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움직이게 만드는 것, 리듬’
언젠가 한 음악 담당 기자로부터 “손열음 씨는 리듬감이 정말 독특해요. 다른 사람들하고는 확실히 다른 것 같아요”라는 말을 들었다. 자랑 같긴 하지만 사실 언제부턴가는 그런 얘기를 종종 들어왔다. 그런데 그런 분들이 들으면 놀랄 이야기가 있다. 사실 어렸을 적의 나는, 내가 가진 음악적 재능들 중 리듬감이 제일 별로라고 느꼈다는 거다. 한마디로 내가 가장 자신 없어했던 항목이 바로 이 리듬감이었다. 이 약점을 비장의 무기로 만들기까지는 당연히 나의 노력들이 있었다. 조금은 재미있는.
여기서 주목할 점은, 내가 별로라고 느낀 스스로의 능력이 ‘박자 감각’이 아니었다는 거다. 리듬과 박자라는 두 개념은 자주 혼동되지만, 사실은 완전히 다르다. 리듬을 백과사전에서 찾으면 ‘음악용어로, 율동 또는 절주’라고 나온다. ‘흐른다’는 뜻의 동사 ‘rhein’이 어원인 그리스어 ‘rhythmos’에서 파생된 단어라고 한다. 우리가 책에서 배우길, 서양 음악의 3요소는 멜로디(선율), 화성, 리듬이다. 이 중 화성이야 인간이 만들어 낸 법칙임이 당연하다 치고, 선율과 리듬 중에서는 무엇이 먼저 세상에 존재했을까? 원시시대를 떠올리면 간단하다. 심지어 목소리로 음의 높낮이를 조절해 일정 주파수의 ‘음’을 낼 수 있다는 것도 몰랐을 그 시대에도, 리듬은 존재했다. 심장 박동과 걸음걸이에서부터 물 흐르는 소리나 동물 울음소리 등 멜로디나 화성이 전혀 없는 단순 소음에도 리듬은 꼭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소리에는 리듬이 있다. 맥박을 가진 인간이 제일 원초적이고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감각 또한 리듬이다. 그래서 사람은 리듬을 받아들일 때 몸을 절로 움직이게 된다. 고개를 끄덕이게, 어깨를 들썩이게, 엉덩이를 실룩이게.... 그렇게 만드는 것은 분명 멜로디나 화성이 아닌 리듬이다.
내 리듬감이 만족스럽지 않았던 건 바로 이 점에서였다. 나는 분명 박자는 잘 맞추는데, 어떤 이유에선지 사람을 움직이게 할 만한 리듬은 만들어 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나도 폼 나는 리듬감이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있을 순 없다. 즉시 스스로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다각도로 관찰해본 결과 찾아낸 나의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내가 덜 쪼개고, 덜 채운다는 것이었다. 두 가지는 얼핏 반대의 개념처럼 들리지만 상응하는 맥락이다. 이런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다. 여러 개의 작은 공을 속에 채워 넣어 만들어야 하는 아주 큰, 비닐로 된 공이 있다. 이 큰 공이 잘 굴러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속에 들어갈 작은 공이, 크기는 최대한 작고 수는 최대한 많아야 좋을 것이다. 이것들을 매우 촘촘히 채워 큰 공 속의 빈틈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매끄럽게 굴러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채워야 할 큰 비닐공이 지름 1.5미터라면, 그 속에 농구공을 채워 넣는 것이 더 잘 굴러가겠는가, 테니스공을 채워 넣은 것이 더 잘 굴러가겠는가, 당연히 후자다. 농구공들 사이의 빈틈은 장애물을 만나면 쉽게 멈출 테니 말이다.
테니스공으로 하나하나 채워 넣었다고 치자. 이 테니스공들은 하나하나 정확히 최대치로 부풀려져 완벽한 ‘구’를 형성하고 있어야 한다. 하나라도 쭈그러져 있거나 설채워져 있다면 큰 비닐공의 형태 또한 일그러져, 굴러가다 말고 언젠가는 멈추지 않겠는가? 리듬이 바로 이와 같다! 최소단위를 쪼개어 가장 잘게 만든 다음, 최대치로 채워 긴장감의 연속성을 만들면, 비로소 리듬이 흥을 띠는 것이다.
이것을 파악하고 난 다음부터는 생활 속에서 쉴 새 없이 손가락을 움직이고 발을 구르며 이 감각을 익히고자 했다. 밥을 먹을 때도 젓가락을 두들겨 가면서 리듬감을, 얼굴에 화장품을 바르고 두드릴 때도 리듬감을 생각했다. 피아노 뚜껑을 닫고 그 위를 두들기며 리듬감을 느끼는 것에만 집중하는 연습도 많이 했다. 음악을 들을 때는 무조건 고개를 좌우로 까딱이고 가끔씩 스텝을 밟아보거나 손으로 스윙을 만들어 보는 습관을 들였다. 그러나 실은 두번째 문제가 훨씬 더 중요한 사안이었다.
그건 다름 아닌 나의 내성적 성향이었다. 엉뚱하다고 생각될지 모르지만 이건 리듬감과 가장 직결되는 문제였다. 쉽게 말하자면, 어디서든 남들의 시선에 상관없이 음악에 맞춰 자연스럽게 몸을 흔들어댈 수 있는 성격이 리듬감에 훨씬 유리한 거다. 그런데 이 성격이야말로 내가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은, 치명적인 아킬레스건과도 같아서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딱히 없었다. 그저 꾸준히 시도할 뿐. 길거리에서라도 음악이 나오면 그에 맞춰 몸을 흔들어 보기, 옆에 누가 있든 콧노래를 흥얼거려보기, 제일 중요한 건 그러면서 쭈뼛대지 않기 등등....
이상적인 리듬감이 갖고 싶어 기울인 노력은 어느 순간부터 이렇게, 자아를 찾아 나선 여행이 되었다. 음악이야말로 자아 여행의 보고인 것은 사실이니, 결과적으로 나의 부족했던 리듬감이 거꾸로 내 음악의 영감이 되어준 셈이다.
또, 가지고 태어난 탓에 쉽게 논리를 설명하기 힘든 다른 재능들에 비해, 누구에게라도 상세하게 그 원리를 설명해 줄 수 있을 정도로 꼭꼭 씹어 삼킨 능력엔 또 다른 자신감이 붙었다. 이 자신감이야말로 내 리듬감에 더 큰 힘을 실어준다. 이것이야말로 요즘 내 리듬감에 대한 호평의 숨겨진 이유인지도.... 무엇보다도 흐믓한 점은 리듬을 마음껏 즐길 수 있게 된 나 스스로다.
몸으로, 마음으로 리듬을 ‘탈’ 수 있게 된 지금이 무척이나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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