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우리가 하는 일'

이춘아 2020. 9. 19. 03:16

헬렌 니어링 & 스코트 니어링, [조화로운 삶의 지속], 보리, 2002. 

'우리가 하는 일'

북적거리는 도시에서 우리를 찾아온 이들은 이렇게 묻곤 한다. “시간이 나면 뭘 하고 지내나요?” “우리에겐 남는 시간이 없어요. 늘 바쁘답니다.” 이것이 우리 대답이다. “사실 하루하루가 너무 짧아서 늘 시간이 모자라요.” “하지만 재미삼아 하시는 일이 뭐라도 있을 거 아녜요?” 사람들은 끈질기게 물어 댄다. “우리가 하는 일은 뭐든지 만족스러워요. 우리가 그걸 좋아하지 않는다면 또다른 일을 하겠죠. 아니면 좀더 나은 방법을 찾아서 일을 하든가요.”

“우리가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궁금하다고요?” 우리는 물음을 던진 사람에게 이어서 말한다. “우리가 하는 일 가운데 굵직굵직한 일을 말해 볼까요. 먹을거리를 다듬어서 갈무리하는 일, 땔나무를 베는 일, 밭일, 집 짓는 일, 숲에서 하는 일, 연구, 가르치는 일, 작곡, 대화, 논문이나 책 쓰는 일, 여행 들을 해요. 일 하나하나마다 좋은 점이 있고 이로움이 있지요. 일이 한창 잘 되거나 끝마무리에 이르면 우리는 이렇게 말하곤 하죠. ‘땀 흘려 일한 덕분에 잘 끝났군. 다음에 어떤 일을 할 계획이었더라.’ 이렇게 하루, 한 주, 한 철 일을 마무리짓곤 하지요.”

지루하고 메마른 삶이 되풀이되면서 우리를 짓누르는 일은 없었다. 늘 새로운 계획이 있었고 새로운 하루가 열렸다. 그것은 신선한 도전이자 모험으로 가득 찬 체험이었다. 다만 몇번 어리석은 실수를 저지르고 잘못 지은 건물을 헐어 내서 틈틈이 고치며 살아야 했던 것이 흠이라면 흠일 뿐이다. 하지만 어떤 잘못을 저질렀고 그 잘못이 어떻게, 왜 일어났는지 알면, 바로 힘 닿는 대로 고치고, 앞으로 똑같은 실수는 저지르지 않으리라는 데에서 만족할 수 있었다. 

너무 뻔한 말, 위로삼아 하는 말로 들릴까? 결코 그런 뜻으로 하는 말은 아닌데, 자기 깜냥과 힘에 부치는 일을 한다고 생각해 보자. 아마 어깨가 처지고 풀이 죽게 될 것이다. 하지만 자기가 견딜 만한 일을 계획하여 깔끔하게 해낸다면 성공할 기회는 훨씬 가까워진다. 

요새 사람들은 복잡하고 어지럽게 얽힌 삶의 가닥을 가까스로 추스르고 있다. ‘슬기롭게 그리고 느긋하게 살라.’는 말은 귀담아 들음직한 말이다. 지금 한창 이어달리기 경주를 하고 있다면 처음 몇 바퀴에 결판이 날 리 없다. 여유를 가져야 한다. 힘을 모아야 한다. 어떤 일을 할 것인가. 차근차근 계획해야 한다. 한 번에 한 발짝만 떼어야 한다. 그리고 다음 일을 차분히 준비해야 한다. 그러면 언젠가는 반드시 열매를 거둘 수 있다. 

사실 우리가 몇십 년에 걸쳐 더듬어 찾고 쌓아 올리는 동안 한 일들이란 그때 그때 서로 다른 무게로 다가오는 도전에 맞서는 일이었다. 모든 도전은 그것만이 갖고 있는 특성이 있었다. 기본 방침을 뿌리부터 뒤흔든 것이 있는가 하면, 사소하게 방법만 바꾸어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어려움을 헤쳐 나갈 때마다 그 나름으로 재미가 있었다. 도전에 맞닥뜨려 문제를 해결하거나 매듭을 지을 때마다 그 나름으로 만족을 얻었다. 어려움을 이기고 나면 현실에 더 큰 의욕이 생기곤 했다. 어떠한 도전이든 가깝고 먼 앞날에 대한 전망을 열어 주었다. 

나이가 꽤 든 지금도 (우리 둘 다 흔히 말하는 은퇴할 나이를 훨씬 지났다) 우리는 삶에서 뒤로 물러설 뜻이 없다. 아니 오히려 살고자 하는 의욕에 불타오르고 있다. 지난날은 열정이 넘치는 경험들로 가득 차 있다. 지금은 앞날에 대한 흥미로운 전망이 열리고 있다. 삶은 우리에게 자질구레하고 시시콜콜한 것에 이르기까지 알뜰하게 베풀어 주었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크게 만족하며 살겠지. 더 지혜로워져서 앞으로도 끊임없이 우리에게 다가올 문제들을 너끈히 해결해 나갈 테니 말이다. 

1979년
헬렌 니어링과 스코트 니어링