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칼럼

깊이와 재미

이춘아 2020. 2. 12. 01:59

깊이와 재미

2008.2.22

 

우리 집 아이가 어릴 때 물었다. “엄마, 내가 뭐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내가 뭐가 됐으면 좋을지 모르겠는데, 네가 뭐가 됐으면 좋을지 어떻게 알겠니?” 라고 답하여 아이를 섭섭하게 했었다. 내 말이 맞았다. 그 당시 내가 오늘날처럼 소위 문화 판에서 일하고 있을지 그 누가 짐작이라도 하고 있었을까.

재미있을 것 같아 조금씩 발을 들여놓았다가 ‘문화’자가 들어가는 곳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문화’는 나를 점점 더 옭아 메고 있다. 깊이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 깊이가 화두가 되어 살아가야할 근간을 만들어주고 있다. 재미도 있고 의미를 더할 수 있는 깊이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요즘 신문마다 책 소개 지면이 넓어지고 화려해지고 있다.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단계가 있는 것 같다. 우선은 정보이다. 어떤 책들이 발간되고 있는지 제목을 본다. 그 다음은 내용이다. 여기서 갈래가 나눠진다. 나의 관심과 맞는 내용인지와 책 소개자의 진정성, 소위 깊이이다. 재미와 깊이가 합치될 때 책을 사서 읽어보아야겠다는 정당성이 부여되는 소비행태가 이뤄진다.

유성온천은 동학사와 가까워서인지 목욕탕에서 스님을 가끔 보게 된다. 안경 쓰지 않은 나의 눈으로도 스님은 금방 구분이 간다. 파르라니 깍은 머리에서가 아니라 몸짓에서 느껴지는 기운 때문이다. 몸짓에도 깊이가 있음을 처음으로 느끼게 되었다. 기품(氣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불교미술에서 부처의 몸은 가늘게 그리되 광채를 발하는 화염을 그리고 있는지 깨닫게 된 것도 그 즈음이었다.

한동안 박물관, 미술관을 찾아다녔다. 처음에는 호기심과 재미로 시작하였다가 미(美)의 정형은 어떻게 표현되고 있으며, 나라마다 어떻게 다르게 나타나고 있는지 보게 되었고, 다양한 양식들이 지역마다 다른 문화의 차이였음을 알게 되었다. 시대마다 많은 작품들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것들은 사라지고 예술적 가치로 인정받은 것만 남게 되는데 그것은 인류가 추구하는 깊이에 있었음을 최근에야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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