믹서에 돈을 넣고 갈다
2016년 10월12일
돈 맛을 보았다. 어떤 이가 돈을 뿍뿍 찢어 믹서에 넣고 물을 붓고 갈더니 그걸 접시에 붓고는 먹어보란다. 돈 맛이 어떤지. 종이 씹었을 때 맛인데, 색깔은 파란수채화 물감 같다. <예술가의 방> 퍼포먼스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대전역 앞 중동에 있는 보훈회관(옛 중앙동주민센터)이 11월이면 리모델링에 들어간다. 대전사회적자본지원센터와 작은미술관이 들어갈 예정이다. 리모델링 공사가 들어가기 전 예술가들에게 3층 건물을 통째로(인근주민들이 현재 사용하는 체육공간을 제외하고) 빌려드리고 ‘마음대로 해보시라’주문했다. 기획자와 열명의 작가들이 한달 이상 궁리하며 작업한 결과물인 <중동을 비추다_ 예술가의 방> 전시가 10월11일 부터 시작됐다.
3층 건물은 중앙동주민센터가 이전해나가고 난후 보훈회관으로 사용되었고 그 배치도가 마당 한켠에 있다. 지하층은 체력단련실, 1층은 로비와 휴게실, 6.25참전유공자회, 전몰군경미망인회, 전통군경유족회, 무공수훈자회, 상이군경회, 고엽제전우회, 물리치료실, 탕비실, 2층은 적십자사, 특전사전우회, 해병대전우회, 서예교실, 물품보관창고, 3층은 중대본부, 다목적회의실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단체들이 이사 가면서 남기고 간 각종 상패와 트로피, 액자 등등 삶의 흔적들을 작가적 시선으로 전시되었다. 어떤 예술가는 철제 책상과 의자들에 목재를 덧붙여 새롭게 가공하여 작품 같은 책상과 의자들로 만들었다. 1층 입구 한 공간은 인근 주민들을 인터뷰한 영상물을 틀어주고 있다. 보통의 사람들이 예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볼 수 있는데, 유리가 있었을 방 밖에서 방안의 영상물을 보게 하여 일정의 거리감을 유지하며 보게 하는 묘한 느낌을 주고 있다.
1층 뒤편 방은 붉은 불빛에 그림과 의자들로 어두운 그늘을 주고 있는 그 방은 나중 배치도를 보고 알았다. 고엽제전우회와 물리치료실이 있었던 방이었다. 오른쪽 몇 개의 공간을 터놓은 넓은 공간은 예술고등학생들이 해방구로 덧칠해놓았다. 고등학생들에게 페인트를 주고 마음대로 칠하고 그리고 쓰게 했고, 페인트통과 붓을 던져버리고 간 그 방은 보는 사람들도 속이 후련해지게 한다. 정리되고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으로 질서를 지탱하고자 한 것들에 대한 저항으로 고등학생들을 낙서와 물감 던지기로 표출했다. 탈출, 멈춤, 내가 누구인지 당신은 모른다 등의 영어단어들이 눈에 띤다. 오프닝 퍼포먼스의 자유즉흥음악 공연을 들으며 작품들을 보니 느낌이 또 달랐다.
어떤 방은 할머니의 방으로 꾸몄다. 그곳 숙직실 등에서 사용되었을 울긋불긋한 이불과 담요, 카펫, 오래된 그릇에 쌀을 담고 향을 피우고 절을 하는 퍼포먼스를 했다. 방과 방을 연결하는 공간에는 세로 장을 가로로 뉘어 의자로 만들고 천천히 움직이는 영상물을 보면서 잠시 멈추어 쉬었다가는 공간으로 꾸몄다. 층과 층을 연결해주는 계단에도 설치물과 포인트를 주어 힘들지 않게 올라가도록 배려를 했다. 복도를 지나가면서 흘깃 시선을 주게 하여 방안의 어떤 시선과 마주하게 하는 그림도 있었다.
3층 건물의 옥상은 대전 전경 360도를 볼 수 있어 왜 이곳 지명이 중동인지 느껴진다. 여기에 하얀 피아노와 스탠드 구조물과 칵테일 바를 설치하여 오프닝 파티를 열었다. 중동을 비추는 반달이 있었고 편안한 대화들이 있었다.
동주민센터였던 공간이 보훈회관이 되고 사회적자본지원센터로 바뀌기 전 이 자리를 예술가들이 잠시 빌려 그들의 방을 만들었다. 예술가들은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지, 예술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느끼게 해준다.
원도심 활성화의 일환으로 대흥동의 시대가 있었다면 다음은 중동이 이들 예술가들의 작업무대로 이어질 전망이다. 속된 표현의‘돈맛’을 보여준다며 돈을 믹서에 갈아 맛보게 하는 퍼포먼스. 그러한 역발상의 시도들로 중동에 색을 입혀 나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