽고 있었다. 우리 집 책은 전집류라 앉아서 읽든지 엎드려서 읽는데 문고판은 누워서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참 인상적이었다.
책은 늘 내 주변에 있었다. 자취집을 여러 곳 전전했었는데, 주인집 아저씨가 헌책방 주인일 때도 있었다. 초등학교를 간신히 졸업하고 서울로 와서 책방 점원으로 일하다 보따리 책장사도 해보고 결국 헌책방 주인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 집 형제 3명이 모두 헌책방을 운영한다고 하셨다. 가끔 저녁에 그 아저씨 책방에 들려 책 구경하고 책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결혼하고 난 이후 남편도 그 책방에 들려 책을 구입하곤 했다. [민족백과대사전]도 그 집에서 샀던 것 같다.
책사는 것이 거의 유일한 취미이기도 한 남편 덕에 나는 온갖 종류의 책을 구경하기도 하고 읽기도 한다. 소설책은 잘 사는 편이 아니어서 도서관에서 빌려보거나 가끔 내가 사기도 한다.
1997년 한국문화복지협의회에 들어갔더니, 이중한 회장님 또한 책에 일가견을 이루신 분이었다. 아마 우리나라 최초로 출판평론가 라는 직명을 스스로 짓기도 하셨다. 책은 읽어야하는 것, 읽으면 좋은 것, 그냥 좋으니까 등등으로 치장하고 있었는데, 이중한 회장님은 ‘왜 책인가’를 설명해줌으로써 나에게 책의 정당성을 세워주셨다. 책이 있으면 좋은 것 중의 하나가 책이 벽을 막아주어 보온 보냉이 된다는 것 외에 집안의 습기를 자동으로 먹어주고 내뿜어주기 때문에 좋다는 탁월한 개인적 판단도 늘 기억에 남아있다. 그래서 가끔 우리 집이 책들로 인해 지저분해 보일 때, 저 놈의 책을 어떻게 처치하지 하다가도 회장님의 습기제거용이라는 말이 기억나 참게 된다.
책에 대한 기억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내 기억에 각인되어 반복하여 떠오르게 되는 것은 사람이다. 아버지는 당신이 사신 사상전집 가운데 노자와 장자, 공자 등의 책만 읽으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후 눈에 띈 것도 노자와 장자 책 여백사이로 메모한 아버지의 글씨체였다. 그리고 한가롭게 누워서 문고소설을 읽던 친구 엄마의 모습, 치열하게 책과 살아온 주인집 헌책방 아저씨, 이중한 회장님. 그 기억들이 나를 계속하여 책을 읽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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