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8월22일 비온후 흐림
친구가 선물로 준 엽서를 보고 있던 시간은 모처럼 음악을 듣고 있던 때였습니다.시디를 뒤적거리다가 나에게 이런 시디도 있었네 하면서 올려놓았던 것은 하이페츠의 바이올린 곡입니다.친구가 영국갔다가 사온 엽서는 윌리암 세익스피어의 부인인 앤 해서웨이가 결혼전 살았던 집을 소재로한 유화와 수채화 입니다.그 색감을 보면서 아!이런 색,영국적인 색이라 생각했습니다.
마침 흘러나오는 바이올린 곡과 참으로 어울린다며 서구적인 색과 음이라 서로 맞는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전같으면 이런 느낌에 대해 어쩌다 그런 생각이 든 것이겠지 라고 했지만 이제는 아마도 이런 느낌에 그 무엇이 담겨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영국은 물론 영연방국들을 다녀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영국적인 색이라고 판단해 버립니다.영화로나 그림책 등으로 보고 들은 것이 많은 탓입니다.
영국을 비롯하여 서구적인 것에 그렇게 익숙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한달전 처음갔던 중국은 낯선 땅이었습니다. 4박5일간 서안,낙양,정주의 고대유적지와 박물관을 답사하고 왔습니다.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부지런히 돌아다니면서 보고 사진찍고 다니다 왔는데 막상 글을 쓰기 위한 어떤 소재가 잡히는 것이 없이 산만하기만 합니다.왜 그런가 하고 생각해 보았으나 모르겠습니다.
요즘 한.중 수교10주년 기념으로 공영방송에서 준비한 특집들이 방영되고 있습니다.중국을 다녀온 뒤라 관심이 많아서인지 시간에 대어 보고 있습니다.텔레비전에 비쳐지고 있는 중국의 풍경을 보면서 아!저 색과 모습이라 생각합니다.단4박5일간의 일정의 영향이 이렇듯 크구나 하게 됩니다.
속리산 뒤편 화양동 계곡에 가파른 기단만 남아있는‘만동묘려’터를 처음 보았을 때 가졌던 의문은 왜 우암 송시열 선생이 유언으로 이곳에 만동묘려를 지어 기념하라고 하였던 것인지 었습니다.임진왜란으로 초토화된 우리나라를 도와준 나라가 중국의 명나라였습니다.그리고 명나라를 나중에 삼켜버리게 된 청나라에 의해 병자호란을 겪게 되면서 이제는 역사속으로 사라져간 명나라의 중화정신이 우리나라로 옮겨져 와야한다는 것이 송시열 선생의 이상(理想)이었고 그 기념비적 사당이 만동묘려였다고 들었습니다.
그 명나라를 생각하며 고대 도읍지였던 서안(西安)의 명대 성곽과 성벽을 보았습니다.수와 당대의 장안성의 성벽을 기반으로1378년경에 축조한 것으로 유일하게 남아있는 전통 중국식 성벽입니다.성벽의 둘레가12km로 성안은 바둑판같은 계획도시였다고 합니다. ‘장안에서 내노라하는 인물’이 입안에 맴돌고 있는데 바로 그 장안성이었습니다.우리나라가 오랜기간 중국의 영향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건축물 등에서는 이질감을 느끼는데 비해 지역 이름에서 그토록 우리의 일상사와 밀접한 영향권에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낙양’만 하더라도‘낙양성 십리허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영웅호걸이 왠말이냐,절세 가인이 그 누구냐 우리네 인생 한번 가면....’으로 이어지는 노랫가락 또한 그 낙양성이었습니다.
차로 이동하여 섬서성 박물관이란 곳에 갔습니다.일명 비림(碑林)박물관이라고 불리는 곳입니다.역대 명필들의 글이 새겨진 비석1,095개를 모아놓아 비(碑)가 나무들처럼 많다고 하여 비림이라 이름 지어 현판을 붙여놓았습니다.국내외의 관광객들이 깃발든 가이드를 따라다니며 설명을 듣고 있습니다.그곳에서 말로만 듣던 왕희지를 비롯하여 각종의 명필가들의필체를 볼 수 있었습니다만 더운 날씨 많은 사람들 틈사이로 여유있게 보지는 못했습니다.
중국 고대의 역사유물을 더듬어보랴 지금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대 산업화의 물결에 휩쓸리고 있는 또 하나의 중국의 현장을 확인해보느라 혼재된 느낌과 만감이 교차되는 혼돈 속에서 마땅한 주제를 잡는 것이 힘들었던 것이라 여겨집니다.그 혼재된 느낌에서 한가닥 한가닥을 풀어내어보도록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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