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칼럼

기분 나쁨의 정체

이춘아 2020. 3. 6. 10:43

 

2002년3월 19일

기분 나쁨의 정체

 

뭔가 뒤틀려 있습니다. 학교 다녀온 아이와 괜히 시비조가 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하루를 더듬어봅니다. 아침에는 기분이 좋았으나 나갔다와서 배가 고파 허겁지겁 밥을 먹고 평소에는 잘 먹지도 않는 과자도 먹고 했건만 채워지지 않는 기분 나쁨이 있습니다.

 

왜 기분이 나쁠까? 더듬어 봅니다. 아마도 사진 수업 이후였지 싶습니다. 사진 찍기를 좋아했으나 늘 그렇고 그런 상태인 것 같아 문화원이 주관하는 사진반에 등록하였습니다. 지난 주는 첫 시간이라 상견례와 더불어 사진을 제대로 찍기 위해서 적어도 이 정도의 부속품들은 있어야겠다 로 끝났습니다. 두 번째 시간인 어제는 모두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진기 또는 새로 구입한 사진기를 들고 왔습니다.

 

사진반에 등록한지 일년이 넘어 근사하고 커다란 사진기를 가진 사람에서부터 이제까지 묵혀두었던 사진기를 활용하는 차원에서 등록한 초보자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삼년간 내 손에 익어있고 내가 아껴왔던 나의 사진기가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입니다. 선생님의 설명도 그렇고 분위기를 보아하니 내가 돈 들여 더 구입하여야 장비뿐 아니라 애초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시간을 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감정들이 내 속에서 뒤틀리면서 결과적으로는 기분이 나빠진 것입니다. 석달치 수업료가 삼만원이니 크게 부담되지 않고 좀더 배워보면 사진찍는 기술이 좀더 나아지려나 했던 기대치에 비해 부수적으로 따라붙는 비용과 시간이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객관적인 조건 이면에 깔려있는 기분나쁨의 근원을 파고 들면 사진반 수업을 계속하기엔 내가 가난하다는 사실을 계속 느껴야하고 그로인해 계속 기분나빠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평상시에도 필름 한통을 사서 인화하기까지 9천원 정도이니 그야말로 좋은 사진 한 장 건질려고 몇통을 찍다보면 몇만원 날라가기 순식간입니다. 게다가 렌즈에 따라 사진 질도 결정된다고 하고 망원렌즈로 찍어놓은 것을 보면 좋아보이고 하니 더 좋은 렌즈를 구입하고 싶어할테이고 등등. 남들은 이것저것 구입하고 있는데 나는 돈 걱정하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나쁜 것입니다.

 

며칠전 식구들과 밥을 먹다가 무슨 이야기끝이었는지 내가 우리집이 가난하다고 처음 느꼈을 때가 중학교때였다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 지난주 사진반 수업이후 무의식중이나마 가난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중학교 입시제도가 있던 시절, 소위 일류중학교에 입학하여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우리집보다 부자가 참 많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던 것 같습니다. 우리집이 부자라고는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으나 비교에 의해 상대적으로 가난할 수 있음을 처음 느꼈던 시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기분나쁨으로 연결지워지지는 않았습니다. 남편도 시골초등학교에서 중소도시에 있는 중학교, 대도시에 있는 고등학교로 올라갈 때마다 참 부자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성인이 되어 뒤늦게 결혼을 하고 단칸방에 세들어 살때도 그것이 기분나쁨으로 연결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이제와 생각하니 그 때 가난했었던 것 같다 였지 기분나쁜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며칠전 버스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떨리는 목소리를 들을때만 해도 상대적인 가난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새학기가 되면서 학교에서 집의 경제적 수준을 측정하는 조사서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아파트 큰 평수에 사는 집 아이들이 주택에 사는 아이들을 놀려 주눅들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 조사서는 폐지되어야한다는 항의전화였습니다. 뭐 그런 것에 저렇게 눈물나올 정도로 떨려할까 했습니다.

 

그런데 어제서야 비로소 내가 가난하다는 실감의 정도가 기분나쁨으로 이행되고 나니 그 때 들었던 라디오의 음성이 다시 되돌아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내가 중학교때도 집안조사서에 기재되어있는 가전제품 가운데 전화기 칸 하나에 동그라미를 치면서 다른 아이들과 비교되었던 그 감정이 되살아 났습니다. 초등학교때만 해도 전화기 한 대 있는 집도 많지 않았는데 중학교에 오니까 흑백텔레비전뿐 아니라 칼라 텔레비전에 냉장고도 있는 아이들이 있어 놀라했습니다. 그때 무심코 한맺혔던 사람들이 오늘날 문두짝 냉장고에다 김치냉장고까지 구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어제 저녁, 우리집 하고는 상관없지만 그래도 읽어보세요, 하면서 아이가 학교에서 준 유인물을 건네줍니다. 읽어보니 학비감면을 위한 지원신청서입니다. 평소와는 달리 가슴이 아픕니다. 이런 지원신청을 해야할 사람들도 분명 있을텐데 이것을 제출하기까지 일어나게될 집안의 소란함이 떠올라서입니다. 아마도 아이가 상처받을 것을 고려하여 지원서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니 눈물이 납니다.

 

이런 저런 생각에 아마도 사진반 수업을 중단해야 되지 않을까 결론내리고 있습니다. 비록 언젠가는 더 나은 사진을 위해 더 좋은 렌즈와 장비를 구입하는데 흔쾌히 돈을 내어놓게 될 때가 올지는 모르겠으나 아직은 아니다 하는 것입니다. 테크닉보다는 좋은 장면에 내 마음이 움직여지고 그 마음이 혹여 전달될 수도 있는 사진찍기를 혼자서 더 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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