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리토마토파이]
(베로니크 드 뷔르/이세진 옮김, 2019, 청미)
겨울
3월 18일 금요일
문서를 좀 정리해야겠다. 이런저런 종이들이 사방에 흩어져 있다. 내가 죽으면 애들은 아무것도 못 찾을 것이다. 르네가 죽었을 때에도 중요한 서류들을 찾느라 온 집을 뒤집어엎다시피 했다. 평소에는 생각도 하지 않고 살다가 정작 그럴 때가 되면 뭘 필요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런 서류는 내 소관이 아니고 어디 있는지조차 모른다. 은행, 보험, 공증, 세무, 그 외 뭐가 뭔지 모를 골치 아픈 서류는 전부 아들이 관리하고 분류하고 정리한다. 내 문서라고 함은 나의 여닫이 책상 서랍, 서랍장, 서재 책상, 창가의 수납장, 열쇠로만 열 수 있는 궤짝 등에 따로 고이 숨겨놓은 하얀 봉투들을 말한다.
그 봉투들 속에는 내가 그때그때 생각나는 대로 적어놓은 유언 비슷한 편지가 있다. 아, 유언이라기에는 정말 대단치 않지만... 나의 진주목걸이는 손녀 누구에게 주고, 약혼반지와 금팔찌는 딸에게 주고, 가문의 방패휘장이 새겨진 반지는 또 다른 손녀에게 주고, 내가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반지는 증손녀 누구에게 주고, 금목걸이는 며느리에게 주려고 한다. 그러다 가끔 마음이 바뀌어 내용을 수정한 편지를 새 종이에 정서하곤 한다. 떠나야 할 사람이라면 매사를 깔끔하고 얌전하게 정돈해두는 것이 중요하다.
아들과 딸 앞으로도 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 싸우지 말라고 간청하는 편지를 썼다. 솔직히 내가 이런다고 남매 사이가 달라질까 싶지만, 아이들이 이 집 때문에 싸울지도 모른다 생각하면 속상하다. 사람마다 취향과 욕망이 다른 법이니 이 사람의 결정이 저 삶의 추억을 훼손할 수도 있다. 무심코 베어버린 나무 한 그루가 비극을 부른다. 수풀 하나를 밀면서 누군가의 어린 시절마저 밀어버릴 수 있다. 커튼 하나 바꾸는 것도 중대 사안이 되고, 방 하나 개조하겠다고 나섰다가 싸움이 난다.
아들과 딸은 무려 열다섯 살 터울이기 때문에 더욱더 서로 마음 맞추기가 쉽지 않다. 각자가 보내는 인생의 단계가 다르고 각자가 생각하는 우선순위가 다르다. 남매가 같이 있을 때 서로 긴장하는 게 보인다. 그 애들 입에서 튀어나온 모질고 못된 말이 내 머릿속에 얼마나 충격을 주었던지. 그럴 때면 귀를 틀어막고 몸부림쳤지만 결국 내 눈에서 피눈물이 흘렀다. 아들과 딸이 서로 부딪힐 때에는 나의 눈물만이 그 애들을 진정시킬 수 있는 것 같다. 할 수만 있다면 눈물로 축축해진 편지를 남기고 싶다. 하지만 내가 죽고 나면 눈물은 다 말라붙고 약간의 소금기만 남아 있겠지.
그리고 최근 들어 생각한 바가 있어서 새 봉투를 하나 꺼내어 십자가 표시를 했다. 아이들도 이 표시를 보면 바로 알아차리겠지. 나는 예쁜 글씨체로 ‘나의 장례를 위하여’라고 썼다. 나는 베르의 작은 로마네스크식 교회에서 소박하게 장례를 치러주기를 원한다. 그 교회는 르네의 장례를 치른 곳이자 우리 딸이 혼례를 올린 곳이다. 음악은 모차르트의 [레퀴엠]이나 포레의 [파반]을 적당히 발췌해 들려주면 좋겠다. 성가는 적어도 내가 아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혹시 아나, 내가 하늘나라에서 함께 부를 수 있을지... [주님은 나의 목자]면 좋을것 같다. 마지막으로 손주나 증손주 중 한 명이 내가 매우 감명 깊게 들었던 글을 낭독해주면 좋겠다. 내가 그때 대충 메모를 해놓았더니 딸이 인터넷으로 정확한 원문을 찾아줬다. 나는 어느 날 저녁에 깃털 팬에 군청색 잉크를 묻혀서 그 글을 모조지에 공들여 정서했다. 그 글이 나의 유지가 될 것이다. 장례 미사를 마무리하면서 나에게 성수를 뿌리는 바로 그때 낭독을 해주기 바란다.
아직 볼 것도 있고 할 일도 있지만
나 이제 떠나니 보내주세요.
나의 길은 여기가 끝이 아니거든요.
눈물로 나를 붙잡지 말고
우리가 함께한 세월을 기뻐해주세요.
그대들을 사랑했습니다.
그대들로 인하여 내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과연 짐작이나 할까요.
그대들이 보여준 사랑에 감사합니다.
