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칼럼

혼돈의 정체

이춘아 2019. 8. 13. 07:52

<나, 이춘아의 문화적 기억 2>

2007.3.20

혼돈의 정체


    사물로서 권총, 인간의 손에 쥐어진 권총은 서로 다른 가능성과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인간이 권총을 손에 쥐는 순간 인간은 권총의 성격을 변화시키게 되고, 권총은 인간 마음가짐을 변화시키게 된다. - 하르트무트 뵈메, [물신숭배와 문화](2006)


신문 칼럼을 읽다가 인상적이어서 인용해보았다. 뵈메는 대표적인 형태로 권총을 사례로 들어 물신숭배 과정을 단박에 이해시켜주고 있다. 문화예술영역에서 간혹 혼돈을 느끼게 되는 부분이 무엇인지 몰랐는데 바로 이 단어가 정리해주고 있다.


영화에서나 보던 권총은 살인무기였다. 스위스 박물관에서 보았던 총은 예술품이었다. 상대방을 제압하기 위해 제작되었던 총이 인간의 손에 의해 사용되는 과정에서 품격을 달리하면서 정교하게 다듬어졌으나 원래 목적은 상대방 제압하기와 죽이기였다. 그러나 박물관에 전시된 총은 분명 감탄을 자아내는 예술작품이었다.


인간은 원래의 목적형 기능성을 예술작품으로 만들기도 한다. 그것을 감상용으로 소유하기도 하지만 ‘돈’으로 사유화하고자 하는 순간,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물신숭배로 이어지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음악, 미술을 감상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음악회에 가고, 미술관에 가는 것은 돈과 시간이 든다. 더구나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이 일어나는 순간, 스스로 경계하게 된다. 막연한 경계심이 왜 일어나는지 몰랐다. 뵈메의 글을 읽는 순간, 내가 물신숭배를 경계했던 것임을 알게 되었다. 동양적인 표현으로는 ‘물욕’을 경계하고자 하였던 것이 아닐까 싶다.


문화영역에서 일한답시고 있지만 내 환경은 상당히 비문화적이다. 꾸미기에는 시간과 돈이 들기 때문이라고 막연하게나마 여기고 있었는데, 바로 물욕을 경계함이었다. 그러나 문화운동은 대중을 예술로 가까이하게 하여 그 감흥을 즐기고 여유를 갖도록 하고 때로는 창조적 영감을 촉발하게 한다.


예술의전당 오전시간 주부들을 위한 음악회가 성황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나도 음악을 좋아하기에 잘되는 음악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 그러나 나라면 그런 음악회에 가게 되지 않을 것이다. 처음에는 한두번 가게 되겠지만 나중에는 지겨움, 구토증을 느끼게 되어 결국 발길을 끊게 될 것이다. 좋은 음악향유의 목적이 사라지고 분위기는 점점 경박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차려입은 누구누구 엄마들의 재는 폼을 싫어하게 될 것이기 분명하다. 음악이 물신화되는 과정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좋은 분위기, 좋은 음식을 먹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 역시 마찬가지 과정을 겪게 될 것이다. 내가 뭐하려는지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신화를 경계함이다.


그렇다면 나는 뭐하자는 것일까.

예술의 공공성을 문화운동가는 견지해야할 것이다. 문화활동가는 그 경계선에 대한 소견을 갖고 있어야한다. 나 스스로 휘둘리지 말아야한다.


그 본질은 생명, 하느님 보시기에 좋았던 생명창조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한 인간 스스로 노력이다. DNA 친족의 울음을 들을 줄 알아야한다고. 지속가능한 삶, 문화의 본질을 찾는 작업. 문화운동 왜 하는가의 목적을 다시 염두에 두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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