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남도 길

이춘아 2020. 3. 4. 23:02

전라남도 진도가는 길

 

2004.4.3

 

 

오랜만에 가보는 남도길. 그것도 봄에. 흐드러진 햇볕이 새삼스러운데, 적도와 더 가까우니 당연하지 않은가 한다. 정말 그렇다.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차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에서 달라지는 것은 붉은 땅이다. 황토빛보다는 붉은 색의 땅, 그리고 둥그런 무덤들. 무덤들이 정겨운 느낌이 드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무덤들이 ‘나는 무덤입니다’ 하지 않고 ‘나도 무덤입니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밭사이사이에, 집 바로 옆에 있는 동그만 무덤들.

 

 

대전에서 호남선으로 가다가 정읍에서 길을 바꾸어 서해안고속도로 끝 목포까지 가서 그곳에서 이어 내려가다보면 해남으로 갈라지는 길이 나온다. 전에는 진도로 갈려면 반드시 해남을 지나갔어야했던 것 같다. 얼마전 읽었던 해남의 시인 김남주 시가 생각났고 집에와 다시 찾아서 써본다.

 

 

나물캐는 처녀가 있기에 봄도 있다

ㅡ김남주

 

마을 앞에 개나리꽃 피고

뒷동산에 뻐꾹새 우네

허나 무엇하랴 꽃 피고 새만 울면

산에 들에 나물 캐는 처녀가 없다면

 

시냇가에 아지랑이 피고

보리밭에 종달새 우네

허나 무엇하랴 산에 들에

쟁기질에 낫질 하는 총각이 없다면

 

노동이 있기에

자연에 가하는 인간의 노동이 있기에

꽃 피는 새가 우는 봄도 있다네

산에 들에 나물 캐는 처녀가 있기에

산에 들에 쟁기질 하는 총각이 있기에

산도 있고 들도 있고

꽃 피고 새가 우는 봄도 있다네

 

 

남도의 붉은 빛 황토는 정갈하다. 부지런한 손길이 있기 때문이다. 김남주 시인이 보았던 때만 해도 처녀 총각의 부지런한 손길이 있었던 모양이지만 그때의 처녀 총각이 이제는 늙어있음을 알게 된다. 그 이후 더 이상 처녀 총각은 나타나지 않을 모양이다.

 

 

말이 답사이지 남도가는 길따라 봄 그 자체를 느끼고 싶을 뿐이다. 흐드러진 봄볕을 보기 위해 가고 오는 시간 8시간을 버스 속에 있었다. 찍어온 사진을 다시 보니 아! 봄이다. 운림산방의 정경에서 내가 그리던 고향의 봄이 그런 곳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내년의 봄을 기약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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