그러나 이제 나는 내 길로 가야 할 때가 되었네요.
그대들이 꼭 울어야겠거든, 잠시만 울어주세요.
그러고 나서는 슬픔 대신 기쁨을 품어주세요.
우리는 잠시 헤어지는 것일 뿐이니까요(....)
나는 멀리 있지 않을 거예요. 생은 계속되니까요.
내가 필요하거든 불러주세요. 내가 올게요.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어도 나는 그대 곁에 있을 거예요.
마음으로 들을 수만 있다면
정답고도 분명한 이 사랑을 바로 옆에서 느낄 수 있어요.
그러다가 그대도 여기 올 때가 되거든
나, 환한 미소로 마중 나가
“우리 집에 잘 왔어요”라고 말할게요
3월 19일 토요일
내일부터 봄이다. 마침내 다 지나왔다. 강너머, 다시 소생하는 삶의 지대가 보인다. 내일이다. 그래도 수평선은 여전히 부옇고 멀게만 보이리라. 너울을 뒤집어쓴 것처럼 색깔이 흐릿하고 빛은 희끄무레하다. 내가 저 끝까지 갈 수 있을까? 내 걸음은 느리고 나는 너무 지쳤다.
오늘은 산책도 하지 않았다. 날씨가 변하려고 그러는지 몸이 영 좋지 않았다. 날이 풀리려는가 보다.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저녁도 먹지 않았다. 배고픈 걸 모르겠다. 성당에 가려면 일찍 일어나야 한다. 회양목 가지도 마련해서 물컵에 꽂아두었다. 사제가 신도들 사이를 지나며 성수를 뿌릴 때 보기 좋게 들 수 있도록 말이다. 내일부터 성주간이 시작된다. 사제는 부활절의 신비를 기념하리라. 여러 사람이 수난의 복음을 강독할 것이다. 성당에서 강독자들을 잘 뽑았기를 바란다. 성지주일에는 미사 시간에 말씀을 길게 강독한다. 나는 너무 피곤하면 중간에 앉을 생각이다. 내 나이가 되면 복음서 말씀도 앉아서 들을 권리가 있다. 그래도 끝까지 귀 귀울여 들을 것이다. 강독이 길어지면 지치기도 하지만 또렷한 발음과 어조로 낭독하는 말씀에 내 마음이 움직인다. 나는 어린아이처럼 말씀에 귀 기울일 것이다.우리 어머니가 밤마다 들려주시던 신기하고 무서운 이야기에 귀 기울였던 것처럼.
내일, 그리스도는 예루살렘에 입성하고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환호하며 자기의 옷을 벗어 그 분이 가는 길에 깔아드릴 것이다. 그 후에 그리스도는 사형 선고를 받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다 세번 넘어질 것이며, 십자가에 못 박혔다가 사흘 만에 가지처럼 부활하리라. 이 모든 것이 미사 안에 있다. 부활은 푸르른 종려나무와 마찬가지로 우리네 영생을 미리 나타내 보인다고 한다. 죽음은 우리 생의 끝이 아니다. 죽음 이후가 어떠한가를 아는 것은 또다른 문제지만...
어쨌든, 요즘 사람들에게 이런 말은 별로 와닿지 않을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한번 믿어보려는 생각조차 없고, 관심도 없다. 그들이 대문자 P로 시작하는 수난(Passion)에 대해서 무엇을 알까? 성주간, 십자가의 길, 14처를 알기나 할까?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한 그 겸손한 이에 대해서 무엇을 알까?
나는 비록 아무것도 확신하지 못하나, 내가 이 모든 것을 믿는다고 믿고 싶다. 모든 것이 잿빛으로 칙칙한 때에는 다시 푸르러지리라 생각하면 위안이 된다. 혹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괜찮다. 어차피 모를 테니까. 운이 좋으면 선하신 주님이 우리를 기다리실 터요, 운이 나쁘면 죽음은 평화롭고 기나긴 잠일 뿐이리니.
침대머리 탁자에 안경을 내려놓고 휴대전화를 끈다. 알람 설정을 깜박한 것 같지만 할 수 없다. 침대에서 다시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문을 잘 잠갔는지, 가스 밸브를 닫았는지 그것도 모르겠다.... 정말이지, 머리가 안 따라준다. 불을 끄고 이불을 덮는다. 나의 마지막 겨울밤이다. 푹 잘 수 있을 것 같다. 내일은 햇빛이 비치는 아름다운 날이 될 것이다.
산들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간다. 창문을 열어두었나 보다. 눈을 감는다. 잠의 안개가 나를 감싸기 시작한다. 나를 맡긴다. 어느새 나는 배에 올라와 있다. 아주 작은 돛단배다..... 갑판에 누워 구름 없는 하늘로 솟은 돛대를 바라본다. 바람은 상쾌하고 소리 없이 서서히 움직인다. 나는 겨울과 함께 나의 마지막 겨울과 함께 잠들리라. 계절의 끝에서, 햇살을 받으며, 종려나무 가지를 높이 든 채로 르네가 나를 보고 미소 짓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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