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 ㆍ손님 ㆍ힐링
2019.11.14-15
4명의 손님을 맞이했다. 한명은 오랜 지인, 세 명은 지인이 모시고 온 분들.
애초 나의 계획은 시외버스터미널로 마중을 가서 모시고 점심을 먹고 택시로 들어올 계획이었으나, 집 치우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 포기, 네분이 알아서 점심을 드시고 오는 것으로. 그 분들은 국수집을 찾아 국수도 먹고 인삼막걸리와 튀김까지 사가지고 왔다. 역시! 나의 노파심. 그래 여지를 드려야 찾아가는 재미도 있는데 내가 그 재미를 빼앗을뻔 했다.
1박2일 동안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끊임없이 먹고 마시고 구경하고 이야기했다.
힐링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조용히 멍 때리는 것도 힐링의 시간이겠지만 함께 떠들고 먹고 마시고 좋은 곳을 함께 보며 즐긴다는 것. 참 좋은 시간이었다.
‘알아차림’이라는 단어를 요즘 사용하고부터는 현재에 더욱 충실하려 한다. 어제 왔더라면 좋았을걸, 한주 전에 왔더라면 더 좋았을걸, 이라는 건 이제 없다. 그 시간 그 순간을 소중하게 느끼려한다. 그 시간이 되어야 만날 수 있는 것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좀 더 전에 만났더라면, 은 이제 없는 것이다.
하여 우리는 2019년 11월의 시간을 즐겼다.
배추를 다섯포기 뽑았다. 김치를 해서 맛보여주고 싶었다. 배추를 다듬으니 속은 얼마없고 절반 이상이 시래기국용이다. 배추 속은 절이고 나머지는 씻어서 데쳐 나누어 싸줄 요량으로 배추 속은 소금에 절였다. 절이는 소금의 분량을 여전히 잘 모르는 나는 소금을 넣고 물을 좀 부었다. 결국 시간도 없고 그날 저녁식사에 내놓치 못했다. 오랫만에 손님맞이 청소는 시간이 많이 결렸다. 마당은 낙엽으로 덮여있고. 그래도 시간되는데까지 치우고 나니 손님들이 들이닥쳤다. 반갑게 인사. 처음본다고 하는데 낯익은 모습의 친근감을 주는 사람들.
가져온 인삼튀김과 막걸리부터 풀어 먹었다. 나는 치우느라 점심 못먹어 그렇다치더라도 물국수 한그릇씩 하고 온분들도 하하호호하며 맛있게 먹었다. 먹걸리 한병을 비울 기세.
자리를 털고 앞산 천년 은행나무를 알현가는 시간. 평일이라 한적한 전나무길을 걸으면서 벌써 환호성. 천년 은행나무에 압도.
영천암 가는 길. 단풍색 낙엽은 만추라는 단어가 딱 어울리는 풍경. 어제의 비로 낙엽을 엄청 떨구었지만 그 낙엽과 함께 화사한 단풍은 내장산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우리 일행은 속까지 말게질 들뜬 어린아이들의 마음이 되어 가는 길을 즐겼다. 아, 좋은 시간. 어떤 장면이든 좋아하는 정도가 다르지만 진정한 힐링의 시간은 함께 속없이 좋아하는 시간들이다. 속없이 속을 비우고, 속을 내어놓고 좋아할 수 있는 시간.
산을 내려오면서 참새방아간에 들렸다. 막걸리 한잔하자고. 막걸리와 컵라면 먹자고. 그랬는데 안주로 파전이 된다고 한다. 맛있는 파전에 탄복하면서 막걸리 한병도 비워졌다. 저녁시간을 위해 그 정도에 멈추고, 우리는 또다시 하하 거리며 집으로 올라갔다.
저녁식사로 준비한 것은 냄비밥, 미역국, 묵은지김치볶음 고추 도라지 밑반찬, 그리고 비장의 누룽지로 입가심.
보름 지난지 사흘. 우리에게는 커다란 달이 있었다. 밤마실. 동네를 산책했다. 달이 좋아도 밤마실 갈 엄두를 못내었지만 함께 즐길 준비가 된 사람들과 기분좋게 밤 마실했다.달은 밝았다. 별도 많았다.
우리의 마음은 가벼웠다. 다시 상을 정비하여 포도주 코스. 치즈와 고추양념으로 훌룽한 포도주 안주. 드디어 긴 이야기. 돌아가면서 했다. 참으로 피곤한 시간을 이겨내고 탈출하여 온 사람들. 바람과 낙엽과 단풍의 만추, 만월로 그 시간들이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시간이었기를.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하니 나도 정말 좋았다.
잠자는 시간. 나는 조용히 배추겉잎을 데치고 김치 버무릴 양념을 만들고 잠들었다. 늦잠을 잤다. 아침은 고구마를 먹기로 했으나 종합적인 상차림이 되었다. 찢어서 버무린 김치가중앙에 놓이고, 고구마, 어제 먹고 남은 빵. 김치가 있으니 어제 남은 밥과 누룽지. 그리고 커피도 빠질수 없다. 또다시 하하거리며 먹고, 동네 산책에 나섰다. 이웃마을 한바퀴이다.
오래된 마을을 보는 즐거움. 흙담의 한옥들 골목길 논밭 사잇길. 즐거운 유랑을 하고 손님들은 떠날 채비를 하고 나는 시래기 데친 것과 버무린 김치를 가져가시라한다. 나도 받아와 보지만 이런 선물이 좋다. 맛있게 드시길. 사실 김치는 합작품이다. 마늘과 생강을 절구에 다져주었고, 잔파를 다듬어주었기에 김치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참새방앗간 아줌마가 잔파로 파전을 해주었는데 나는 포기한 잔파였는데 그 잔파를 다듬어주어 김치에 넣을 수 있었다.
한사람씩 포옹을 하고 떠났다.
뒷정리하고 나도 마을버스를 타고 떠났다. 1박2일의 만추를 함께 즐길 수 있었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더 좋았다.
이어 나는 울산에서 2박3일의 문화활동가대회에 가기 위해 기차를 탔다.
1박2일의 만추가 아쉬워 울산 약속을 취소할까, 하는 갈등도 있었지만 오래전 정해 놓았던 시간을 지키기 위해 기차를 탔다.
또다른 만남의 시간을 위하여!
'단상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느린세상의 김장 워크숍 (0) | 2019.12.01 |
---|---|
달빛이 오래 머무는 곳, 노다월 (0) | 2019.11.30 |
혼돈의 정체 (0) | 2019.08.13 |
또박또박 (0) | 2019.08.12 |
길은 사이에 있다 (0) | 2019.08.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