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3일
고미숙, [낭송의 달인 호모 큐라스], 2014, 북드라망
낭독의 추억 1 - [춘향전] 발췌
대학 4학년 때 우연히 고전문학 강독 수업을 듣게 되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인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수업 교재는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고전소설이었다. 한글로 되어 있긴 했지만 외국어보다 더 난감했다. 중세고어인 데다 위에서 아래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글씨들이 빼곡하게 차 있었다. 띄어쓰기나 쉼표, 마침표 따위는 일절 없었다. 오, 맙소사! 이걸 대체 어떻게 읽는단 말인가? 게다가 단어나 문장도 낯설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강독을 시키셨다. 큰 소리로 읽게 하신 것이다. 일단 소리 내어 읽자 뜻이 파악되었다. 허 ~ 이럴 수가! 눈으로는 도무지 뭐가 뭔지 모르겠는데 소리 내어 읽으니까 맥락이랑 의미가 다 잡혔다. 띄어쓰기가 없어도 괜찮았다. 읽다 보면 목소리가 알아서 띄어 읽고 마침표를 찍었다. 아, 이게 모국어라는 거구나! 몸에 새겨진 언어의 리듬! 그 맛이 참으로 쏠쏠했다. 남들이 읽을 때는 귀가, 내가 읽을 때는 혀가.
낭독의 힘과 매력을 발견한 첫 경험이었다. 고등학교 시절은 3년 내내 입시지옥을 통과하느라 낭독은 고사하고 독서 자체도 금기시되었다. 대학에 와서도 그다지 공부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했는데, 4학년 때 엉뚱하게 우리 고전에서 그 기쁨을 맛보게 된 것이다. 나는 곧 그 수업에 빠져들었다. [춘향전]을 늘 손에 들고 다니면서 틈틈이 소리 내어 읽었다. 그 소리의 파동 때문이었을 까. 마침내 전공을 한국고전문학으로 바꾸었다. 동시에 내 인생도 180도 대전환을 맞이하게 되었다. 고전평론가가 된 것도,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것도 그 연원을 따라가다 보면 그때 그 순간, 바로 낭독의 현장이 존재한다.
독자 여러분도 한번 소리 내어 읽어 보시라. 기분이 우울한 이들은 명랑해질 것이고 기분이 들뜬 이들은 오히려 차분해질 것이다. [춘향전]의 대표적인 아리아 ‘사랑가’ 대목이다.
여봐라 춘향아 저리 가거라. 가는 태도를 보자. 이만큼 오너라 오는 태도를 보자. 방긋 웃고 아장아장 걸어라. 걷는 태도 보자. 너와 내가 만난 사랑 연분을 팔자 한들 팔 곳이 어디 있나. 생전 사랑 이러하니 어찌 사후에 기약 없을쏘냐. 너는 죽어 될 것 있다. 너는 죽어 글자 되되 땅 지 자, 그늘 음 자, 아내 처 자, 계집 녀 자 변이 되고, 나는 죽어 글자 되되 하늘 천 자, 하늘 건, 지아비 부, 사내 남, 아들 자 몸이 되어, 계집 녀 변에다 딱 붙여 좋을 호자로 만나 보자. 사랑 사랑 내 사랑. 또 너 죽어 될 것 있다. 너는 죽어 물이 되되 은하수, 폭포수, 만경창해수, 청계수, 옥계수, 일대 장강 던져 두고 칠 년 대한 가물 때도 항상 넉넉하게 흐르는 음양수란 물이 되고, 나는 죽어 새가 되되 두견새도 되지 말고, 쌍쌍이 오가며 떠날 줄 모르는 원앙조란 새가 되어 녹수의 원앙처럼 어화둥둥 떠놀거든 나인줄 알려무나. 사랑 사랑 내 간간 내 사랑이야.
조선 시대만 해도 낭독은 아주 일반적인 방법이었다. 저잣거리에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책을 읽어 주는 강독사라는 직업이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소리는 다중을 동반한다. 하여,책을 다양하게 체험하게 해준다. 뜻을 몰라도, 개념이 어려워도 상관없다. 위에서 보듯 [춘향전]을 비롯한 판소리계 소설들에는 엄청난 주석을 필요로 하는 고사성어들이 쏟아진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소리와 진동을 타면 귀에 쏙쏙 들어온다. 말이란 맥락으로 전달되는 것이지 개별적 단어와 숙어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하나, 귀가 열리면 혀도 굴러간다. 이 책 1부인 ‘귀동냥과 말잔치’ 대목에서 이미 밝혔듯이, 잘 듣는 이들이 말도 잘한다. 이야기꾼들이란 귀가 뚫린 이들이기도 하다. 온갖 인정물태를 주워 담을 수 있는 능력, 그게 가능하면 그 내용들을 자기식으로 버무리는 혀도 가능하다.
그래서인가. [춘향전] 뿐 아니라 판소리계 소설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입담이 장난 아니다. [심천전]의 심봉사, [토끼전]의 토끼, [흥보전]의 흥보, [변강쇠전]의 옹녀, 이들은 정말 입담 하나로 먹고산다. 삶이 아무리 절망적이어도 목숨이 위태로워도, 가난이 뼈에 사무쳐도 성욕의 무한질주 속에서도 이들은 거뜬히 살아낸다. 절망하지도 않고 기가 죽거나 자신을 한탄하지도 않는다. 그 밑천과 원천은 어디까지나 ‘말의 힘’이다.
하여, 책을 읽는다는 건 이런 ‘말의 기예’를 터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주제를 파악하고 교훈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말의 흐름에 접속하여 그 기운을 훔치기 위해 책을 읽어야 한다. 크고 낭랑한 목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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